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는 모세의 방주, 노아의 방주와 언약궤가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 세 방주는 모두 영어 성경에서 Ark라는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방주들은 모두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 앞서가심을 상징합니다.

출애굽기는 긴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한 용감한 어머니가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모세가 태어났을 때 이집트 왕 바로는 새로 태어나는 모든 히브리 남자 아이를 죽이라는 칙령을 발표했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목소리가 어머니의 마음 속에서 속삭였습니다. 특별히 갓 태어난 핏덩어리 아이가 속삭였습니다. 그 목소리에 이끌려 그녀는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3개월 동안이나 아이를 숨겨 키웠습니다. 그리고 그 아기를 더 이상 숨길 수 없을 만큼 아이 울음 소리가 커졌을 때 그녀는 그 이상의 위험한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신앙으로 무장해 있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며 어머니의 신앙이 담대해진 것입니다.

그녀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그녀는 나일강에 즐비한 갈대를 꺾어와 물이 새지 않는 단단한 요람 보트를 만들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이 이 아기의 장래를 지킬 것을 간절히 염원하며 그 아이를 그 보트에 실어 나일강 갈대 숲 사이로 띄워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하나님이 행동하시기를 기대하며 아이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이 어린 핏덩이가 탄 보트는 구원의 방주였습니다. 이 방주는 갓 태어난 모세가 바로의 딸의 눈에 뜨일 때까지 안전하게 지켜주었습니다. 이 갈대 방주는 하나님의 기적적인 계획과 개입의 도구로 사용된 위대한 도구였습니다.

모세의 방주가 있기 훨씬 전에 다른 방주가 있었습니다. 창6장 5-8에 보시면, “주께서는,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 차고, 마음에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언제나 악한 것뿐임을 보시고서 …. 사람을 이 땅 위에서 쓸어버리겠다 … 그러나 노아 만은 주님께 은혜를 입었다”고 진술합니다.

홍수 심판이 결정된 가운데 노아 만은 구원받을 것이 예고되고 있습니다. 주님은 그에게 방주를 지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는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산악지대에 살고 있었고, 그가 사는 가까이에 강이나 바다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그에게 큰 방주를 지을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노아는 이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마침내 홍수가 나고 땅에서 물이 솟구치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은 하늘의 창문이 열리고 비가 40 주야로 땅에 쏟아졌다고 말씀합니다. 600세 되던 해에 노아는 그의 아들들과 아내, 그리고 짐승들의 대 퍼레이드를 방주로 이끌었습니다. 지구 표면에 물이 차오르며 산에 지어진 방주가 떠올랐습니다. 단 한 사람이 하나님의 부름에 응답한 결과 그가 지은 배가 그와 그의 가족, 미래의 인류를 살린 구원의 방주가 되었습니다.

출애굽기 25:10-22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성막을 지으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장막이 어떻게 지어져야 하는지 그 안에 들어갈 가구까지 자세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성막에는 일곱 가구를 배치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방주(ark, 언약궤) 였습니다.

언약궤는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길이 4 피트, 너비와 높이가 2.5 피트 크기로 만든 직사각형 모양의 방주였습니다. 상단에 천국을 대표하는 날개 달린 생물의 조각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언약궤는 나무로 만들어 겉에 금으로 칠한 것으로 히브리인들에게 가장 거룩한 것이었습니다. 방주에는 긴 장대가 앞 뒤로 뻗어 있어서 이동할 때 레위인들이 쉽게 들어올려 메고 이동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제 성막이 완성되자 이 방주는 항상 거룩한 지성소에 배치되었고 대제사장이 일년에 한 차례 그 방에 들어가는 경우를 빼고 아무도 그 방주를 볼 수 없게 했습니다. 그러나 매년 속죄일에 대제사장은 궤가 있는 지성소에 어린 양의 피를 가져와 희생 제물로 그 자리에 쏟았습니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여행을 계속해야 하는 사람들이었으므로 성막은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레위인들이 이스라엘이 가는 곳마다 방주를 메고 앞서 이동했습니다. 이 방주는 이스라엘이 가는 모든 장소에서 하나님의 임재 하심을 상징했습니다.

여호수아 3장 3-4을 보시면, 백성들이 여호수아를 따라 요단 강을 건너기 위해 장막에서 나왔을 때,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이스라엘 사람들보다 앞서 있었습니다. 그 다음 극적인 아름다운 사건이 전개됩니다. 방주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에 이르렀을 때, 강물은 제방까지 가득 차 올라있었습니다. 그 다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잘 알고 계시죠? 제사장들은 가던 걸음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극적인 장면이 펼쳐집니다. “위에서부터 흐르던 물이 멈추었다. 그리고 사해로 흘러가는 물줄기가 완전히 끊겼다. 그래서 백성들은 여리고 맞은쪽으로 건너갈 수 있었다.” (여호수아 3:16)

그리고 그 다음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는 것을 봅니다. “온 백성이 모두 요단 강을 건널 때까지, 주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강 가운데의 마른 땅 위에 튼튼하게 서 있었다.” (여호수아 3:17)

하나님께서 여러분보다 앞서 가시며 여러분의 길을 예비해 주심을 믿으십니까? 하나님은 여러분 삶의 모든 중요한 순간에 언제나 앞서 가셔서 거기에 미리 머물고 계십니다. “너희가 이전에 가 보지 않았던 길을 가기 때문에, 제사장들이 멘 방주가 너희가 가는 길을 안내할 것이다.” (여호수아 3:4)

우리는 이전에 가보지 않았던 길을 가기 전, 언제나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시간을 낭비합니다. 솔직이 요단의 거센 물길을 앞에 두고 이 강을 건널 수 있을 것인가 의심하고 계십니까? 차가운 물이 두렵습니까? 거센 물결이 두렵습니까? 살고 싶습니까? 우리는 돌아온 길을 동경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동행을 믿으십시오. 혹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계곡을 지나고 계실지라도 주께서 앞서 가시며 원수를 제거하시니 앞의 찬 물결을 두려워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믿음으로 강 건너를 바라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우뚝 서 계십니다. 그는 우리의 길을 예비하고 있습니다. 이전에 가 보지 않았던 넘쳐 흐르는 요단 물줄기에서 우리는 두려움 대신에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전쟁의 폭풍 한가운데서 둑까지 차오른 물을 이 많은 사람들이 함께 안전하게 건너, 꿈에 그리던 가나안 복지에 도달할 수 있을까요? 약속하신 그 땅의 새 주인으로 살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단호히 말씀하십니다. “놀라지 말라,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위험한 길을 내가 먼저 가서 네 앞 길을 예비하겠다.” 이것이 요단의 방주의 의미입니다. 요단의 언약궤, 하나님의 영원한 실체입니다.

백동인 담임목사

갈보리장로교회: 8060 SW Brentwood St, Portland, OR 97225 / 주일예배: 12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