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지배하는 기독교적 가치에 따르면, 내가 미국까지 와서 이렇게 사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톤 때문입니다. 바톤은 바로 우리 아이들의 손에 안전하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보다 더 큰 교훈은 없다고 가르칩니다. MSG역 히브리서 11 장 6 절은 “신앙을 떠나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놀라운 진술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모든 것이 다음의 질문 보따리에 싸여 있습니다. “그분을 믿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떻게 그분을 믿을 수 있는가?” “그분을 믿을 때 무엇이 일어나는가?”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세 가지 방법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1. 믿음은 올바른 삶을 살게 합니다.

새번역 히브리서 11 장 1 절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바탕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 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바탕”으로 번역된 영어 단어 “Substance”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Sub” (아래)와 “sta” (서다)를 합친 단어입니다. 즉, sub + stance = “아래에 서있는” 이란 뜻이 됩니다. “아래에 서 있는 것”, 다른 말로 “사물의 바탕”이란 의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바탕입니다. NLT역은 이렇게 번역합니다. “신앙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바라는 것이 일어날 것이라고 보장하는 확신이다.” (히브리서 11:1)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입니다. 크리스천으로서 우리는, 천국의 존재를 믿으려고 천국을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이미 천국에 들어갈 것을 압니다.

그래서 NKJ역 번역은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법적) 증거” 라고 말합니다. 또한 NIV역은 “신앙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확신하는 것이다” 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즉, 믿음은, 우리가 볼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법적인 증거이자 절대적인 보증입니다.

신앙은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바라보게 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사람은 모두 믿음으로 삽니다. 불신자들도 매일 먹는 수도 물이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매일 마십니다. 불가지론자도 자신이 모든 차량의 브레이크가 작동할 것이라고 믿고 그것으로 시내 한 가운데를 질주합니다. 무신론자도 의사가 자신의 암을 제거할 수 있다고 믿고 그의 메스에 자신의 몸을 맡깁니다.

그러나 물이 좋다고 믿을 수는 있지만 납이나 수은에 중독될 수 있습니다. 브레이크가 작동한다고 믿을 수 있지만 때로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의사의 집도를 신뢰할 수 있지만 그가 실수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평범한 믿음과 성경의 신앙 사이의 차이입니다.

여러분이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 여러분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실패가 없으신 하나님, 변치 않으신 하나님,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 그리고 항상 올바르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진정한 믿음은 여러분이 바라는 것을 확신하도록 합니다. 여러분이 이 신앙의 정의에 동의할 때 여러분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2. 믿음은 긍정적으로 살게 합니다.

NLT역 히브리서 11 장 3 절은,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 곧 보이는 것은 나타나 있는 것에서 생기지 않았음을 깨닫습니다” 라고 증언합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부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주의 기원은 간단한 한 문장으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했다.”

창세기 1 장을 보면, “하나님이 말씀했다”라는 말이 8 차례 등장한 것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말씀할 때마다 무엇인가가 창조되었습니다. NLT역 시편 33 편 6 절은, “주님이 단지 말씀하시자 하늘이 창조되었다. 그가 말씀을 내뱉자 모든 별들이 태어났다”고 말합니다.

만물의 어머니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 세계 (자연, 역사)에는 아버지 하나님으로 충만한 것을 믿음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믿음으로만 창조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3 절은,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 곧 보이는 것은 나타나 있는 것에서 생기지 않았음을 깨닫습니다” 라고 증언합니다. (히브리서 11:3)

이로써 참된 신앙은,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무로 유를 창조할 수 없음을 압니다.

3. 믿음은 다음 세대를 승리로 이끕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히브리 11:6, NIV)

우리가 하는 일을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에 상관없이,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목적을 상실한 것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있다면, 우리가 때로 누구를 불쾌하게 만들고 있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우리가 하나님을 불만스럽게 대한다면, 우리가 누구를 기쁘게 하느냐는 결코 중요하지 않습니다.

신앙은 건강한 마음의 표징입니다. 빛에 반응할 때 우리의 눈이 정상적이고, 소리에 반응할 때 우리의 청력이 정상적인 것처럼, 하나님께 믿음으로 반응할 때 우리의 삶의 방향이 올바른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볼 수 없을 때에도 그가 우리를 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를 들을 수 없을 때에도 그분은 우리의 외침을 듣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6에서, 주님은 그를 찾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보상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신앙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 이제 정리할 수 있으십니까? 이것은 아주 간단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알 수 없으므로,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도무지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모른 채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믿음을 통해서 그를 기쁘시게 하고, 오직 믿음을 통해서 응답 (보상)을 받습니다.

고대 고린도에서는 이스트미아 제전이라고 불리는 경기가 매 2년마다 열렸습니다. 고린도전서 9:25에 바울이 예로 든 운동경기가 바로 이 경기일 정도로 이스트미아 경기는 고대 그리스 사람들의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 경주의 하이라이트는 릴레이 경주였습니다. 경쟁자들은 출발선에 나란히 섰습니다. 먼 거리에는 다른 사람들이 이어 달리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또한 더 멀리서 또 다른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출발 신호가 울리면 남자들이 각각 성화를 들고 달려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주자가 터치 라인에서 그의 파트너를 만나면 그는 들고 달린 빛을 건네야 했습니다. 남자들은 결승선에 도달하기까지 계속해서 빛을 전해야 했습니다. 그들의 경기에서 두 가지가 아주 중요했습니다. 그들은 성화를 반드시 받아야 했고, 그것을 꺼트려서는 안되었습니다.

그것이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빛을 다음 세대에 전하기 위해서 교회로 부름 받았습니다. 여러분과 나의 릴레이 경기를 통해서 이 빛은 다음 세대로 전달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그 성화는 결코 꺼지지 않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부르신 이유입니다.

백동인 목사 ㅣ갈보리장로교회 담임 (503)856-4233

교회 주소: 8060 SW Brentwood St, Portland, OR 97225 / 주일예배: 12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