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 – 우리 모두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잘 압니다. 두려움은 우리를 가장 쇠약해지도록 만드는 감정입니다. 예를 든다면, 미국인들이 가장 크게 두려워하는 세 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낯선 사람들이 모이는 파티에 가는 것입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공개적으로 사적인 질문을 받는 경우입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죽음 후라는 미지의 세상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우리는 죽음의 계곡 (인생)을 다 통과하기까지 우리가 어떤 세상을 향해 걸어갈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이제 우리가 오늘 배우려는 레슨은 이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죽음에 직면해야 하지만,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 없이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 정상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한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다윗은 두려움 없이 죽음에 대처하는 다음 세 가지 방법을 알려줍니다.

1. 죽음의 힘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비록 죽음의 그늘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내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시23:4) 다윗 시대에 이스라엘에 “죽음의 그림자의 골짜기”가 실제로 존재했습니다. 다윗은 그 계곡을 죽음과 비교했습니다. 인간은 우주에서 유일하게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아는 존재입니다. 히브리 단어 “though”는 여기서 “when”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즉, 다윗은 여기서 “내가 죽음의 그늘의 골짜기를 지날 때” 라고 이야기합니다. 다윗에게 죽음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언제인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우리가 오르고자 하는 산 정상으로 나아가는 길에 반드시 계곡이 있습니다. 우리가 최고의 정상에 오르고자 한다면 우리는 그 전에 낮은 계곡을 통과해야 합니다. 오늘날 고속도로가 어떻게 산을 가로지르는지 생각해보십시오. 모든 고속도로는 산의 정상에서 직선으로 가장 가까운 산 밑으로 내려가지 않습니다. 산의 경사가 너무 가파르기 때문에 계곡의 등고선을 따라가도록 설계되었습니다. 고속도로의 방향은 흡사 계곡의 방향과 유사합니다. 가장 좋은 길, 즉 정상으로 향하는 유일한 길은 계곡을 통과해야 합니다.

이 계곡을 통과하는 여행은 항상 일시적인 것임을 명심하십시오. 계곡은 지나는 길입니다. 그러나 막 다른 골목은 아닙니다. 계곡은 가장 낮은 곳이지만 양쪽 끝이 열려 있는 터널입니다. 입구가 있고 출구가 있습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죽음의 계곡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모든 일은 본질적으로 죽음의 그림자의 계곡을 걷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왔을 때 죽음의 그림자의 계곡에 들어섰고,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이 계곡을 빠져나옵니다.

하지만 계곡의 이름을 정확히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죽음의 계곡”이 아닙니다. “죽음의 그림자의 계곡”입니다. 그림자가 무엇입니까? 그림자는 본체가 없는 이미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우리는 죽음에 직면하지 않으며, 죽음의 그림자에만 직면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이 비록 죽음의 그늘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두려움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많은 명령을 주셨지만, 그 가운데 가장 많이 주신 명령은, “두려워하지 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이라는 헛된 이미지 앞에서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2. 하나님의 현존을 확신하십시오.

다윗은 그가 비록 죽음의 그늘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주께서 그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시23:4) 두려움이 없다고 말합니다. 양은 목자 없이 산 꼭대기에서 머물 때보다 목자와 함께 하는 그림자 계곡에서 더 잘 지낸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구약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 가운데 하나는 이사야 43:2입니다. “네가 물 가운데로 건너갈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하고, 네가 강을 건널 때에도 물이 너를 침몰시키지 못할 것이다. 네가 불 속을 걸어가도, 그을리지 않을 것이며, 불꽃이 너를 태우지 못할 것이다.”

저와 여러분은 물속에 빠져도 익사하지 않습니다. 불 속에 던져져도 화상을 입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 바깥에서 일어나는 물과 불 속에서 죽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품 안에 있는 한 아무 것도 우리를 삼킬 수 없습니다. 제가 그리스도인의 장례식에서 자주 읽는 구절은 시편 116:15입니다. “주님을 성실하게 따르는 성도의 죽음은 주님께 귀중하다.”

그리스도인의 죽음이 값진 것은 그가 값진 삶을 살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죽음이 귀한 것은 하나님께서 지켜보는 때에 죽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때에 죽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눈앞에서 죽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결코 혼자서 버려진 채로 죽지 않습니다.

3. 주님의 보호하심을 신뢰하십시오.

다윗은 자신이 그림자 계곡을 지나면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로, 목자의 막대기와 지팡이를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나를 위로하기” 때문입니다. (시23:4)

막대기는 목자가 가진 힘을 상징했습니다. 목자는 그 막대기로 길가에 버려진 쇳조각을 추려내고, 그 막대기로 곰과 뱀을 죽이며, 그 막대기로 늑대와 온갖 종류의 야생 동물을 쫓아냈습니다. 양들은 목자의 손에 들린 막대기를 보면서 목자가 그들을 보호하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목자는 그의 지팡이로 양들을 인도했습니다. 양은 때로 가파른 계곡에서 아래로 떨어져 가시 덤불에 걸리거나 바위가 많은 개울가 바닥으로 미끄러질 수 있었습니다. 목자는 그 때 그 양의 배 밑에 지팡이를 걸쳐 수렁이나 그 넝쿨에서 양을 신속히 구출할 수 있었습니다. 목자는 막대기로 양들을 안전하게 지키고 지팡이로 그들을 확실히 목적지로 인도할 수 있었습니다. 양들은 목자의 손에 들린 막대기와 지팡이를 보며 큰 위안을 받습니다. 그래서 양들은 그림자 계곡에서 목자와 함께 걷는 걸음에서 전혀 불안하거나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인생이라는 골짜기를 지나는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는 한, 인생은 생명도 죽음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한 인생은 죽음 비슷한 길을 지나는 것에 불과합니다. 주님이 저와 여러분의 목자이시고 우리가 그의 양이 분명하다면, 우리는 삶과 죽음을 불문하고 코로나19 같은 치명적인 질병 앞에서도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백동인목사 ㅣ갈보리장로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