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팔자라는 단어와 함께 따라다니는 귀에 익숙한 질문이 있다.  당신은 사주를 믿는냐? 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사주를 일종의 점복술로 인식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점복술은 대개 나뭇가지나 쌀알 등을 흩뿌려서 길흉의 징조나 방향을 예언하는 일반 점쟁이들과, 산판을 들고 괘를 뽑아서 주역의 괘사를 나름대로 풀어 나가는 역점, 그리고 신내림 등으로 점지를 받아 신통력을 가진 무당들의 굿판이 이 분야에 속할 것이다.

어느 것이든, 동양철학에 기초하여 학문적인 토대를 쌓고 업적을 이루어 가는 사주명리학이나 한의학, 동의학과 비교하건데, 점복술은 기본 개념부터가 전혀 다르다.  사주학의 공부과정이 너무 어렵고 힘들어서 실력을 쌓아가는 과정에서 대개의 얼치기 한량들은 초반에 나자빠지고 호구지책을 위해 삼,사류 술사 흉내를 내며 호객하는 경우가 허다하니 진짜 실력자들과 비교하자면 개인적인 실력과 수준의 차이가 천차만별인 것이 이 사주학 분야의 현실인 바, 주위에서 흔한 삼, 사류들을 보고 점복술과 혼동하여 자기는 사주를 믿느니 안믿느니 무분별하게 함부로 말하는 것은 장님 코끼리 만져보는 식이라 다 민초들의 한계요 무지의 소치일 뿐이다.

?운(运) 의 변화

앞서 언급한 여성의 운로를 돌아가 보자.  인생의 초반에는 운의 흐름이 좋아서 칠살의 흉화를 비켜가게 된다.  부모에게 사랑을 듬뿍 받으며 유복하게 자랐고 공부도 잘해서 의대를 나와 의사가 되었다.  또한 결혼도 의사 남편을 신랑으로 맞이하여 만족스러웠으니 인생이 순풍에 돛단듯 남부러울 것이 없이 온가족 모두 다 행복했다.

인생의 스토리가 이렇게만 진행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마는, 그럼, 사주에 포진한 칠살군은 아무 것도 아닌가?

과연 인생의 초반운이 좋아서 부모에게 사랑받으며 유복하게 자란 것이 그녀에게는 다행 이었을까 ?  불행 이었을까?  그것이 결과적으로는 더 불행 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위험이 예고된 명조를 갖고 태어난 여성은 공주처럼 자라서도 그렇게 키워도 안된다.  그것은 고생을 모르고 온실의 화초처럼 자란 사람들은 정작 위기가 닥치면 견디어 내지 못하고 쉽게 꺽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이 여성의 경우, 이십대에 干支로 오는 인성이 칠살의 해악을 순화시켜 준 초반 운 덕에 드러나지 않던 불행이, 인성이 지나가고 칠살이 동(动)하는 30대운에 예정된 수순으로 불행이 시작되는데  그녀의 불행은 결혼한지 몇년이 지나도 임신이 안되는 데서 부터 시작된다.  임신이 안되는 경우야 허다 많겠지만 문제는 그녀의 경우 남편이 삼대독자로 시댁식구들이 모두 오매불망 손자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계속된 불임으로 가정에서 웃음과 행복이 사라져 갔고 그대신 무겁고 침울한 분위기가 짓눌러 왔다.  바로 그녀의 사주에서 운로가 칠살군을 요동치게 만드는 삼십대로 접어든 시기이다.

원래 신경이 예민한 이 여성은 시가에서 오랜 기간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끝내는 이상행동을 연발 하고 결국은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된다.  돈이 아무리 많은 부자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시집 간 후에도 딸을 애지중지 돌봐온 친정 부모들에게도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깊은 슬픔을 안겨주었다.

세월이 지난 지금, 그녀는 멀리 외딴 곳, 아무도 없는 곳에 칩거하며 홀로 지내고 있다.  무엇이 그토록 남부러울 것 없이 풍요하고 순조로운 인생을 이리도 송두리채 망가트려 버렸을까?  답은 바로 그녀의 사주에 있다.

그렇다면, 이 여성이 미리 자기의 사주를 알고 방도를 찾았다면 그러한 화를 면할 길이 있었다는 말인가?

이것은 마치 악성 종양을 미리 발견하면 의사의 처방에 희망을 기대할 수 있는 것과 같다.  본인의 의지와 노력이 관건이지 길은 찾으면 있는 법이다.

水鏡 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