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 불안, 스트레스 및 걱정은 인류 역사상 단 한번도 인류의 곁을 떠난 적이 없었습니다. 특별히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알베르 카뮈는 20 세기를 “공포의 세기” 라고 불렀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의 걱정과 불안은 전방위적으로 점차 확산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사람들은 질병과 죽음의 재앙에 맞서 당당히 싸우기 보다 마약을 마시고, 진정제를 복용하고, 다량의 수면제를 습관적으로 복용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한 가지 질문이 제기됩니다. 여러분은 지금 치료받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스트레스에 대한 해결책은 무엇입니까? 사도 베드로는 오늘 여러분에게 세 단계의 치유의 길을 제시합니다.

1. 여러분의 의지를 하나님께 복종시키십시오.

베드로 전서 5 장 5절에서 우리는 “모두가 서로서로 겸손의 옷을 입으십시오” 라는 권면을 듣습니다. 아시는 대로 종은 자신의 의지가 없습니다. 그는 단지 주인의 일을 그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종에게는 언제나 겸손의 덕목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능력의 손 아래에서 스스로 겸손 하십시오. 때가 되면, 그분께서 여러분을 높이실 것입니다.” (베드로 전서 5 장 6 절) 우리는 성공을 우리 인생의 목표로 삼아서는 안됩니다. 감당할 수 없는 질주는 위험합니다. 우리의 삶의 목표는 하나님께 충실한 것이어야 합니다. 성공은 우리 스스로 달성할 수 있는 목표가 아닙니다. 성공은 그 분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기다리면서 하나님에게서 얻는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성공은 단순히 하나님의 뜻을 찾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2. 걱정을 모두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누가복음 19장 35절을 보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향해 “사람들은 예수께로 나귀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던져 나귀 등에 얹고 예수께서 타시도록 했다.” (우리말 성경) 이곳에서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던졌다고 했습니다. KJV 역은 cast 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께서 가시는 길 위에 자기들의 겉옷까지 깔아 드렸습니다. 그들은 나귀 위에는 담요로, 길바닥 위에는 카펫으로 사용하도록 자신들의 겉옷을 던졌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부분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걱정을 덜기 위해서 우리가 집착하는 것, 추구하는 것,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는 모든 것들을 cast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걱정을 던져버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위로와 구원에 관심을 기울여야합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너희의 짐을 주님께 맡겨라. 주님이 너희를 붙들어 주실 것이니, 주님은, 의로운 사람이 망하도록, 영영 그대로 버려 두지 않으신다.” 베드로 전서 5 장 7절도 “여러분의 걱정을 모두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돌보고 계신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주님께 관심을 갖게 되는 이유는 그분이 우리를 돌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의 헬라어 원문은 현재 시제입니다. 그것은 계속적인 행동을 의미합니다. 한글 성경 가운데는 표준 새번역이 가장 원문에 가깝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돌보고 계십니다.” 베드로 전서 5 장 7절을 좀 더 풀어서 해석하면, “주님께 여러분의 걱정을 던져버리십시오. 왜냐하면 그분은 모든 순간마다 항상 여러분을 붙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입니다.

3. 더욱 하나님께 다가가십시오.

베드로 전서 5 장 8절을 보십시오.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으십시오. 여러분의 원수인 악마가, 우는 사자 같이, 삼킬 자를 찾아 두루 다닙니다.” 여러분이 이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면 결코 이 곤경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인생의 구덩이에서 여러분 스스로 위로 올라올 수 없습니다. 악마(마귀/사탄)는 여러분의 과거, 여러분의 강점과 약점 모두를 알고 있어서 우는 사자 같이, 여러분을 삼킬 순간을 찾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악마를 패퇴시킬 수 있는 방법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베드로 전서 5 장 8절을 보십시오. 우선, 그는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으십시오” 라고 말합니다. 그는 “우리의 적” 입니다. 그는 계시록의 책에서 “우리 형제들을 고소하던 이”로 불립니다. (계시록 12:10) 사탄은 원래 그리스 단어에서 비롯된 것으로 “중상 모략”을 의미합니다. 그는 항상 우리의 구원의 확신을 혼란에 빠트리려 합니다. 우리가 오래 전에 자백하고 용서받은 지난 죄들을 들추어 우리의 구원의 기쁨을 빼앗으려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을 공격한 악마의 존재에 관해서 영적으로 진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베드로 전서 5 장 8절의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으십시오”에서 “깨어 있다”는 말은 “경계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다른 말로, 우리는 하루 24 시간 영적 레이다를 작동시켜야 합니다. 사탄은 포효하려는 사자처럼 여러분 주변으로 어슬렁거리기 때문에 절대로 경계를 늦춰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에 대해서 궁금증을 갖습니다. 왜 하필 사탄의 존재를 사자에 비유했을까요?

우선, 사자는 강렬합니다. 여러분은 사자의 힘은 사람보다 14 배에서 21 배 강한 것을 알고 계셨습니까? 여기 사탄은 “으르렁거리는 사자” 라고 묘사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사자의 포효가 거의 5 마일 정도의 거리에서도 들릴 수 있음을 알고 계셨습니까? 그 포효 소리는 1 ~ 3 kHz 사이의 주파수를 발산합니다. 아무리 풍부한 저음을 낼 수 있는 훌륭한 베이스 성악가라도 사자만큼의 저음을 발성하면 곧 그의 후두는 재기불능이 되고 말 것입니다. 사자의 포효는 너무나 우렁차고 또한 너무 낮아서 사자가 여러분 옆에 서서 포효한다면, 여러분은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말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은 사탄의 최적의 활동 시간은 어둠이 깔린 후인 것을 알고 계셨습니까? 그래서 그는 “어둠의 왕자” 라고 불립니다. 사람들은 오전 3시를 “영혼의 자정”이라고 부릅니다. 병원에 입원한 대부분의 중환자들이 대개 그 시간대에 사망합니다. 사탄은 바로 인간의 최고의 고통의 시간, 최고의 슬픔을 시간을 무대로 활동합니다. 동물학자들에 따르면, 실제로 사자는 새벽 3 시부터 6 시까지 가장 자주 울부짖습니다. “악마가 삼킬 자를 찾아 두루 다닌다”는 표현에서 “삼키다” (devour) 라는 동사는 먹이를 죽이는 동물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사자는 한 번에 자기 체중의 30 %를 먹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150 파운드 무게의 남성이 약 200 개의 빅맥을 먹어 치우는 것과 비슷할 것입니다. 사탄은 여러분이 영적인 경비를 게을리하는 순간, 여러분이 알아차리기도 전에 여러분을 송두리째 삼키고 입맛을 다질 수 있습니다. 동물의 왕 사자가 기습공격 전략 대신에 굳이 공개적으로 포효하는 이유는 상대방에게 두려움을 주려는 것입니다. 사자가 포효하면 그 상대는 순식간에 마비상태에 빠져 오도가도 못하고 쉽게 사자 밥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사탄이 가장 즐겨 사용하는 전술은 포효를 통한 두려움의 전술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여러분이 사탄의 공격에 패배를 당하지 않을 것을 보장합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복종하고, 악마를 물리치십시오. 그러면 악마는 달아날 것입니다.” (야고보 4장 7절) 그럼 구체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해야 악마를 물리칠 수 있습니까? 베드로 사도는 믿음에 굳게 서서, 악마를 대적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악마를 격퇴할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여러분이 붙들고 그 대로 실행하는 한 여러분은 더 이상 두려움, 불안, 스트레스, 걱정을 두려워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백동인 목사 ㅣ갈보리장로교회 담임 (503)856-4233

교회 주소: 8060 SW Brentwood St, Portland, OR 97225 / 주일예배: 12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