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운트 후드(Mount Hood)는 오레곤주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포틀랜드에서 일상을 살아가며, 동쪽 하늘 너머로 하얗게 솟아 있는 그 산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아침마다 무심코 커튼을 젖히며 날씨를 확인하다가, 일출과 함께 눈 덮인 후드산이 눈에 들어올 때면 마음이 절로 밝아진다. 운전 중 도심의 도로 위에서 후드산이 보일 때면 속으로 “안녕하십니까?” 인사를 건네는 것도 습관처럼 되어버렸다.

이처럼 후드산은 내 일상 속의 풍경이지만, 주말에는 그 가까이에서 산을 마주하고 싶었다. 그래서 등산 장비를 차에 싣고 향한 곳이 바로 쿠퍼스퍼(Cooper Spur). 후드산의 북쪽에 위치한 이 트레일은 마운트 후드에서 가장 높은 고도를 오를 수 있는 코스다. 정상에 오르면 후드산의 정상을 바로 앞에서 마주할 수 있다.

후드산은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에 동서남북으로 나누어 구역별로 탐험하는 것이 좋다. 지금까지 나는 접근성과 편의성을 고려해 주로 남쪽 방향의 트레일을 자주 다녔다. 미러 호수(Mirror Lake), 팀버라인 롯지(Timberline Lodge), 트릴리움 레이크(Trillium Lake), 파라다이스 파크(Paradise Park) 같은 코스들이다. 하지만 오늘은 익숙한 길이 아닌, 새로운 시선을 찾고 싶었다. 그래서 북쪽의 쿠퍼스퍼를 선택했다.

정상으로 오르며 본 마운트 후드는 또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사시사철 눈으로 덮인 만년설의 산이라는 인상이 강했지만, 지금은 정상 부근을 제외하곤 눈이 많이 녹았다. 그래도 8~9부 능선의 깊은 계곡에는 아직도 눈이 남아 있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1910년에 일본 등산객이 이곳을 올라와 바위에 새긴 글씨들이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점이다. 115년 전, 낯선 이방인이 이 높은 곳까지 올라와 이름을 남겼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트레일이 예전부터 의미 있는 장소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쿠퍼스퍼에서 산을 바라보면, 마치 한 줄기처럼 곧게 뻗은 능선이 정상에서 아래로 이어져 내려간다. 능선 끝자락에 들어서면 푸른 숲이 나타나고, 그 너머로 언덕 같은 지형이 솟아 있다. 그 꼭대기에 홀로 우뚝 선 건물 하나가 보인다. 바로 클라우드 캡 인(Cloud Cap Inn)이다.

1889년에 지어진 이 건물은 마운트 후드 고지대에 위치한 역사적 여관으로, 1894년부터 등산객을 위한 고급 숙소로 운영되었다. 초창기에는 전화까지 설치되어 있었을 만큼 당대엔 획기적인 시설이었다. 하지만 1946년에 문을 닫은 이후, 1950년대부터는 크래그 래츠(Crag Rats) 구조대가 이곳을 관리하고 있다. 1977년에는 미국 국가 사적지로 지정되었다.

오늘 나는 쿠퍼스퍼에서 경이로운 자연의 풍경을 만끽했을 뿐만 아니라, 클라우드 캡 인이라는 유서 깊은 장소를 직접 둘러볼 수 있어 더욱 뜻깊은 하루였다. 익숙했던 후드산이 오늘만큼은 전혀 다른 얼굴로 다가왔고, 그 깊은 매력을 새삼 다시 느꼈다.

산사랑 산악회 허관택 회장

클라우드 캡 인(Cloud Cap In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