사진출처:Shutterstock/Hagia Sophia Grand Mosque
터키(Turkey)하면 무엇이 가장 떠오르나요? 추수감사절 주 메뉴를 떠올릴수도 있고 볼링에서 3연속 스트라이크를 쳤을때 외치는 소리로 기억할수도 있습니다. 지금은 튀르키에(Türkiye)라고 국호가 바뀐 이 나라는 성경을 조금 아는 사람에겐 초기 기독교 선교역사의 현장으로 다가옵니다 . 흔히 이집트와 요르단을 구약의 무대로, 이스라엘을 사복음서의 무대라고 말한다면 사도행전의 후반부터 이후 신약성경 특히 바울 서신의 주요 무대는 지금의 튀르키에와 그리스입니다. 그래서 많은 기독교인들이 튀르키에를 방문합니다.
오레곤과 캘리포니아에서 신청한 27명의 팀원들과 함께 성서의 땅 튀르키에(구 터키)를 방문한 것은 10월의 마지막 주간이었습니다. 튀르키에는 국토의 면적이 남한의 8배나 되는 비교적 큰 나라입니다. 아나톨리아 반도라고도 불리우는 이 지역은 노아 홍수 이야기에 나오는 아라랏산이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최초의 철기문명의 주인공이라는 헷족속(히타이트)의 거주지였기도 합니다.
현재 수도는 앙카라. 그러나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도시는 이스탄불입니다. 동서양을 잇는 도시 또는 관문이라 불리는 이스탄불은 고대 그리이스때에는 비잔틴으로, 동로마제국시대에는 콘스탄티노플로 불리웠고 오스만 제국이 그 땅을 점령한 후로는 이스탄불로 이름이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고대도시답게 이스탄불에는 유적지가 많고 볼거리가 참 많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들르는 곳 한 건물이 있습니다. 한때는 성당(교회)으로, 한때는 모스크로, 한때는 박물관으로 그리고 지금은 다시 모스크로 사용되고 있는 있는 ‘아야 소피아 그랜드 모스크’입니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은 여전히 “하기야 소피아 또는 성 소피아 성당”이라고 부르길 좋아하는데 그것은 처음 지어질때 기독교의 예배처소로 지어졌기 때문입니다(여기서 “하기야 소피아”는 거룩한 지혜라는 뜻입니다). 화재와 지진으로 붕괴되었던 기존 건물을 현재의 규모로 재건한 사람은 동로마제국 전성기를 이끌었던 유세비우스황제입니다.
황제는성당을 짓기 위해 많은 비용과 당대 최고의 기술자들 그리고 최대의 노동력을 동원했습니다(531-537년). 심지어 로마나 에페소 같은 곳에 있는 다른 신전의 기둥들도 가져다가 건축에 사용했습니다. 비잔틴 양식의 돔 건축물인 성당은 규모와 건축구조, 실내 황금색 모자이크 양식 등이 찾아오는 사람들을 압도합니다.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을 표현하고자 했던 신앙인들의 열망이 그대로 표현된 것이라 여겨집니다
황금모자이크로 예수와 그 어머니 마리아, 사도들의 모습이 수놓아졌고 이는 돔 테두리에 만들어진 40개의 창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채광과 실내에 켜놓는 등과 어우러져 고귀함과 신비, 자비와 평안함을 느끼게 해 줍니다. 황제는 지어진 건물의 위용과 아름다움에 만족했습니다. “솔로몬이여 내가 당신을 이겼습니다”고 말했을 정도였답니다.
그래서인지 성전남서쪽 입구의 위부분에는 수도를 정한 이곳으로 정한 콘스탄틴 황제와 성당 건축을 지시한 유스티아누스 황제가 예수 옆에 서 있는 모자이크가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성당의 구조와 내부의 장식물들은 여러차례 위기를 겪습니다. 교황 레오 3세가 주도한 성상파괴운동때(726년), 화재와 지진들(859, 869, 989년) 그리고 4차 십자군 원정때(1204년) 주요 예술품들은 약탈당하거나 파괴되었습니다.
가장 큰 비극은1453년 술탄 마오메트 2세가 이끄는 오스만제국에 의해 함락되었을 때입니다. 이스탄불 시내 곳곳에는 당시의 전쟁의 흔적이 배어있는 테오도시우스 성벽들이 남아 있습니다. 성이 함락된 날 성전에서 예배하던 수많은 신자들이 살육당했고 노예로 끌려갔습니다.
다만 오스만 제국은 성당건물을 파괴하지 않고 모스크로 용도변경하여 사용합니다. 기독교입장에서는 굴욕과 수치임이 분명합니다. 마치 예루살렘 성전이 바벨론제국이나 안티오쿠스 4세 등 외세에 의해 파괴되거나 더럽혀진것처럼 말입니다.
이슬람제국은 건물을 파괴하는 대신 인테리어를 바꿉니다. 예수나 성모 마리아의 성화대신 이슬람 경전의 문구나 상징들을 새겨놓았습니다. 또는 성화 위를 횟칠하여 덮어버렸습니다. 예배당 정면도 메카를 향해야 한다는 이유로 동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지금 모슬렘들이 예배하고 있습니다.
정면 천장에 보이는 마리아와 예수의 모자이크를 천으로 가리고 말입니다. 그나마 한동안 박물관으로 지정되어 중립적으로 사용되던 시기(1935-2020년)가 있었던 것은 기독교인들에게는 매우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이때 성전복원작업이 시도되었고 횟칠속에 가리워졌던 본래의 성화들이 다시 빛을 보게 되었으니까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도 기독교의 흔적을 더 이상 훼손되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원형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기엔 성소피아 성당이 지어진 역사가 너무 오래되었고 그간에 있었던 격변의 사건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훼손된 채로 남아있는 모자이크와 색이 바랜 벽화속 예수의 얼굴을 응시하면서 갖는 안타까움 그리고 본래의 예수상을 그려보려는 간절함 끝에 얻는 깨달음이 바로 “거룩한 지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모자이크의 예수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여전히 살아있으며 거룩하고 자비로운 존재로 너를 바라보고 있다. 네가 나를 바라보는 그 자리에”. 이것이 비록 건물의 2층에만 가볼 수 있음에도 비싼 입장료가 아깝지 않은 이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