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골로새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감사’로 시작합니다.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골 1:3)라고 고백합니다. 이 한 문장은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있기까지의 여정을 요약합니다. 누군가의 기도, 누군가의 눈물, 누군가의 이름 없는 중보가 있었기에 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바울이 사용한 ‘감사’(εὐχαριστία, 에우카리스티아)라는 단어는 ‘은혜’(χάρις, 하리스)에서 비롯된 단어입니다. 즉, 감사는 은혜를 경험한 사람의 반응입니다. 감사는 모든 것이 완벽할 때 드리는 고백이 아닙니다. 오히려 감사는 삶의 한기 속에서, 억눌린 마음 위에 떨어지는 따뜻한 숨결과 같습니다. 감사를 고백하는 순간, 문제가 모두 해결되지는 않지만 문제의 무게가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감사를 시작점으로 삼을 때, 믿음과 사랑과 소망이라는 복음의 세 열매가 자라기 시작합니다. 이제, 이 복음이 우리의 삶에 어떻게 폭발하는지를 세 가지 갈래로 살펴보겠습니다.

1. 복음은 개념이 아니라 인격이십니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온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골로새서 1:15)

복음(εὐαγγέλιον, 유앙겔리온)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격적 존재이십니다. 시내산에서는 율법이 주어졌고, 아테네에서는 철학이 빛을 발했지만, 갈보리 언덕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예수님은 온 우주를 붙드시는 중심이시며(골 1:17), 교회의 머리이시고(골 1:18), 세상의 구속을 친히 이루신 분이십니다.

바울이 말한 ‘형상’(εἰκών, 에이콘)은 단순한 복사본이 아니라 본질 그 자체를 의미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보이지 않던 하나님의 얼굴을 분명하게 마주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말이나 지식이 아닌 관계입니다. 매주 듣는 설교가 정보로만 남아 있다면 복음은 나와 무관한 소식에 머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순간, 복음은 내 삶의 결정적인 사건이 됩니다.

2. 첫 번째 선물 – 자유의 주소 이전입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골로새서 1:13)

복음은 우리를 어둠에서 빛으로 옮깁니다. 여기서 ‘흑암’(σκότος, 스코토스)은 단순한 어둠이 아니라 방향 감각을 잃게 만드는 혼란을 의미합니다. ‘권세’(ἐξουσία, 엑수시아)는 정당한 통치를 상징하는 단어입니다. 즉, 우리는 과거에 혼란과 두려움이 지배하는 세계 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그 자리에서 꺼내시고, 그의 아들의 나라로 ‘주소 이전’을 시키셨습니다.

자유는 우리가 스스로 이룬 프로젝트가 아닙니다. 갈라디아서 5장 1절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라고 선포합니다. 자유는 이미 이루어진 완성형 선물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τετέλεσται, 테텔레스타이)라고 외치셨습니다. 그러므로 죄책감, 중독, 실패, 두려움이 문을 두드릴 때, 우리는 “수취 거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자유는 감정이 아니라 신분입니다. 신분이 바뀌면 삶의 방향도 바뀝니다.

3. 두 번째 선물 – 거룩한 리브랜딩입니다. “너희가 전에는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더니 이제는…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 없게 하사.” (골로새서 1:21–22)

복음은 우리를 새로운 이름으로 부릅니다. 이전에는 하나님과 등을 돌린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분의 자녀로 다시 불리게 됩니다. 여기서 ‘화목하게 하다’(καταλλάσσω, 카탈라쏘)는 단순히 관계 회복을 넘어, 원수였던 두 사람이 다시 마주 보고 서로를 껴안게 되는 장면을 묘사합니다.

거룩(ἅγιος, 하기오스)은 율법 점수표가 아닙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실 때, 우리의 언어, 시간, 관계가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거룩의 본질입니다. 복음을 믿는다고 해서 억지로 ‘티’를 내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을 포장할 필요는 없습니다. 성령은 매일 우리의 내부 코드를 조용히 업데이트하십니다. 그 결과, 말투가 바뀌고, 일상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집니다. 거룩은 억지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부터 흘러나오는 변화입니다.

4. 세 번째 선물 – 멈추지 않는 열매의 루프입니다. “이 복음이…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골로새서 1:6)

복음은 반드시 열매를 맺습니다. ‘열매 맺다’(καρποφορέω, 카르포포레오)라는 단어는 씨앗이 심기고, 자라고, 수확에 이르는 전 과정을 포함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복음의 씨앗을 심으셨습니다. 지금은 뿌리가 내려가는 시간일 수 있습니다. 줄기가 올라가는 중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열매는 반드시 맺힌다는 사실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붙드는 손입니다. 사랑은 이웃을 껴안는 팔입니다. 소망은 하늘을 바라보는 눈입니다. 계절이 아무리 험하고 땅이 메말라 보여도, 복음이 있는 영혼은 반드시 열매를 맺습니다. 시편 1편 3절의 고백처럼,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복음이 심긴 인생은 결코 메말라버리지 않습니다.

마무리 – 복음은 매일 아침 새롭게 도착하는 하늘의 선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도 오늘도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이 주신 자유, 거룩, 열매는 단발성 경험이 아니라, 매일 아침 새롭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다시 믿음으로 손을 펴십시오. 사랑으로 팔을 뻗으십시오. 소망으로 눈을 드십시오. 복음은 이미 우리 안에 착륙했습니다. 이제 복음이 우리를 통해 세상 속으로 이륙할 차례입니다.

The best is yet to come.

백동인 목사
(Reimagining Liberation 저자, Wipf and Stock Publish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