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장로교회 목사 피터 히트의 유명한 저서인 “지금 영원: 계시의 예수를 만나다!”에 허리케인에서 살아남은 매리라는 어린 소녀에 대한 멋진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1991 년 10 월, 뉴 잉글랜드의 기상 전선이 동부 해안으로 올라오며 허리케인과 결합되어 그 지역에 무시무시한 ‘퍼펙트 스톰’을 형성했습니다. 그때 존이라는 아버지와 매리라는 여섯 살 된 딸을 태우고 가던 작은 배 ‘안드레아 게일호’가 이 폭풍에 휩싸였습니다.

​불행히도 존은 이 배를 타고 해안에서 출항할 때 일기 예보를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항구에서 6 마일을 벗어났을 때 시시각각 변하는 바람의 풍속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곧 배가 전복되었고 그들은 물 속에서 살기위해 허우적거렸습니다. 구명 조끼는 바다 속으로 휩쓸려 들어가는 배에 묶여 있었습니다. 존은 어린 딸을 안고 해안까지 6 마일을 도저히 혼자 수영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메리, 배영 자세를 취할 수 있지?” 매리는 집의 작은 수영장에서 배영 자세로 떠 다니는 연습하곤 했습니다. “매리, 내가 먼저 해변으로 가서 널 구하러 올 테니 그때까지 배영으로 헤엄치고 있을 수 있지?”

​3 시간 후에 해안 경비대는 존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시간 반 뒤 어둠으로 뒤덮인 20 ~ 30 피트의 파고 가운데 그들은 스포트라이트를 비쳐 배영 자세로 떠있는 어린 소녀를 발견했습니다. 매리는 거의 5 시간 동안 배영 자세로 물 위에 떠있었습니다.

​경비대원이 나중에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메리, 어떻게 그런 자세를 취할 수 있었지?” 매리는, “아빠가, 내가 배영 자세를 취하고 있으면 곧 구하러 오겠다고 했어요. 우리 아빠는 항상 약속을 지키거든요!” 이것은 정말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어린 매리는 주위의 파도에 아랑곳하지 않고 아버지를 계속 신뢰하며 높은 파도에 자신의 자세를 유지했습니다.

어린 매리는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서 본 것과 동일한 아버지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데살로니가는 그리스에서 가장 큰 지역인 마케도니아의 수도이자 그리스 제2의 도시입니다. 바울 시대에도 이 도시는 탁월하게 번영하는 도시였습니다. 당시 데살로니가에는 두 개의 회당과 많은 로마 사원들이 있었습니다. 그곳은 우상 숭배가 강했습니다. 따라서 교회를 세우는 것이 쉬운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는 바울의 사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열심히 사역했고 그곳에 기독교 공동체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데살로니가에는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는데, 이는 바울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가 되었지만 로마 당국에 문제를 일으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유대인들의 고발로 로마 당국과 문제를 겪었습니다.

​유대 사람들은 바울을 시기하여, 거리의 불량배들을 끌어 모아 바울 일행을 끌어와 군중 앞에 세우려고 찾았습니다. 그러나 찾지 못하고, 야손과 신도 몇 사람을 시청 관원들에게 끌고 가서,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행17:6)

​유대인들이 이렇게 흥분한 이유는 바울과 실라가 로마 황제의 명을 거역하여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고 설교했다는 것입니다. (행17:7) 로마 황제 외에 다른 왕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로마법에 따르면 반란에 속한 중대한 법률 위반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의 성공담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곳의 개종자들이 매우 신실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크리스천들을 높이 평가하는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편지를 시작합니다. “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살전1:2)

​그는 계속해서 그들의 믿음의 행위와, 사랑의 수고와, 그리스도께 둔 소망의 인내를 언제나 기억하고 있다고 썼습니다.

​그것은 바울이 보낸 모든 서신 가운데 가장 높은 칭찬 중의 하나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모두가 열망하는 것입니다. 이 세가지의 교회의 캐릭터로 인해서 데살로니가 교회는 다른 사람들에게 큰 모범이 되었습니다.

​1. 먼저, 그들의 “믿음의 행위”에 관해 살펴보겠습니다.

​작은 매리는 아빠가 그녀를 구하기 위해 돌아올 것을 확신했기 때문에 높은 파고에도 계속 떠있을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한시도 잊지 않고 계시다는 믿음이 강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모든 상황에서 필수적입니다. 우리 모두는 예기치 않게 삶의 폭풍에 직면하게 됩니다.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 시리즈 가운데 한 에피소드에서 제임스 C. 브라운 박사는 개인적 ‘퍼펙트 스톰’에 직면한 또 다른 메리라는 어린 소녀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5살 난 메리는 뇌졸중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MRI(자기공명영상)를 찍기 위해 병원을 찾았을 때 그녀 신체의 왼쪽 절반은 이미 마비된 상태였습니다. 이전에도 그녀는 뇌종양으로 입원했습니다. 그런 다음 그녀는 아버지, 어머니, 집을 차례로 잃었습니다.

​의료 직원들은 모두 매리가 MRI 테스트에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해했습니다. 그녀는 아무런 반응없이 MRI 기기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테스트를 시작했습니다. 각 이미징 시퀀스 결과를 얻기 위해 매리가 약 5 분 동안 완벽하게 가만히 누워있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지만, 특히 5 세 어린이에게는 더더욱 어렵습니다.

​브라운 박사는 첫 번째 시퀀스에서 매리가 약 2 분 동안 입술을 움직이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수화기를 통해 그녀의 나지막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의료진은 테스트를 즉시 멈추고 그녀에게 아무 말도 해서는 안된다고 주의를 주었습니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약속했습니다.

​의료지는 기기 상태를 재설정하고 다시 테스트를 시작했습니다. 다시 한번 그녀의 얼굴에 작은 경련이 일었고 이어 그녀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습니다. 그녀가 말을 하는 지는 분명하지 않았습니다. 직원들은 참을성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매리의 응급 MRI를 수행하기 위해 바쁜 일정을 보류한 상태였습니다. 의료진은 기기로 다가가 매리를 기기 밖으로 불러냈습니다.

​그녀는 잔잔한 미소로 그들을 바라보았고 조금도 짜증을 부리지 않았습니다. 그들 중 한 사람이 매리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매리, 말을 하면 사진이 흐릿하게 나오게 돼!” 그러자 매리가 이렇게 반응했습니다. “나는 말을 하지 않았어요! 제가 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잖아요. 나는 단지 노래를 불렀어요!”

​브라운 박사와 의료진은 무안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들 중 한 사람이 물었습니다. “무슨 노래를 불렀는데?” 매리가 부드럽게 대답했습니다. “’예수 사랑하심’을 노래했어요!” “난 행복할 때 항상 이 찬송을 불러요!”

​고통을 주는 기기 안에서 5살 어린 소녀가 의료진을 이끌고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이 두 작은 매리의 믿음이 있다면 우리 삶이 어떻게 변화할지 상상이 되고도 남으실 것입니다. 그 같은 믿음이 어떤 위기에서도 우리를 지켜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이같은 믿음의 행위에 대해 칭찬했습니다.

​2. 바울은 또한 그들의 “사랑의 수고”에 대해 칭찬했습니다.

​우리 문화에서 사랑이라는 단어는 거의 무의미 할 정도로 타락했습니다. 우리는 스마트폰, 게임, 자동차, 고화질 TV, 주택을 좋아합니다. 우리가 이 무생물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들은 우리의 삶을 기꺼이 내어 놓을 만큼 소중한 것입니까?

​우리 문화에서 사랑, 특히 낭만적인 사랑은 전개가 빠르고 쉬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 같은 드라마에서 많은 시청자들이 채널을 돌리고 말 것입니다. 우리의 눈은 브라운관에서 사랑을 만나 그것이 영원할 것처럼 감동하고 눈물을 흘립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진정한 사랑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헌신이 따라주어야 합니다.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아내가 사망하자 그의 여동생 마자가 오빠를 돕기 위해 이사했습니다. 그녀는 14 년 동안 오빠를 돌보며 그녀의 귀중한 연구를 계속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녀가 뇌졸중으로 혼수 상태에 빠졌습니다.

​그때부터 아인슈타인은 매일 오후 2 시간 동안 그녀에게 플라톤의 저서를 큰 소리로 읽어주었습니다. 늙고 병든 물리학자에게 그것은 대단한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녀가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인슈타인은 계속해서 매일 책을 읽어주었습니다. 가끔 그녀가 어떤 몸짓으로 반응을 보일 때 그는 자신의 사랑의 수고가 정말 가치 있는 일이라고 확신하곤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바울에게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의 사랑의 수고는 그 어떤 것과 비교될 수 없으리 만치 값진 것이었습니다.

​3. 마지막으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의 “소망의 인내”에 대해 칭찬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지속적인 영적 파워를 가졌습니다. 그것은 모든 사역에서 가장 중요한 사항입니다. “포기하지 마세요. 계속 일하고, 사랑하고, 계속 믿으십시오.”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성취될 수 있는 소망이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1998 년에 전 세계 수백만 명의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킨 작은 영화가 있었습니다. 제목은 “인생은 아름다워”입니다.

​젊은 유대계 이탈리아인인 귀도의 네 살 반 된 아들 조슈아는 나치 강제 수용소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습니다. 귀도와 조슈아는 조슈아의 생일에 유대인 수용소로 끌려왔습니다. 귀도는 수용소의 공포의 환경에서 아들을 지키기 위해 눈 앞의 모든 것이 게임이며 그 어떤 것도 심각하게 받아들여서는 안된다고 확신을 시킵니다.

​귀도는 조슈아에게 수용소를 운영하는 제복 입은 군인들이 나쁜 사람들이 아니라고 확신시켜 줍니다. 그것은 단순히 게임이 진행되는 방식이란 것입니다. 그는 조슈아가 배고프다고 불평하면 점수를 잃는다 고 말합니다. 그는 수용소 경비원들을 피해 조용히 숨어있는 소년들이 높은 점수를 받는다고 말합니다. 그는 게임의 모든 규칙을 지키면 실제 탱크를 이길 수 있다고 확신을 시켜줍니다. 그래서 주변에는 죽음과 절망 만이 존재하지만 귀도의 아들 조슈아는 삶의 아름다움만을 바라봅니다.

​귀도의 계획은 단순히 절망으로부터 눈을 감기 위한 행동이었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귀도는 연합군이 너무 늦지 않게 수용소를 함락해서 그들을 구출해 주기를 소망합니다. 그는 아들에게 어떻게 든 소망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것이야 말로 그가 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값진 선택이었습니다.

​결국 연합군은 소년을 구출합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들은 귀도를 구해내지 못했습니다. 귀도는 나치 경비원에게 붙잡혀 총살당하기 전에 두 사람이 함께 나치 경비원처럼 진영을 행진하는 것처럼 해서 아들을 웃게 만듭니다. 조슈아는 살아남았고 미군 탱크가 수용소 내로 진입했을 때 자신이 게임에서 이겼다고 확신했고 그의 어머니와 재회합니다. 조슈아는 귀도가 가르쳐 준 소망의 힘으로 구원받았습니다.

​이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라는 바울의 말을 생각해보십시오. 초대 교회는 박해의 물결을 겪었습니다. 우리는 그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감옥에 갇히고, 사자에게 던져지고, 황제의 정원에서 화형에 처해졌습니다. 그들은 홀로 코스트를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견뎌냈습니다. 왜요? 그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들과 함께 계시고 결코 그들을 버리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그들을 이길 수 없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2000 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바울과 마찬가지로 그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들은 우리를 위해 믿음을 보존했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에 대해 감사했습니다. 바울에 데살로니가 교회에서 본 “믿음, 소망 그리고 사랑의 공식”은 우리의 삶이 어떤 퍼펙트 스톰을 겪을지라도 우리가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가장 좋은 공식입니다.

백동인목사ㅣ 갈보리장로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