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이 신약성경 디모데 후서를 쓸 때, 그에게 삶의 끝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추측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건강상으로나 예감으로나 분명한 사실이었습니다. 그는 로마에서 가택 연금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에게 더 이상의 삶의 비전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에베소에 있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이별의 편지를 썼습니다. 그는 이 부분에서 가슴 끝에 차오르는 눈물을 억제하느라 한동안 펜을 들지 못했을 것입니다.

<디모데 후서 4 6 > “나는 이미 (피를) 부어드리는 제물처럼 바쳐질 때가 되었고세상을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

오해가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이 고단했던 삶을 끝낼 때가 되었으니 세상을 정리하라는 뜻으로 글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아침 저는 우리의 남은 날들 가운데 더 잘 사는 삶의 비밀을 예습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오늘의 본문을 소개합니다. 더 잘 살기 위한 삶의 비밀에는 세 가지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1. 싸우는 것이 인생의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첫째로, 바울은 “나는 선한 싸움을 싸웠다” 라고 합니다.

왜 이런 표현을 썼을까요? 이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왜 그는 자신의 삶을 산들바람이라고 표현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누구나 인생을 지나오며 좋은 시간과 힘든 시간의 양 극단적인 경험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 두 가지 가운데 한 마디로 인생을 표현하라고 했을 때 무엇이라고 말하고 싶습니까? 바울은 인생이 투쟁이라는 표현을 선택했습니다.

우리는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이 투쟁인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얼마 전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이룩한 대한민국의 대통령선거가 단지 민주적이고 평화적이기만 했습니까? 미국에 살고 있는 여러분이 운전면허증이나, 보험이나, 그 밖의 대출이나 세금과 관련해서 관련 공무원들과 접촉할 때 그 모든 것은 본질적으로 항상 투쟁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강한 경제, 가장 세련된 민주주의를 자랑하는 미국의 정치를 보십시오. 그 안에서 경제적, 사회적, 도덕적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정부는 항상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현대 교회를 주목해 보십시오. 누군가는 교회는 원래 투쟁하지 않는 곳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교회 출석을 항상 힘들어 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그것은 리더십, 출석, 자원 봉사(헌신), 헌금 등에 관련해서 자기 내면의 투쟁을 경험하고 있는 증거입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그림자로 존재하기 위해 늘 영적으로 투쟁 상태에 있습니다.

인생의 투쟁은 기관에 머물지 않습니다. 우리의 개인적인 삶에도 투쟁이 발생합니다. 인생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모든 사람이 투쟁에 연루되어 있습니다. 신생아는 저절로 태어나지 않습니다. 저희 가정도 거의 수개월 뱃속에서 키운 아이를 잃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가진 아이도 사산되기 직전에 병원에 입원해서 한 주간 주사를 맞고 기적적으로 살려낼 수 있었습니다.

모든 신생아는 태어나기 위해 투쟁합니다. 그 다음 아이들이 겪는 교육 과정은 투쟁입니다. 한국의 경우, 초등학교 3학년만 되어도 새벽 6시에 나가 거의 밤 12시가 다 되어 집에 돌아옵니다. 배움은 투쟁입니다.

십대는 알게 모르게 또래 압력에 시달립니다. 이 투쟁을 부모님께 알리지 않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사춘기를 넘어서서 의젓한 성인이 되는 과정은 인생이 최초로 겪는 성인의 투쟁입니다. 이제 성인이 된 젊은 청춘들은 자신의 존재가 유용할 틈새 시장을 찾아야 합니다.

결혼 상대자를 찾는 것도 투쟁입니다. 잘 생기거나 예쁘고 성격 좋고 가문이나 능력이 좋은 예비 배후자를 또 다른 경쟁자가 그대로 둘 리 만무합니다. 그걸로 끝이 아닙니다.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자녀를 양육하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매일 어린 자녀들을 학교와 스포츠센터에 데리고 다녀야 하는 것 만이 귀찮은 문제가 아닙니다. 돈과 열정과 적성과 성실성이 다 받쳐져야 합니다.

노년이 되어도 투쟁은 그치지 않습니다. 건강 문제와 재정 문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요람에서 무덤에 이르는 인생은 죽음 너머를 두려움으로 바라볼 정신적 여유를 가지지 못할 정도로 평생 투쟁에 시달립니다. 우리 모두는 누구나 다 투쟁 중에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가 겪고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어려운 투쟁은 내면의 싸움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것은 내 안에서 벌어지는 투쟁입니다. 그것은 자기 통제와 자기 추구에 대한 투쟁입니다. 우리의 내면은 자기 존재를 감추지 않습니다. 우울, 강박, 편집, 공황장애, 히스테리….

내가 지금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아니면 성공적으로 은퇴했다고, 아니면 성공적으로 직업 세계에 진입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투쟁이 멈춘 것이 아닙니다. 그 투쟁을 감추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 있게 선언합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웠다

꼭 인생의 끝은 아닐지라도 우리가 선한 싸움을 싸웠던 바울의 말을 매일 저녁 잠자리에서 되풀이할 수는 없을까요? 오늘 하루를 후회보다 만족과 기쁨으로 돌아볼 수는 없을까요? 바울은 오늘도 “나는 투쟁했다!” 라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그것을 비관적으로 보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선한 싸움이었으니까요!

  1. 그렇다고 노선 이탈이 패배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둘째로, 바울은 인생의 사막화가 패배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로마 황제 앞에 끌려와 자기에게 씌워진 무거운 혐의를 벗어내야 했습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단 한 사람의 배심원에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카이사르의 손 안에 있는 바울의 삶! 이 중요한 시기에 사도는 외로움을 느낍니다. 그는 친구들을 그리워합니다.

그러나 그의 심각한 편지에서 10년 넘게 바울의 선교여행 동반자였던 바나바가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바울의 절친한 친구이며 또 다른 복음서의 저자인 마가는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바울에게서 도망 쳤습니다.

위대한 의사이자 세 번째 복음의 저자인 누가만 바울 옆에 남아있었습니다. 선교 활동 중에 늘 함께 했던 동역자 디모데, 디도, 실라는 지금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우리는 바울이 가장 암울한 시간에 고독 속에 갇히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너무 익숙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체포되셨고, 그 밤에 제자들은 순식간에 비겁한 캐리커처로 변모합니다. 요한을 제외한 모든 제자들은 3년간이나 밤낮 없이 함께 동거 동락했던 친구 예수님을 부정했습니다. 사람은 버려짐과 외로움에 면역되지 않습니다. 성인 자녀가 다 커서 부모의 품을 떠나면 부모는 순식간에 무서운 빈 공간의 나락으로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그 빈 둥지 증후군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오늘 본문에 비밀이 숨어있습니다. 제가 오늘 버려질 때의 시간을 여러분이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알려드립니다. 다시 한번 바울의 말을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디모데 후서 4 >

  1. 내가 처음 나를 변론할 때에나의 편에 서서 나를 도와준 사람이 하나도 없고모두 나를 버리고 갔습니다….
  2. 주께서 곁에 계셔서나에게 힘을 주셨습니다주께서 나를 사자의 입에서 건져 내셨습니다.
  3.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 내시고 구원하셔서그분의 하늘나라에 들어가게 해주실 것입니다

이제 다음 세 가지를 주목하십시오.

나는 그들과 맞서 싸울 수는 없었다그러자 주님이 편이 되셔서 힘을 더해 주셨다나를 통하여 전도의 말씀이 완전히 전파되게 하시고모든 이방 사람이 그것을 들을 있게 하셨다.”

세가지 비밀을 알아 내셨습니까? 1)그는 자신을 버린 사람들을 용서합니다. 2)그리고 자신을 버리지 않으신 주님으로부터 힘을 얻습니다. 3)그리고 그는 계속해서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사람들이 죄에서 벗어나 구원을 얻도록 돕습니다.

한때 유명한 정신과 의사였던 Karl Menninger 박사에게 어떤 사람이 물었습니다. 신경 쇠약으로 고통을 느끼는 사람에게 어떤 조언을 주실 있나요?” 그러자 그는 가차없이 대답합니다. 집을 떠나십시오철도 선로를 건너십시오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이 되십시오외로움을 치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활동을 늘리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기 위해 무엇인가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1. 신앙을 잃어 버리지 말아야합니다.

죽음을 예감하고서도 바울은 나는 믿음을 지켰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이 모든 것을 포기해야 했던 이유를 되돌아 보면 이것은 놀라운 선언입니다.

저는 바울이 자신의 20여년 간에 걸쳐서 진행했던 자신의 선교 사역을 정리한 편지에 묘사한 주목할만한 표현들을 잊을 수 없습니다. 굶주림갈증벌거 벗음추위불면증노숙박해시달림고통 받음투옥중상 모략가난, 39번의 채찍에 맞음난파표류도둑그리고 동포는 물론이고 이방인들로부터 끊임없이 겪은 살해 위협 …..”

바울은 자신이 발로 밟은 모든 도시, 국가, 바다, 그리고 자신이 만난 모든 사람(유대인과 이방인)이 모두 다 자신에게 위협적이었다고 썼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왜 그런 지난한 삶을 성공으로 회상하고 있을까요? 여기에 그의 놀라운 비밀이 숨어있습니다.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이 믿음을 지켰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성공으로 판단했습니다.

<디모데 후서 4 17 > “나를 통하여 전도의 말씀이 완전히 전파되게 하시고모든 이방 사람이 그것을 들을 있게 하시려는 것입니다주께서 나를 사자의 입에서 건져 내셨습니다.”

나쁜 시간에는 믿음을 잃어버리기가 쉽습니다. 마찬가지로 좋은 시간에도 당신은 믿음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당신은 나쁜 시기에는 버려진 느낌을, 좋은 시간에는 마치 당신이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처럼 느낍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3:11에서 우리가 처음 믿을 때보다우리의 구원이 가까워졌습니다 라고 썼습니다. 이 말씀은 성 어거스틴을 회개시킨 말씀으로 유명합니다.

<로마서 13 11 > “여러분은 지금이 어느 때인지 압니다잠에서 깨어나야 때가 벌써 되었습니다지금은우리가 처음 믿을 때보다우리의 구원이 가까워졌습니다.”

바울은 잠에서 깨어나야 할 때가 벌써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부활을 내다보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동안 이탈했어도 괜찮아…… 지금 믿음을 지키고 있다면 너는 이긴 거야!” 라고 말씀합니다.

나는 좋은 싸움을 싸웠다나는 경주를 마쳤다나는 믿음을 지켰다.”

우리 삶의 여정이 끝나갈 때, 우리가 다시 이 말을 되풀이할 수 있을까요?

이 말을 뒷날로 미루지 말고 오늘 되풀이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이미 사도 바울 이상의 삶을 사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백동인 목사 ㅣ갈보리장로교회 담임 (503)856-4233

교회 주소: 8060 SW Brentwood St, Portland, OR 97225 / 주일예배: 12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