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역사상 당파싸움이 시작된 시점은 이조 14대 선조(宣祖)때라고 역사는 기록하고있다. 소위 붕당(朋黨)이란 그당시의 학문적/정치적 집단이며 붕당정치는 곧 당쟁(黨爭) 또는 당파싸움이라고도 해석 되고 있다.

붕당의 시발점은 1575년(선조8년)으로 이황(이퇴계)/김효원 계열의 동인 (東人)과, 이이(이율곡)/심의겸 계통의 서인(西人)의 두 당파가 대립하므로 시작됐다. 이 동인/서인 두 당파의 발생원인은 그당시의 유학파(儒學派), 왕실외척간, 그리고 기성세대와 신진세대간의 분쟁에서 비롯 됐다고한다.

그후 1591년(선조 24년), 동인은 남인(南人)과 북인(北人)으로 갈라지고 서인은1674년 이조 19대 숙종  즉위이후에 노론(老論)과 소론(少論) 으로 분리됐다. 이로써 애당초 형성된 동인과 서인 두당파는 남인, 북인,노론, 소론의 네파벌로 분리되며 이 사대당파(四大黨派)들의 싸움을 사색당쟁(四色黨爭)으로 호칭되고있다.

여기서 한가지 특기할 역사적 사건은 1592년 (선조 25년)에 시작된 임진외란이다. 당시 선조는 일본 도요도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조선 침략계략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뿐  아니라 동인 서인의 대립/갈등으로 침략군에 대한 사전준비와 초기대응이 전혀 미흡했고 결국 한반도는 가또 기요마사(加藤淸正), 고니시 유끼나가(小西行長)등 왜장이 이끄는 왜군에의해 유린당하는 치욕적인 전란이 연출되기에 이르렀다. 이 혼란속에서 선조 자신은 개성을 거쳐 의주까지 피신하는 수모를 겼어야했다.

필자는 현재 한국의 정치상황을 위에 설명한 붕당정치와 비교 분석 해보고져한다. 물론 시대와 제반여건에 큰 차이가 있다고는 하지만

조선시대와 오늘날 한국의 당파정치와 당파싸움에는 상당부분 공통점이있음을 볼수있다.

선조대의 동인과 서인을 현 한국의 여당(새누리당)과 야당(새민연)에 비유할수있고, 여당내의 친박/비박, 야당내의 친노/비노의 파벌을 남인/북인과 노론/소론의 4대당파와 비교 부합 시켜볼수있다.

이조시대의 당파싸움은 거이 이조말기까지 지속 되었고 그와중에 수많은 환란과 희생자가 발생했었다. 이 당쟁은 일제강점기인 (1910. 8. 29 ~ 1945. 8.15) 35년간 잠잠했었다가 해방과동시 정부가 수립되자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정당들 사이에 옛과 다름없는 치열한 당쟁과 파벌싸움이 재연되고 우리는 이 한심하고 꼴사나운 추태를 오늘날 직접 우리 눈으로 보고있다.

필자가 보기에 한국의 정당정치는 아직도 유치원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있다. 싸움은 쌍방의 이해관계에서 비롯된다. 당장 내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더 크고 먼곳을 바라볼줄 모르는 소인배는 정치인 으로서의 자격이 없다. 특히 법을 제정하는 국회의원들은 정권욕과 기싸움에만 몰두할것이 아니라 국가와 민족의 장래와 안위를 염두에 두고 선의의 경쟁을 앞세우는 위인이 되기를 국민은 바라고있다. 이것이 필자의 염원이요 꿈이기도하다. 몇백년 이여온 당파싸움과 한국인의 기질로봐서 과연 필자의 꿈이 실현될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정의와 진실과 원칙과 화합이 결여되고 비리와 허위와 사욕과 쟁투가 만연된 사회에는 미래가 약속되지 않는다.

오레곤 6.25참전 국가유공자회 회장

윤영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