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역사상 가장 큰 팬데믹은 14세기의 흑사병과 100년 전 발생한 스페인 독감입니다. 스페인 독감은 1918년 프랑스 주둔 미군부대에서 발생해서 삽시간에 전 세계로 확산되었고 사망자만 5천 만이나 됩니다. 1차 세계대전의 사망자는 약 1,500만 명인데 스페인 독감의 사망자는 조선에만 14만 명, 전세계적으로 최대 1억이나 되었습니다. 그 비극적인 감염병에 유럽의 미술계가 멈춰 섰고 촉망받던 많은 예술가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스페인 독감으로 비극적인 상황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시대를 딛고 일어선 위대한 화가가 있습니다. 그가 바로 ‘절규’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에드바르 뭉크 (1863-1944)입니다.

뭉크 가족은 당시 불치병이었던 결핵과 정신병으로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가 5살 때 그의 어머니가 결핵으로 사망했고 그의 한 살 많은 누이도 15살 때 결핵으로 사망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26살 때 우울증을 앓다가 사망했습니다. 그의 남동생은 뭉크가 32살 때 폐렴으로 사망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가족은 언제나 죽음과 동행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자신의 정신을 억압하고 있는 죽음으로 작품으로 묘사했습니다. 그는 ‘병든 아이’ (1923, 초기)라는 작품에서 그의 청춘을 짓누르고 있던 가족의 죽음을 묘사했습니다. 그 그림에서 침대에 누워있는 그의 누이는 베개에 힘없이 기대어 초점없이 엄마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엄마는 그녀의 힘없는 손을 잡고 머리를 떨어트린 채 울고 있습니다. 누이는 “엄마 괜찮아!” 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의 엄마는 모든 것이 그녀의 탓인 것처럼 머리 숙여 흐느끼고 있습니다.

그는 그 작품에서 과거의 기억에 묻혀 있던 대상을 소환해서 그렸습니다. 누이와 엄마의 슬픈 공감의 모습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기억에 남지 않은 부분, 예를 들어 그의 기억에서 사라졌을 병실 안 주변의 풍경을 상상 가운데 재현했습니다. 이 그림은 당시 미술 평론가들로부터 많은 조롱을 받았습니다. 그림에 덕지덕지 물감 덩어리가 묻어 있고 따뜻하게 엄마의 손을 붙잡고 있는 소녀의 손은 생선찜 같았다는 것입니다. 뭉크는 죽음과 질병으로 산산조각난 그의 삶을 거친 재료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는 인상파 화가 답게 내면의 슬픔을 우리가 알아보기 쉽게 감각적으로 표현했습니다.

그가 청년기의 방황과 감정을 집약해서 30살에 그린 또 하나의 그림이 바로 ‘절규’입니다. 이 그림은 종이 위에 물감으로 그린 것입니다. 거기에 색채감을 높이기 위해 중세에 사용되던 달걀 물감을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파스텔로 형태를 마무리했습니다. 태양이 지고 있었는데 갑자기 하늘이 핏빛으로 붉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시 위로 구름이 피처럼 피어 사람들은 앞으로 걸어갔고 그 만이 공포에 떨며 서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레곤과 캘리포니아를 강타한 산불의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여기 사선으로 길게 뻗어 있는 철제 난간을 보면 불안정한 구도이고 그림을 마무리하기 위해 사용한 파스텔 톤이 섬뜩한 섬광으로 빛나고 있습니다. 저녁 노을은 아름다워야 하지만 절규의 하늘은 공포의 핏빛으로 물들어가는 모습입니다. 그림의 주인공이 귀를 감싸고 고성을 지르는 모습은 잉카 제국의 죽은 미이라의 전형적인 포즈였다고 합니다. 그는 이 그림에서 임박한 것 같은 그 자신의 죽음의 공포를 묘사한 것입니다. 실제로 그는 움직이는 종합병원 같은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결핵, 조울증, 알코올 중독, 류마티즘 관절염, 신경쇠약 등. 게다가 에곤 실레와 클림트를 덥쳤던 스페인 독감에까지 걸렸습니다.

그런데 뭉크는 몇 살까지 살았을까요? 그는 평균 나이 40~50 밖에 되지 않던 시절에 82세까지 장수했습니다. 그는 스페인 독감을 이겨낸 것입니다. 질병과 광기와 죽음 속에서 그는 끝내 불멸의 예술가로 살아남았습니다. 그는 결코 죽음에 굴하지 않겠다는 불굴의 의지를 소망의 붓으로 표현해 냈습니다. 그것이 80대까지 창작혼을 불태운 뭉크의 삶의 동력일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불확실한 시기에 다른 모든 것보다 훨씬 더 밝게 빛나는 빛을 찾아야합니다. 바울은,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믿음에서 오는 모든 기쁨과 평화를 여러분에게 충만하게 주셔서,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여러분에게 차고 넘치기를 바란다”고 썼습니다.

단편소설 작가 데이먼 러니언은, 닥 브라켓이라는 한 남자에 대한 감동적인 이야기를 썼습니다. 닥 브라켓은 가난하고 궁핍 한 사람들을 위해 항상 사무실 문을 열고 있는 사랑받는 노인 의사였습니다. 그는 아무리 추운 밤에도 움직일 수 없는 응급 환자가 생기면 20 마일을 마다 않고 즉시 달려가는 의사였습니다.

닥 브라켓은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결혼하기로 되어 있던 날 그는 시골에서 앓아 누운 멕시코 아이를 치료하기 위해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했고 화가 난 그의 신부는 결혼식을 취소했습니다.

40 년 동안 그 도시의 절름발이, 시각장애인, 청각 장애인들이 동네의 초라한 건물 2층에 자리 잡은 닥 브라켓의 초라한 진료실을 드나들었습니다. 닥 브라켓이 70세가 되었을 때 그가 앓아 누웠고 곧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람들은 그 동네에서 가장 큰 장례식을 준비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묘비에 어떤 문장을 쓸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가 브라켓 박사의 묘비에 쓸 적절한 비문을 찾아냈습니다. 닥 브라켓이 수년 전에 구해준 멕시코 아이의 부모는 그에게 묘비가 없는 것을 알고 그의 진료실 계단 아래의 간판을 꺼내 묘비 대신 그의 무덤 위에 세웠습니다. 그제서야 그는 잘 어울리는 비문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비문은 이것입니다. “DR. 브라켓, 진료실은 2층에 있음.”

우리 안에는 내 자신의 구원에 도움이 되거나 하나님께 도움이 될 만한 어떤 소망도 없습니다. 따라서 참된 변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의 노력이 아니라 오직 성령께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로마서 8:14은,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로마서 8:15-16은, “성령이 모든 거절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오히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라는 확신을 준다”고 말합니다. 로마서 8:26-27은, “성령이 우리에게 기도 가운데 하나님께 나아갈 확신을 준다”고 말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소망의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결코 우리를 잊지 않고 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계속되는 어둠 속에서도 소망을 가지고 영원한 승리의 빛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백동인목사ㅣ갈보리장로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