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의 이야기는 구약에서 가장 유쾌한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그는 히브리인 포로로 바빌론에 정착한 청년입니다. 그는 꿈을 해석하는 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세상을 이끌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다니엘서 6장을 살펴보면 다니엘은 이미 세상의 지배자 다리우스 왕의 오른팔이 되어있었습니다. 노예 출신으로 높은 자리에 오른 그를, 많은 권력자들이 질투했습니다. 왕이 그를 나라의 통치자로 임명하고자 하였을 때 다른 정승들과 지방장관들이, 그의 실수나 잘못을 찾아내려 한 것은 권력세계에서 지금도 흔히 볼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다니엘은 결국 음모에 휩쓸려 사자 굴에 던져지는 형을 선고받습니다. 왕은 다니엘에 대한 기소 소식을 듣고 몹시 괴로워하고, 그를 구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 하였으나 법 앞에서 할 수 없이 형 집행 명령을 내리니, 그들이 다니엘을 끌고가서 사자 굴에 던져 넣었습니다.

이교도인 다리우스 왕은 그 날 밤을 뜬 눈으로 지새우며,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즐거운 일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하며 밤새 괴로워하였습니다. 이튿날 동이 트기 무섭게 그는 사자 굴로 달려가 슬픈 목소리로 다니엘에게 “살아 계신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네가 늘 섬기는 너의 하나님이 너를 사자들로부터 구해 주셨느냐?”고 힘없이 말을 건넸습니다. 그랬더니 뜻밖에서 다니엘이 살아남은 채로 왕에게 왕의 만수무강을 비는 인사를 드립니다. 너무나 놀란 왕이 사자 굴을 들여다보니 다니엘이 사자들을 새끼 고양이처럼 데리고 놀고 있었습니다.

때때로 저는 노아와 그의 가족을 대홍수에서 구원하시고, 다니엘을 사자 굴에서 끌어 올리신 하나님이 도대체 어떤 계획을 추진하고 계셨는지 늘 궁금했습니다. 아울러 그 하나님을 오늘의 환경 가운데 만날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KFC 레스토랑 체인의 설립자인 샌더스 대령의 인상을 참 좋아합니다. 보험 판매원, 주유소 운영자 등 수많은 일자리를 전전하며 가난과 파산을 반복하던 그는 1952 년 유타 주에서 첫 번째 KFC 프랜차이즈를 열고 성공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 때 그는 이미 너무 늙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름과 깊게 주름살이 패인 그의 이미지는 여전히, 성장하는 회사의 현재적 상징입니다. 그러나 저는 최근에 KFC 마케팅 담당자들이 샌더스 대령의 이미지를 매년 계속 수정하고 있음을 알아차렸습니다. 그의 넥타이는 점차 새 패션을 따르고 있고 그의 주름은 깊게 파인 것이 사라지고 그의 주름 수도 줄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찾는 대신 하나님을 우리 자신의 형상으로 알맞게 수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의 크리스천 세계에서 날마다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래서인지 하나님의 형상의 모습에서 사람의 냄새가 물씬 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정치로 축소시켰습니다.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성탄절 우편배달부의 이미지로 바꾸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 자신의 인생의 경영자들입니다. 우리는 교육을 받고, 가정을 일구며, 직장에서 자신의 자아를 실현합니다. 우리는 목회자, 변호사, 의사, 교사 및 명망 있는 CEO가 되려고 노력합니다. 우리는 보험과 은행 저축으로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비하려 합니다. 우리는 각자의 울타리를 안전하게 지키려고 주야로 눈에 불을 켭니다. 우리는 분명히 자신의 삶에 대한 결정권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 어느덧 자신의 삶을 지켜내지 못하고 이미 허약해진 자신을 아무 방어할 힘 없이 포기한 채 물끄러미 어느덧 빈 손, 빈 배, 빈 그물의 빈털터리 자신을 바라보기만 하는 수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은혜로 구원 받아야합니다. 은혜는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끊임없는 사랑입니다. 은혜는 지워지지 않는 얼룩을 지우는 힘입니다. 그렇다고 은혜가 마술은 아닙니다. 은혜는 우리를 어떤 환상의 땅이나 디즈니 세계로 이끌지 않습니다. 은혜는 모든 암을 치료하지 않으며, 모든 아이들을 연예 스타로 키우거나, 행복과 성공의 삶을 100% 보장하지 않습니다. 차라리 은혜는 우리가 약할 때 모습을 드러냅니다. 지치고 연약할 때 그 얼굴의 미소를 보입니다. 내가 진정으로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있냐고 절규할 때 적절히 나타나 탁월한 대답으로 내 삶을 진정시킵니다. 내가 피곤에 절어 있을 그때 하나님은 강한 자로 내게 오셔서 내 삶을 구원하십니다.

다니엘의 마지막 다섯 장에는 꿈과 비전이 가득합니다. 벨사살이 바빌론 왕이 된 첫 해에, 다니엘은 잠자리에서 꿈을 꾸면서, 머리 속으로 환상을 보고, 그 꿈을 적었습니다. 벨사살이 왕위에 오른 지 삼 년이 되는 해에도 다니엘은 또 한 번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 환상에서 세상에서 가장 자신이 강하다고 자처하는 권력자들이 등장했습니다. 당시 세상을 차례로 지배하던 메대인과 페르시아인, 바빌로니아인과 그리스인들 사이에 커다란 분쟁이 전개되는 꿈이 등장합니다.

다니엘서 10장부터는 다니엘이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 제 삼년에 티그리스 강변에서 또 한 번의 환상 가운데 말씀을 받았는데 그는 심한 고생 끝에 겨우 그 뜻을 깨달은 것 같습니다. 그 가운데 11장 30b-31절을 보시면, 다니엘은 예루살렘 성전이 모독을 겪는 끔찍한 꿈을 꿉니다.

“그(안티오쿠스 4세)는 (이집트로부터) 퇴각하는 길에 … 그의 군대가 성전의 요새 지역을 더럽힐 것이며, 날마다 드리는 제사를 없애고, 흉측한 파괴자의 우상을 그 곳에 세울 것이다.”

다니엘의 꿈에서 예루살렘 성전을 짓밟는 안티오쿠스 4세는 불법적으로 왕권을 쟁취한 자로 등장합니다. 실제로 그는 기원전 167년 예루살렘을 공격하고 성전에 들어가 제단에서 드리던 번제를 걷어치우고 대신 그리스 신 제우스를 섬기게 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도 이같이 까닭 모를 고난과 압제를 겪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의 파멸은 잔인하고 길었습니다.

그렇지만 다니엘서 12:11-12을 보십시오. “날마다 드리는 제사가 없어지고, 혐오감을 주는 흉측한 것이 세워질 때부터, 천이백구십 일이 지나갈 것이다. 천삼백삼십오 일이 지나가기까지, 기다리면서 참는 사람은 복이 있을 것이다.”

고난은 격렬했지만, 그러나 그것의 끝이 왔을 때 다니엘은 전능하신 주님께서 영원 무궁토록 통치하실 세상에서 다시 사는 부활의 환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지혜 있는 사람은 하늘의 밝은 빛처럼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길로 인도한 사람은 별처럼 영원히 빛날 것이다.” (다니엘서 12:3)

“너, 다니엘아, 너는 끝까지 신실하여라. 너는 죽겠지만, 끝 날에는 네가 일어나서, 네게 돌아올 보상을 받을 것이다.” (다니엘서 12:13)

모든 삶은 지평선 너머를 향합니다. 먼 우리 미래의 전망은 지평선 너머 먼 비전입니다. 우리의 삶의 질은 그 지평선이 죽음으로 마감하는지 아니면 새로운 삶으로 가득 차 있는지에 의존합니다. 우리는 “죽어가는 땅으로 가는 도중의 살아있는 땅”에 거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땅으로 가는 도중의 죽어가는 땅”에 거하고 있습니다.

백동인 목사 ㅣ갈보리장로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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