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사도 바울에게 삶의 끝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는 로마에서 가택 연금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에게 더 이상의 삶의 비전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에베소에 있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이별의 편지를 썼습니다. “나는 이미 (피를) 부어드리는 제물처럼 바쳐질 때가 되었고, 세상을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 (디모데 후서 4: 6) 오늘 저는 우리의 남은 날들 가운데 더 잘 사는 삶의 비밀을 예습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이 글을 씁니다. 더 잘 살기 위한 삶의 비밀에는 세 가지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1. 잘 싸우는 것에 인생의 가치가 있습니다.

첫째로, 바울은 “나는 선한 싸움을 다 싸웠다” 라고 합니다. 바울은 인생이 투쟁이라는 표현을 선택했습니다. 우리는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이 투쟁인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미국에 살고 있는 거주자들이 운전면허증이나, 보험이나, 그 밖의 대출이나 세금과 관련해서 관련 공무원들과 접촉할 때 그 모든 것은 본질적으로 항상 투쟁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강한 경제, 가장 세련된 민주주의를 자랑하는 미국의 정치를 보십시오. 그 안에서 경제적, 사회적, 도덕적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정부는 항상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현대 교회를 주목해 보십시오. 누군가는 교회는 원래 투쟁하지 않는 곳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교회 출석을 항상 힘들어 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그것은 리더십, 출석, 자원 봉사(헌신), 헌금 등에 관련해서 자기 내면의 투쟁을 경험하고 있는 증거입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그림자로 존재하기 위해 늘 영적으로 투쟁 상태에 있습니다.

인생의 투쟁은 기관에 머물지 않습니다. 우리의 개인적인 삶에도 투쟁이 발생합니다. 인생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모든 사람이 투쟁에 연루되어 있습니다. 신생아는 저절로 태어나지 않습니다. 모든 신생아는 태어나기 위해 투쟁합니다. 그 다음 아이들이 겪는 교육 과정은 투쟁입니다. 배움은 투쟁입니다. 십대는 알게 모르게 또래 압력에 시달립니다. 이 투쟁을 부모님께 알리지 않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사춘기를 넘어서서 의젓한 성인이 되는 과정은 인생이 최초로 겪는 성인의 투쟁입니다. 이제 성인이 된 젊은 청춘들은 자신의 존재가 유용할 틈새 시장을 찾아야 합니다.

결혼 상대자를 찾는 것도 투쟁입니다. 잘 생기거나 예쁘고 성격 좋고 가문이나 능력이 좋은 예비 배후자를 또 다른 경쟁자가 그대로 둘 리 만무합니다. 그걸로 끝이 아닙니다.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자녀를 양육하기 위해 매일 투쟁해야 합니다. 매일 어린 자녀들을 학교와 스포츠센터에 데리고 다니는 것만이 귀찮은 문제가 아닙니다. 돈과 열정과 적성과 성실성이 다 받쳐져야 합니다.

노년이 되어도 투쟁은 그치지 않습니다. 건강 문제와 재정 문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요람에서 무덤에 이르는 인생은 죽음 너머를 두려움으로 바라볼 정신적 여유를 가지지 못할 정도로 평생 투쟁에 시달립니다. 우리 모두는 누구나 다 투쟁 중에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가 겪고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어려운 투쟁은 내면의 싸움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것은 내 안에서 벌어지는 투쟁입니다. 그것은 자기 통제와 자기 추구에 대한 투쟁입니다. 우리의 내면은 자기 존재를 감추지 않습니다. 우울, 강박, 편집, 공황장애, 히스테리…. 내가 지금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아니면 성공적으로 은퇴했다고, 아니면 성공적으로 직업 세계에 진입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투쟁이 멈춘 것이 아닙니다. 그 투쟁을 감추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 있게 선언합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다 싸웠다.” 즉 바울은 오늘도 “나는 성공적으로 투쟁했다!” 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선한 싸움이니까요!

2. 인생의 사막화가 패배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로마 황제 앞에 끌려와 자기에게 씌워진 무거운 혐의를 벗어내야 했습니다. 단 한 사람의 재판관인 로마 황제의 손 안에 있는 바울의 삶! 이 중요한 시기에 사도는 외로움을 느낍니다. 그는 친구들을 그리워합니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편지에서 10년 넘게 바울의 선교여행 동반자였던 바나바가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바울의 절친한 친구이며 마가복음의 저자인 마가는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바울에게서 도망 쳤습니다. 위대한 의사이자 누가복음의 저자인 누가만 바울 옆에 남아있었습니다. 선교 활동 중에 늘 함께 했던 동역자 디모데, 디도, 실라는 지금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우리는 바울이 가장 암울한 시간에 고독 속에 갇히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너무 익숙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체포되었고, 그 밤에 제자들은 순식간에 비겁한 캐리커처로 변모합니다. 요한을 제외한 모든 제자들은 3년간이나 밤낮 없이 함께 동거 동락했던 친구 예수님을 부정했습니다. 사람은 버림받음과 외로움에 면역되지 않습니다. 성인 자녀가 다 커서 부모의 품을 떠나면 부모는 순식간에 무서운 빈 공간의 나락으로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그 빈 둥지 증후군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오늘 본문에 비밀이 숨어있습니다. 다음 세 가지를 주목하십시오.

디모데 후서 4:16~18을 보면, 바울은 1)그는 자신을 버린 사람들을 용서합니다. 2)그리고 자신을 버리지 않으신 주님으로부터 힘을 얻습니다. 3)그리고 그는 계속해서 복음을 선포하기로 다짐합니다. 그는 사람들이 죄에서 벗어나 구원을 얻도록 돕기로 작정합니다.

3. 신앙을 잃어버리지 말아야합니다.

죽음을 예감하고서도 바울은 “나는 믿음을 지켰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선언입니다. 저는 바울이 자신의 20여년 간에 걸쳐서 진행했던 자신의 선교 사역을 정리한 편지에 묘사한 주목할 만한 표현들을 잊을 수 없습니다. “굶주림, 갈증, 벌거 벗음, 추위, 불면증, 노숙, 박해, 시달림, 고통 받음, 투옥, 중상 모략, 가난, 39번의 채찍에 맞음, 난파, 표류, 강도, 그리고 동포는 물론이고 이방인들로부터 끊임없이 겪은 살해 위협 등…..”

바울은 자신이 발로 밟은 모든 도시, 국가, 바다, 그리고 자신이 만난 모든 사람(유대인과 이방인)이 모두 다 자신에게 위협을 가했다고 썼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왜 그런 지난한 삶을 성공으로 회상하고 있을까요? 여기에 그의 놀라운 비밀이 숨어있습니다.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이 믿음을 지켰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성공으로 판단했습니다. 우리는 나쁜 시간에 믿음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또한 좋은 시간에도 믿음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나쁜 시기에는 버려진 느낌을, 좋은 시간에는 마치 우리가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처럼 느낍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로마서 13:11에서 “우리가 처음 믿을 때보다, 우리의 구원이 더 가까워졌습니다” 라고 썼습니다. 바울은 잠에서 깨어나야 할 때가 벌써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부활을 내다본 것 같습니다. 그는 “그 동안 이탈했다고 해도 괜찮아…… 지금 믿음을 지키고 있다면 너는 이긴 거야!” 라고 말합니다.

“나는 좋은 싸움을 싸웠다. 나는 경주를 마쳤다. 나는 믿음을 지켰다.” 우리 삶의 여정이 끝나갈 때, 우리가 다시 이 말을 되풀이할 수 있을까요? 저와 여러분이 이 말을 뒷날로 미루지 말고 오늘 되풀이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미 사도 바울 이상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백동인 목사 ㅣ갈보리장로교회 담임 (503)856-4233

교회 주소: 8060 SW Brentwood St, Portland, OR 97225 / 주일예배: 12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