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호랑이라면 죽어서 가죽이라도 남길 수 있지만, 사람은 죽고 난 후에 이름과 업적 외에는 아무것도 없으니 그 이름을 먼 훗날까지 남길 수 있도록 살아 있을떄 잘해~라는 뜻이 담긴 말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죽어서 이름만 남기는 시대는 이제 지난 것 같습니다. 호랑이보다 더 많은 것을 남길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호랑이는 늙어서 이빨과 발톱이 빠지면 죽게됩니다. 노화로 인해 생존, 사냥의 주무기인 발톱과 이빨이 없으면 결국 굶어 죽겠지요? 하지만 사람은 늙어서 일할 힘이 없어도 삽니다. 호랑이가 젊은 시절에 많이 잡은 사슴이나 너구리 등을 말려서 보관하다가 나이들어 그것을 먹으면 될일이지만 호랑이는 그런 방법을 모르지요. 사람은 그것이 가능 한데 말입니다. 웃고 넘길 이야기가 아니라 여기에서 노후설계의 본질을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람이 늙어서도 오래 살 수 있는 이유는 몇 가지 장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첫째가 재화(돈)입니다. 사람은 금융자산이라는 도구를 생각해내어 자신이 일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도 생존 할 수 있게 됩니다. 즉, 돈이라는 장치가 노후의 삶을 가능 하게 하는 것입니다. 늙은 호랑이는 젊을 때 모아둔 돈으로 젊은 호랑이가 잡아온 사슴을 살 수만 있다면 호랑이도 사람처럼 오래 살 수 있을까요? 뚱딴지 같은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이 개념이 경제학에서 말하는 세대중첩모형입니다. 이 방식은 노후설계를 개인이 부담하게 됩니다.

두번째 자식입니다. 비록 내가 가진 돈이 없어도 내 자식이 나를 부양하면 오래 살 수 있습니다. 동양은 효(孝)를 기반으로 합니다. 돈과 달리 ‘효’라는 장치는 노후설계를 가족이 부담합니다. 늙은 부모님을 자신의 몸처럼 모시는 것을 본 자식은 성장하여 자신의 부모에게 같은 행동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요즘은 예전의 효를 기대 할 수 없기에 재산을 자녀에게 미리 물려주고 ‘효도계약서’를 쓰기도 한다지요? 말세라고 한탄하시는 분도 있겟지만 기록들을 살펴보면 이미 서양에서도 부모가 토지를 주는 대신 자식이 자신에게 해주어야 할 의무사항을 구체적으로 써서 계약을 맺기도 했답니다. 문서를 찾아보면 1875년 당시 노르웨이 농부들의 절반이 은퇴계약서를 작성했다고 합니다. 계약에는 일주일에 우유나 고기를 식탁에 얼마나 올려줄지 등의 구체적인 조항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약속을 지켜야 자신의 땅을 상속자에게 준다는 계약을 맺는 것입니다. 이러한 은퇴계약서는 현대의 연금제도가 실시되면서 사라지게 됩니다.

세번째, 돈도 자녀도 없으면 노후가 어떻게 될까요? 자식을 낳지 않고 돈도 모으지 않는 성직자들의 노후는? 국가를 위해 전쟁에 나간 군인의 노후는? 이런 저런 걱정이 있다면 본업에 충실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해당조직에서 연금 형태로 생활비를 주어 노후를 돌봐주기도 합니다. 이것이 최초로 체계화된 국가가 비스마르크 시대의 독일이며 1880년대에 사회입법을 추진하여 세계 최초로 의료보험, 산재보험, 노령연금을 도입했습니다.

돈이 개인 스스로가 노후를 위해 관리하는 수단이라면, 효는 가족구성원이 노후를 책임지는 장치이고, 노령연금은 국가가 개인의 노후에 관여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시대에 따라 이들 장치의 중요성이 변해갑니다. 요즘처럼 인구구조가 달라지면 노후 장치의 양상이 달라집니다. 이들 3가지의 장치 모두 기본적으로 노인들의 수가 적어야 유지됩니다. 스스로가 노후자산을 잘 축적해서 대비해야 하며, 자녀와의 관계를 잘 유지하여 따뜻한 가정을 만들어야 합니다. 국가의 연금제도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세대통합적 사고를 가져야 합니다. 고령화라는 부담은 개인, 가족, 국가가 함께 협력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호랑이보다 더 오래 살려면 자산, 가족, 국가라는 세 장치를 고루 잘 갖추어야 하겠습니다.

서희경 재정전문

아피스파이낸셜그룹부사장

문의: 425-638-2112

이메일 : hseo@api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