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그리스도인의 평화를 언급했습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5:22) 성경은 세 가지 유형의 평화를 말씀합니다.

영원한 평화가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평화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롬5:1)

또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얻는 외부적 평화가 있습니다. “여러분 쪽에서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게 지내십시오.” (롬12:18)

가장 중요한 성령의 열매가 있습니다. 그 평화는 하나님의 평화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지배하게 하십시오.” (골3:15)

우리의 생각을 사로잡는 것이 우리의 삶을 지배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는지에 따라 죽음 혹은 생명에 이릅니다. (롬8:6) 우리가 비록 이미 구원을 받았다 할지라도 우리에게는 여전히 평화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평화에 대한 세 가지 가르침을 듣습니다.

1. 평화는 우리 안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주님 안에서 기뻐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 초점을 맞추면 주님 안에서 기뻐하게 되고, 주님 안에서 기뻐하면 주님의 평강을 얻게 될 것입니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26:3)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고 있을 때 괴롭거나 우울하지만, 예수님을 바라볼 때 주님의 평화 안에서 쉼을 누립니다. 그래서 평화는 문제의 부재가 아니라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예수님의 현존입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기뻐하라는 음성을 듣습니다. 바울은 감옥 안에 갇힌 예언자로써 형제 자매들이 주님 안에서 기뻐하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로마의 지하 감옥에서 이 위대한 교훈을 언급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 자신은 로마 제국에 의해 죽음 앞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기쁨의 핵심은 상황이 아니라 초점입니다. 상황 탓 만을 한다면 우리는 결코 평안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찾을 때만 우리가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2. 평화는 감사에서 비롯됩니다.

평화와 걱정은 상호 배타적입니다. 걱정은 내일의 구름을 오늘의 햇살 아래로 불러옵니다. “걱정”이라는 말은 “질식하다”를 의미하는 고대 독일어 “부르겐” (wurgen)에서 유래했습니다. “걱정”은 우리의 사고를 억제하며, 진리를 질식하게 하며, 평화의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가 걱정에 붙들려서는 안되는 이유는, 걱정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지혜에 대한 불신입니다. 더욱이 걱정은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걱정은 또한 하나님의 뜻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혼돈의 저자가 아니시며, 평화의 저자이십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4:6) 그러므로 우리는 사실상 대부분의 문제에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3. 평화는 십자가의 성취입니다.

해양 학자들은 최악의 해양 폭풍도 깊이가 25 피트를 넘는 법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폭풍은 미 동부와 서부 태평양을 휩쓸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해발 100 피트 높이로 뛰어올라 온 세상을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폭풍우의 수면 아래 25 피트는 양지 바른 봄날만큼이나 평온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폭풍이 우리를 강타할수록, 우리는 그 안에서 겉과 비교할 수 없는 말할 수 없으리 만치의 평화를 누립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 (요14:27)

우리는 하나님과의 평화를 누리기까지, 결코 진정한 평화를 얻을 수 없습니다. 평화는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발견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평화를 원한다면, 우리 안에 평화의 하나님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평화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의 증거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켜 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이며, 그것이 우리의 마음의 문 앞에 서서 보초를 서는 경비병처럼 세상의 문제로부터 우리를 보호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두 번이나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빈다”고 하셨습니다. 부활하신 날 저녁에 제자들이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문을 걸어 잠그고 있을 때 예수께서 그들 가운데 들어오셔서 그들에게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빈다”고 하셨습니다. 그 때 그는 의심하는 제자들에게 그의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었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을 알아보고 너무나 기뻐했습니다. 그 때 예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우리의 평화인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엡2:14)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평화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성취한 평화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자신의 옆구리를 보여주시며 이 평화를 선포하셨습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평화를 주실 수 있는 이유는 그 분이 흘린 피로 우리 모든 죄를 덮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전에는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분의 피로 하나님께 가까워졌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에베소서 2:13-14)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모든 적대감은 십자가로 흡수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인간과 화해를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공의에 만족하셨습니다. 여러분과 하나님 사이의 평화가 이것들로 완벽히 확립되었습니다. 이제 평생에 걸쳐서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 안에 하나님의 평화가 머물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롬5:1) 다가오는 새해에 이 평화를 마음껏 누리며 또한 사랑하는 이웃들과 나누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백동인 목사 ㅣ갈보리장로교회 시무 (503)856-4233

주소: 8060 SW Brentwood St, Portland, OR 97225 / 주일예배: 12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