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가 살펴볼 구약 성경 이야기는 한 사람의 믿음과 순종에 대한 삶과 죽음의 시험입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은 모리아 산에서 예배의 행위로 외아들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습니다. 노년의 부부에게 웃음을 선사했던 이 소년의 눈에 눈물의 흔적이 역력합니다, 어려운 이야기이며 기괴한 이야기, 성숙한 신앙인을 위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한 사람의 믿음과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능력을 보여주는 빛나는 사례입니다.

우선 이 이야기를 이삭의 시선으로 살펴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하나님의 약속으로 얻은 이 아이는 남다른 사랑으로 양육됩니다. 그의 이름은 웃음을 의미하며 부모에게 큰 기쁨을 주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이삭의 이복형 이스마엘을 광야로 쫓아내어 형제간 경쟁 구도가 일어나지 않도록 합니다. 이삭은 모든 것을 다 가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해가 뜨기도 전에 아빠가 이삭을 침대에서 끌어내어 미지의 세계로 두려운 여행을 떠나게 했을 때, 어린 사춘기 소년의 머릿속에 어떤 질문이 있었을 지 상상만 해도 아찔합니다.

소년이 가장 먼저 물었을 질문은 아마도 “어디로 가는 거야?”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빠의 설명을 듣고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다음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아빠, 우리가 거기 도착하면 제물이 있을까요? 나무도 있고 불도 있는데 어린 양은 어디 있어요?” (창22:7) 이삭은 하나님께 예배한다는 것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무언가를 포기하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제물은 흠 없는 양, 양 떼 중에서 가장 좋은 양을 의미했습니다. 예배의 제물이 없는데 왜 예배를 드리러 가는 걸까요?

희생! 우리에게 참으로 낯선 단어입니다. 21세기에 우리는 예배에서 무언가를 얻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차 안에서 그것에 대해 논평합니다. 하지만 무언가를 가져온다고요? 그것은 우리에게 이상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만족과 소유와 즐거움을 포기하라고 하는 것은 지금 문화에서는 낯선 일입니다. 하지만 이삭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제물은 동물이 아니라 우리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장 1절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의 의에 대한 논문을 마무리하며 “저는 형제자매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의 영적 예배 행위인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이삭이 물었습니다. “제물은 어디 있어요, 아빠?” 예배에서 무언가를 드려야 하는데, 소년은 아빠가 아들을 제물로 바치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요? 실제로는, 이삭의 마음속에 다른 질문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가 아빠에게 이 질문을 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는 없지만, 지금 세상의 아이들이 이 질문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빠, 거기 계실 거죠?” 큰 시련의 순간에 곁에 있어 줄거죠?”

아브라함은 어린 아들의 질문에 의미심장한 대답을 합니다. 지금도 우리의 모든 질문에 이 대답이 주어집니다: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여러분은 자녀에게 이 말씀을 선포할 만큼 믿음이 있으신가요? 주님께서 제 때에 공급하십니다. 그는 빨리 오시지 않을지라도 결코 늦는 법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동안 너무 많은 산을 올랐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아침 일찍 일어나 다시 모리아 산을 향해 출발합니다. 이번에는 외아들과 동반합니다. 누군가는, 힘들 때 산을 더 작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주님이 함께 가실 것이니 등반 능력을 키워달라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어디로 인도하시는지 알 수 없고,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때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그 여정을 출발했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하나님을 신뢰하시나요? 주님께서 필수품을 공급해 주실 것입니다. 이삭은 아버지를 신뢰했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내가 이 아이와 저리로 가서, 예배를 드리고 너희에게로 함께 돌아올 터이니, 그 동안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거라.” (창세기 22:5) 아브라함은 어떤 믿음으로 주님께서 제물을 준비하셨을 거라고 믿었을까요?

아브라함이 아이를 태우려고(번제) 나무를 준비할 때 우리는 입을 다물 수 없습니다. 소년이 묶여 있을 때, 칼을 들고 아들의 생명을 끝내려고 손에 힘이 들어가는 그 찰나에 주님의 천사가 외쳤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마치 인디아나 존스 영화를 보는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희생할 뻔했던 그 극적인 순간에 하나님께서 제물을 준비하시고 기다리셨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공급하십니다. 그분은 우리 여정을 위한 믿음을 주실 것입니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통찰력을 주실 것입니다. 항상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이 드라마의 마지막에 그는, “내가 반드시 너에게 큰 복을 주며, 너의 자손이 크게 불어나서,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아지게 하겠다” (창세기 22:17)고 선언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세계 3대 종교의 아버지로 여겨집니다. 유대인, 무슬림, 기독교인 모두 아브라함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아브라함 아버지는 여러분과 저에게 여전히 축복이 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요한복음 8장 56절에서 “네 아버지 아브라함이 내 날을 보고 기뻐하며 즐거워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순종에서 우리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외아들을 기꺼이 희생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순종과 의로움은 우리 같은 크리스천에게 계속해서 축복이 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사람은 티백처럼 뜨거운 물에 넣기 전까지는 그 진짜 힘을 알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모리아 산에서 아브라함은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만점이었죠. 하지만 또 다른 사실을 아십니까? 하나님도 시험을 통과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순종했지만 하나님은 공급하셨고, 여러분과 저는 믿음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본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공급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백동인 목사-포틀랜드 갈보리장로교회 전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