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은 열정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가슴에는 평생에 꺼지지 않는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 관점으로 봤을 때 거의 강박 관념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 자신이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는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을 향해서 이렇게 썼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롬1:1) 즉, 바울의 모든 삶은 한 마디로 복음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원래 그 복음은 구약에 약속된 말씀이었습니다. (롬1:2) 그리고 그 복음은 하나님이자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롬1:3-4) 바울은 믿음으로 이 복음에 순종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롬1: 5-6) 그리고 그 복음이 바울의 삶을 완전히 바꾸었습니다.

이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부끄러움을 없앴습니다. (롬1:16a) 2) 또한 이 복음은 바울에게 살아있는 능력이 되었습니다. (롬1:16b)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고전9:16)

여러분도 아시는 대로, 이 복음은 모든 사람을 구원할 수 있었습니다.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롬1:16c)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복음은 믿는 사람만 구원했습니다.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1:17) 하나님은 자신의 완전한 의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드러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인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새로운 삶의 양식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9 장 19~22 절에서 당시 자신의 목회 상황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바울은 수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고자 했으나 자신이 여전히 사람들의 기쁨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는 갈라디아서에서 이렇게 실토했습니다. “이제 ….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갈1:10) 바울은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끌어 들이기위한 그 자신의 목표와 열정을 성취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자신의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오늘 바울이 복음을 위해 자신이 포기하려 한 것을 세 가지 관점에서 묵상하려고 합니다.

1.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포기하려는 의지

바울은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과거의 유대인의 관습에서 자유로운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는 율법 아래 있는 대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새로운 영적 사랑에 빠졌습니다. 바울의 삶은 그 분의 새로운 통치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율법과의 관계에 매이지 않고 하나님과의 새로운 사랑의 관계를 추구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일부 율법의 요구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율법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달래기 위해서 이거나 그들이 믿는 것을 긍정하는 의미로 그렇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단지 불필요하게 다른 사람들을 자극해서 복음을 전하는 능력을 위태롭게 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16 장에 이에 대한 위대한 예가 나와 있습니다. 바울이 복음의 아들인 디모데라는 청년을 처음 만났을 때 바울은 디모데가 자기와 동행하기를 바랐습니다. 바울은 그 지방에 사는 유대 사람을 생각해서, 디모데에게 할례를 베풀었습니다. 그것은, 디모데의 아버지가 그리스 사람이라는 것을, 그들이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원래 바울은 이방인들이 구원받기 위해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왜 디모데에게 외적인 할례를 베풀게 되었을까요? 바울이 그렇게 한 이유는 디모데가 그가 자란 지역의 유대인들과 동질감을 갖도록 해서 그들에게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하도록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2. 특권을 포기하려는 의지

바울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할 때 유대인의 모든 의식과 그 의식의 전통을 버렸습니다. 그렇지만 바울은 이방인과 함께 있을 때 성경적 원리를 위반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이방인의 습관과 이방인의 관습을 따랐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을 만날 때 때로 유대인의 종교 풍습을 따랐습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을 만나기 위해 안식일에 회당을 찾았습니다. 그가 이방인과 함께 있을 때 그는 돼지 고기를 먹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유대인과 함께 있을 때 쇠고기를 먹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기만하려고 그렇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고전9:22)

3. 세상에 구원의 다리를 놓으려는 의지

바울은 모든 장벽을 무너트리고 죄로 인해 구주를 잃어버린 세상에 구세주를 향해 다리를 놓기로 결심했습니다. 그같은 결심의 동기는 그 자신이 겪었던 지독한 죄의 문제와 관련이 있습니다.

바울에 따르면, 우리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우리의 삶을 지배합니다. 무엇을 생각하는가에 따라 죽음에 이르거나 평화에 이릅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생각은 죄를 극복할 수 없습니다. 우리 생각은 원래 하나님께 적대적입니다. 우리는 원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없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성령은 죄를 처리하실 수 있습니다. 문제는 성령이 없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반대로, 성령이 그 안에 거주하는 사람은 영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는 몸이 될 것입니다. (롬8:11) 그러므로 우리가 온전한 구원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성령에 의지해서 자신의 죄를 죽이는 의지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원래 죄의 빚진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령이 우리의 능력인 것을 매 순간 고백하고 추구해야 합니다. (롬8:13)

이로써 우리는 구원받은 사람들의 삶의 목적이 자신의 죄 된 본성을 죽이는 것이라는 사실을 배웁니다. 그들에게는 영적인 삶이 보상으로 주어집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롬8:15-17) 이제 우리는 언제나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아버지 안에서 안전을 보장받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언제나 이 같은 아버지의 영적 풍요함을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백동인 목사 ㅣ 갈보리 장로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