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를 묘사하는 “그리스도인” 혹은 “크리스천”이라는 용어는 오늘날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을 설명하는데 가장 많이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무엇인가?” 그 대답은 다음 조건에 따라 크게 달라질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기독교”국가에서 태어났거나 “기독교” 가정 출신인 것을 의미합니다. 또 다른 어떤 사람들에게는 기독교나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와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있을 때 “그리스도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그리스도인을 묘사하는 “믿는 자”라는 용어가 성경에서 80 번 사용될 동안, “성도”라는 단어는 60 번, “제자”라는 단어는 30 번, 그리고 “기독교”라는 단어가 3 번 사용된 것으로 조사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이름들은 그리스도인이 스스로 고안해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불신자들이 지어준 이름입니다.

1. 크리스천은 거듭난 사람을 의미합니다.

믿는 사람들이 처음으로 기독교인이라고 불린 곳은 안디옥이라는 도시였습니다. 안디옥은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300 마일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곳으로 로마 제국 전체에서 세 번째로 중요한 도시였습니다. 그곳은 후에 바울의 선교 본부가 되었습니다.

성서시대에 안디옥이 주목을 끌게 된 곳은 그곳이 당시 종교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로마 황제는 제국의 도처에 신전을 세워 이교도를 숭배하도록 장려했지만 그 가운데 가장 위대한 신은 로마 황제라고 선언했습니다. 안디옥은 특별히 황제 숭배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런 이교도들이 힘을 발휘하는 곳에서 그들과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았던 소수의 사람들을 그곳 사람들은 크리스천이라고 불렀습니다. 크리스천이라는 단어는 문자적으로 “작은 그리스도”를 의미했습니다.

그렇다면 질적으로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크리스천이 될 수 있습니까? 예를 들어 누군가 한국에서 태어나면 한국인이 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남으로 인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첫 번 출생으로 한국인, 혹은 미국인이 되었지만, 크리스천이 되기 위해서 두 번째 출생을 경험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유대인 관원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즉, 모든 사람은 거듭남으로써 만이 크리스천이 될 수 있습니다. (요3:3) 여기서 “거듭났다”는 것은 “구원을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이 용어에 대해 여전히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놀랍게 느껴집니다.

다음 구절들을 경청해 보십시오. “주님께서 구원받는 사람들을 매일 교회에 더하여 주셨다.” (KJV역 행2:47) 빌립보의 간수가 사도 바울에게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겠습니까?” 하고 말했습니다. (행16:30)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롬10:13)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를 원하신다.” (딤전2:4)

2. 크리스천은 공개적으로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사람입니다.

어느 날 바울은 아그립바 왕 앞에 서있었습니다. 그의 정식 이름은 헤롯 아그립바 2세로서 헤롯 대왕의 손자였습니다. 헤롯 대왕은 예수님이 태어나자 마자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서 베들레헴에 있는 모든 어린 아기들을 다 죽이라고 명령을 내린 바로 그 사람입니다.

어느 날 이 아그립바 왕은 유대 지역의 새 로마 총독으로 부임한 베스도를 방문했습니다. 마침 그곳에 반역과 성전 모독 혐의로 유대인들이 고소한 바울이 그곳 감옥에 수감되어 있었습니다. 그곳 사정에 어두운 신임 총독 베스도는 마침 인사차 자신을 방문한 아그립바에게 바울의 심문을 맡겼습니다. 아그립바 왕은 바울을 만나 “증언할 말이 있으면 해보라”고 그의 반론을 허락하였습니다. (행26:28)

그 자리에서 바울은 상처투성이의 몸으로 열정적으로 증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열렬한 추종자인 것을 드러냈습니다. 즉 그는 자신이 크리스천인 것을 증언한 것입니다. 크리스천은 매일 말로나 성품으로나 그 밖의 어떤 형태로든, 그가 그리스도의 추종자인 것을 드러내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때 아그립바 왕은 바울에게서 과거에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바울의 증언을 청취한 아그립바 왕은 바울에게 “그대가 짧은 말로 나를 설복해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고 하는가!” 하고 말하였습니다. (행26:28) 이제 아그립바 왕이 이 말을 진심으로 하는 것인지, 아니면 비꼬는 투로 내뱉은 말인지를 놓고 논쟁할 수 있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그것은 바울이 그리스도에 대한 엄청난 믿음을 가지고 대담한 방법으로 자신의 의지를 표현했다는 것입니다. 즉 참된 기독교인이 일어선 것입니다.

3. 크리스천은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는 사람입니다.

이제 우리가 진실한 크리스천이라면 스스로 문제를 찾아 갈 필요가 없습니다. 문제가 우리를 찾아올 것입니다. 그것은 저와 여러분이 크리스천, 즉 작은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모욕을 당하면, 복이 있습니다.” (벧전4:14) 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고난을 겪는 것인가?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너희는 세상에 속하지 않고,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가려 뽑았으므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한다.” (요15:19) 우리가 그리스도를 선택함으로 세상에서 고난을 받을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작은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주 예수님을 부인했을 때, 성경은 그가 나가서 몹시 울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비참한 자리로 전락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사도행전 5 장에서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에게서 매를 맞고 풀려난 후의 모습을 성경은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예수의 이름 때문에 모욕을 당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 것을 기뻐하면서, 의회에서 물러 나왔다.” (행5:41)

누군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그 분의 죽음의 자격을 부여했고, 그 분의 죽음은 그분의 삶의 자격을 우리에게 부여한 것이다.” 이제 우리는 크리스천의 삶을 하나의 단순한 문장으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삶을 가져가시고 대신 그분의 삶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분이 내 안에서 그분의 삶을 사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백동인 목사ㅣ갈보리장로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