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과거 김우중 회장께서 남긴 이 말은 제게 늘 큰 울림을 줬습니다. 저는 이 유명한 어록을약간 변형해 씁니다. “세상은 넓고 갈 곳은 많다.” 오레곤의 자연을 사랑하는 제게는 아직 가보지 못한 산과 마을, 골목길과 봉우리가 무수히 남아 있습니다.
누군가 “오늘도 산에 가세요?” 묻는다면 저는 주저 없이 이렇게 답합니다.
“네, 세상은 넓고 갈 곳은 많거든요.”
오늘 저희 부부는 낯선 길을 향한 방랑자의 마음으로 오레곤 동부의 Sisi Butte Lookout을 향해 나섰습니다. 다행히도 목적지가 Bagby 온천장과 가까운 거리에 있어, 온천과 산행이라는 ‘일타쌍피’를 기대하며 하루를 계획했습니다.
온천에서의 짧은 휴식
먼저 Bagby Hot Springs에 들렀습니다. 보통은 산행 후 피로를 풀기 위해 찾는 곳이지만, 이곳은 이른 아침부터 가야 기다림 없이 입장할 수 있기에 일정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다소 예상 밖으로 오늘은 방문객이 많았고, 제가 평소 선호하던 자리는 이미 점유된 상태였습니다. 그럼에도 다행히 작은 통나무 욕조를 바로 사용할 수 있었고, 따뜻한 물은 여느 때처럼 깊은 위로를 주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이곳은 제가 가장 자주 찾은 장소입니다. 같은 산을 두 번 이상 가지 않으려 노력하는 저이지만, 이곳만큼은 예외였습니다. 분기마다 한 번, 혹은 그보다 더 자주 찾을 정도로 제게는 각별한 곳입니다.
Sisi Butte Lookout, 낯선 아름다움을 만나다
온천을 마친 후, 오늘의 본 목적지인 Sisi Butte Lookout으로 향했습니다. 온천장에서 약 한 시간 운전해 도착했으며, 진입로의 게이트는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그 지점에서 차량을 주차하고, 비포장 차량도로를 따라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길은 비교적 평탄했고, 약 3.2마일을 걷자 철제 구조물 하나가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바로 전망대였습니다. Sisi Butte Lookout, 해발 5,617피트(약 1,712m)에 위치한 이 전망대는 언뜻 보기엔 평범했지만, 그 위용은 계단을 오르며 점점 드러났습니다.
타워 아래에서는 나무들로 인해 시야가 좁았기에 저희는 곧장 계단을 올랐습니다. 4층까지 단숨에 오르니, 맨 위는 문이 닫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여기까지 오른 것만으로도 만족하며, 저는 주변 풍경을 영상으로 담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상층부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문을 열게요.”
갑작스러운 상황에 잠시 긴장했지만, 곧 육중한 문이 열리며 저희를 향해 손짓하던 ‘레베카’라는 분이 따뜻하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싸이싸이 뷰트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뜻밖의 환대와 특별한 순간
허관택씨 부부
레베카 씨는 타워 상층부의 팔각형 캐빈(Octagonal Cabin)으로 저희를 초대해 주었습니다. 이 구조물은 1940년에 건립되어, 1997년 업그레이드를 거쳐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타워는 총 5층, 약 50피트(15미터) 높이로, 전망대는 산불 감시소로 활용되는 시설이라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곳에서 저희는 말 그대로 360도 탁 트인 절경을 만났습니다.
북쪽으로는 후드 산(Mt. Hood), 아담스 산(Mt. Adams), 세인트 헬렌 산(Mt. St. Helens)이,
남쪽으로는 올랄리 뷰트(Olallie Butte), 제퍼슨 산(Mt. Jefferson), 쓰리 핑거드 잭(Three Fingered Jack)까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지금껏 수많은 산을 올랐지만, 이곳에서 마주한 풍경은 단연 최고였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일하는 레베카 씨가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하루를 채우는 감사와 여운
오늘은 정말 뜻밖의 행운을 누린 날이었습니다. 미소천사 레베카 씨 덕분에 저희 부부는 일반적으로는 접근이 제한된 공간에서 특별한 뷰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길고 낯선 여정이었지만, 그만큼 깊은 만족과 기쁨이 남았습니다. 돌아오는 길 내내 마음은 가볍고, 몸의 피로조차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낯선 방문객에게 친절과 환대를 아끼지 않은 레베카 씨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긴 글 끝까지 함께해 주신 여러분께도 고맙습니다.
글,사진 산사랑 산악회 회장 허관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