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각 가정에 장식된 크리스마스 트리 가운데 과연 진짜 나무로 만들어진 것은 얼마나 될까요? 그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확인하려면 다음 사항을 유의해 보십시오. 진짜 나무는 물을 주어야 하고, 바늘이 바닥에 떨어지며, 재채기를 유발시킵니다.

지난 해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약 2,740 만 그루의 진짜 나무가, 그리고 1,860 만 그루의 가짜 나무가 판매되었다고 합니다. “크리스마스 트리”는 미국에서 대단히 큰 비즈니스입니다. 미국에서 매년 4천 만 그루의 “크리스마스 트리”가 생산되고 있고, 이 분야에서 풀타임으로 일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10 만 명이 넘습니다. 1 백만 에이커가 넘는 토지가 “크리스마스 트리” 생산을 위해 조성되었습니다. 금년에 대략 미국 가정의 21 %가 진짜 나무를, 48 %가 가짜 나무를 구입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트리 전구와 솔방울, 금박지, 털실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크리스마스 트리 없이 성탄절을 보낸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크리스마스 트리”가 원래 어떻게 생겨 났는지, 그리고 불빛과 반짝임과 장식을 걸친 그 나무 자체에 원래 무슨 의미가 있었는지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크리스마스 트리”의 관습은 1300년 전에 독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어느 날 저녁 늦게 숲 속을 산책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날이 어두워지면서 아름다운 별들이 자신의 주변에 펼쳐지고 있는 것을 감상하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루터는 그 아름다운 별들을 나무에 매달 수는 없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1535 년에 작은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해서 자신의 아이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이로써 마틴 루터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직접 만들어 집 안에 설치한 최초의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탄절에 집안에서 반짝거리는 장식의 나무를 왜 “그리스도 나무” 라고 부르게 되었는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나무 재질의 말 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첫 킹사이즈 침대” 라고 부릅니다. 그는 나무를 다루는 목수 교육을 받았고 또한 나무를 다듬어 파는 일로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그리고 생애 마지막에 나무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셨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이 구원의 사역을 나무에서 이룬 것을 눈 여겨 보았습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2:24)

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가 아닌 나무에서 죽으셨다는 표현에 내 눈을 의심했습니다. 사복음서의 관련 기록을 살펴볼 때 예수님은 “곧게 세운 장대” 혹은 “말뚝”을 의미하는 “스타우로스”에서 처형되셨습니다. 십자가를 뜻하는 라틴어 “크룩스”도 헬라어 “스타우로스”에서 번역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원래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신 것입니다.

“나무”라는 표현 대신 “십자가”라는 단어가 사용된 것은 후대에 이루어졌습니다. 로마인들이 죄인들을 십자가에 매달아 처형한 것을 성서번역자들이 참고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스타우로스”는 후대에 로마의 처형 도구인 “십자가”를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조상의 하나님은, 그대들이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살리셨습니다.” (행 5:30)

“이와 같이, 그에 대하여 기록된 것을 다 행한 뒤에, 그들은 예수의 시신을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습니다.” (행 13:29)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사람이 되심으로써,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해 주셨습니다.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사람은 모두 저주를 받은 사람이다” 하였기 때문입니다.” (갈 3:13)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나무로 반복해서 언급되었습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트리”의 원래 용어는 독일어로 “Christ Baum” (그리스도 나무)였습니다.

성경은 십자가는 원래 “그리스도의 나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크리스마스 트리”였습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구원을 위해 이 땅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계획하고, 심고 배치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올 해에도 각 가정마다 설치된 화려한 “크리스마스 트리”를 보면서 다음 몇 가지를 기억할 수 있어야 합니다.

1.예수님께서 우리 위해 목숨을 버리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는 우리 죄를 그의 몸에 몸소 지시고, 나무에 달리셨습니다.” (베드로 전서 2:24a)

이 진술은 성경 전체의 주제입니다. 십자가에서의 그의 죽음은 성경 전체에 배치된 하나님의 “크리스마스 트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빌레몬서 2 장과 3 장을 제외한 신약성경의 모든 책에 하나님의 “크리스마스 트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가 언급되어 있습니다.

마태는 예수님께서 친히 나무에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 주신 것을 전체 141 절을 동원해서 크리스마스 트리로 장식했습니다. 사복음서 가운데 가장 짧은 마가복음은 116 절을 통해서 하나님의 “크리스마스 트리”에서 일어난 일을 묘사했습니다. 모든 복음서 중에 분량이 가장 많은 누가복음은 하나님의 “크리스마스 트리”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알려줍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크리스마스 나무로 알려지시기까지 예수님께서 택한 여정을 묘사하는데 그의 복음의 절반 정도를 사용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의 중요성을 이해하기 전에는 예수님의 탄생의 중요성은 결코 이해될 수 없습니다. 신약 성경에 기록된 가장 명백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의 목적은 이렇게 표현되었습니다.

“그는 우리 죄를 그의 몸에 몸소 지시고, 나무에 달리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위해 그 나무에 매달려 죽으셨습니다. 그 십자가는 궁극적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에 겪는 가장 큰 기쁨의 이유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매 해 “크리스마스 트리”를 보면서 희망찬 새 해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나무”를 보면서 우리의 진정한 소망은 하나님 안에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크리스마스 트리”를 볼 때마다, 항상 “그리스도의 나무”를 보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의 나무는 “십자가”였습니다. 그는 그 나무에 매달려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2.우리가 지금 그를 위해 살고 있음을 생각하십시오.

이것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기독교를 오해하는 부분입니다. 왜 예수님은 자신의 목숨을 바치셨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죄에는 죽고, 의에는 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벧전 2:24b)

그래서 원래 죄인이었던 우리가 그분의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약간의 역설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놓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중요한 한 마디를 사용합니다. 이 단어는 신약 성경 전체에서 단 한 번 사용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우리가 죄에는 죽고”에서 “죽었다”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면직되었다” 혹은 “제거되었다”는 의미입니다.

베드로가 우리에게 전한 것은, 하나님의 “크리스마스 트리”에서 일어난 일, 즉 예수님의 죽음으로 우리는 죄의 본성과 죄의 힘을 우리 몸에서 완전히 제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위해 살 수 있습니다. 그로부터 옳은 일을 할 수 있는 자격을 얻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친히 나무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이제 그분은 우리 안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이 내 안에서 살 수 있도록 우리의 죄에 대하여 죽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결코 우리에게 그분의 탄생을 기억하라고 요구하신 적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빛과 캐롤과 선물과 파티와 축하를 요구하신 적도 없습니다. 대신 예수님은 우리가 그분의 죽음을 기억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우리의 구원은 그의 죽음에서 완성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볼 때마다 그분의 탄생 대신 그의 죽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나무가 “그리스도 나무”로 알려졌던 것을 기억하십시오. 나무는 생명을 나타냅니다. 나무는 대기의 이산화탄소를 제거하고 광합성 과정을 통해서 우리가 안정적으로 숨 쉴 수 있는 맑은 산소를 생성합니다. 마찬가지로, 십자가인 “그리스도 나무”는 우리가 영생의 숨을 쉴 수 있도록 영적 산소를 우리에게 공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크리스마스 트리”를 볼 때마다 이 질문 앞에 서게 됩니다.

“나는 하나님의 나무로 무엇을 할 것인가?”

“나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크리스마스 트리에서 한 일을 받아들일 것인가?”

매년 크리스마스 때마다 집 바깥에서 집 안으로 나무를 가져와 트리로 장식하는 것은 우리 모두를 들뜨게 하는 일입니다. 그것이 바로 나무에 매달려 죽으신 주님이 원하시는 방식입니다. 우리 위해 죽으신 그분은 이제 우리 바깥의 나무에서 우리 안의 그리스도 나무로 옮겨지는 것을 원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살 수 있도록 힘을 주시고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고 싶어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볼 때마다 그 분의 삶은 나를 위한 삶이었고, 나의 삶은 이제부터 그리스도를 위한 삶이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3. 그의 삶과 우리의 삶 사이에 간격이 사라진 것을 기뻐해야 합니다.

이 마지막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가 매를 맞아 상함으로, 여러분이 나음을 얻었습니다.” (벧전 2:24)

이 말씀은 이사야 53:5의 인용입니다.

“그가 매를 맞음으로써 우리의 병이 나았다.”

하나님의 첫 번 “크리스마스 트리”는 예수님이 나무에서 겪으신 일 때문에 죄의 독을 해독시키는 해독제가 되었습니다. 그것으로 우리의 죄의 병을 치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내 죄가 치유되며 나와 하나님 사이에 더 이상 어떤 간격도 존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원래 선천적인 전염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방과 치료가 불가능한 전염병이었습니다. 그래서 거룩하신 하나님은 죄인을 자신과 격리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분은 죄와 전혀 섞일 수 없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직접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죄인과 세상의 죄를 모두 그에게 담당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죄인들의 질병을 모두 그 트리가 짊어지도록 하셨습니다. 이로써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모든 죄의 병을 고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건강하게 나머지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크리스마스 트리”를 빛으로 장식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하늘 높은 곳에서 비치게 하셨습니다.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 나는 세상의 빛이다.” (요 9:5)

우리가 2 천년 전에 하나님의 “크리스마스 트리”에서 일어난 일을 믿게 되었다면, 이 성탄절에 하나님의 “사랑의 빛”과 하나님의 “은혜의 빛”과 “자비의 빛”이 우리에게 비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위대한 것은 하나님의 “용서의 빛”입니다.

지난 해 혹은 그 전에 사용했던 크리스마스 트리 상자들이 교회와 가정의 창고에 제멋대로 쌓여 있을 것입니다. 대개 먼지투성이 옷장이나 창고, 다락방에서 그것을 발견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이 언제 적 것인지도 기억 못할지 모릅니다. 할머니가 오래 전에 장식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먼지 가득한 상자 뚜껑이 열리고 집안으로 옮겨진 나무 위에 갖가지 장식과 전구가 덧입혀지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트리로 탈바꿈될 것입니다.

우리들의 하늘 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드시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친히 나무에 매다셨습니다. 그리고 죄와 질병, 죽음으로 신음하던 사람들이 그 어두움에서 벗어나 영원히 하나님과 더불어 살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크리스마스 트리”의 모양을 생각해보십시오. 삼각형입니다. 그 모양은 수직으로 하늘을 가리킵니다. 밑바닥에는 인류가 있고, 맨 위에는 하나님이 있고 그 사이에 장식이 있습니다. 2 천년 전, 십자가의 바닥에, 죄 많은 사람들이 서있었습니다. 그 십자가에 장식된 것은 세상의 빛, 하나님의 아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그 “첫 번째 크리스마스 트리”를 우리에게 주시고 그의 아들로 장식을 꾸며서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이제 “크리스마스 트리”를 볼 때마다 그 나무가 우리를 위해 자신의 삶을 주셨던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 “크리스마스 트리”가 여러분과 하나님 사이를 가로막았던 모든 죄와 죽음의 벽을 허물었고 더 이상 여러분과 하나님 사이에 어떤 벽도 존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의 삶이 그분이 보시기에 거정 아름다운 천국의 장식이 되게 하십시오. 여러분을 위해 죽으신 그 분이 당신의 삶을 보며 기뻐할 수 있게 하십시오.

백동인 목사 ㅣ갈보리장로교회 담임 (503)856-4233

교회 주소: 8060 SW Brentwood St, Portland, OR 97225 / 주일예배: 12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