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추수감사절을 맞아 저희 부부는 자녀들을 만나기 위해 이른 새벽 집을 나섰다. 새벽 공항까지 동행해 준 처제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이 동시에 스쳤고, 곧바로 델타항공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 안에서는 잠을 청해 보려 했지만 쉽게 잠들지 못했다. 대신 창밖 풍경이 깊은 사색으로 이끌었다.
PDX를 떠난 지 한 시간이 지났을 무렵, 동체 너머로 가늘게 스며드는 햇빛과 구름 위를 유유히 가르는 비행기가 시야에 들어왔다. 마치 잠자리가 허공에 잠시 머문 듯한 고요함. 아래로 펼쳐진 구름은 바다처럼 넓고 부드러웠다. 3만 피트의 고도라는 안내방송이 무색할 만큼 구름이 시야를 막아 높이의 체감도 없었다. 바람 저항조차 느껴지지 않는 고요한 비행에서, 잠을 깨운 풍경은 오히려 값진 휴식이 되었다.
기내에는 어린 자녀와 함께 여행하는 젊은 부부들이 여럿 보였다. 울음소리 없는 아이들, 아이를 품에 안고 통로를 오가는 아빠들의 모습은 이국적 풍경 속에서도 익숙한 가족의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한때 내 품에서 잠들던 우리 아이들의 모습도 문득 스쳤다.
명절이면 보통 자녀들이 부모를 찾아오지만, 이번 만큼은 반대로 저희 부부가 아이들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낯선 도시에서 치열한 경쟁을 견디며 살아가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이제는 부모가 먼저 격려하러 나서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훗날 손주가 생긴다면 그때도 부모의 역할은 같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결국 건강이 가장 큰 자산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다섯 시간이 훌쩍 지나 있을 즈음, 비행기는 JFK 공항에 착륙했다. 공항은 연휴를 맞아 북적였고, 차량들은 픽업 구역에서 한 치 양보 없이 경쟁적으로 자리를 차지했다. 아들은 도로 중앙에 가까스로 차를 세웠고, 우리는 급히 뛰어가 차에 올랐다. 인사는 차 안에서 눈빛으로 짧게 나눌 수밖에 없었다. 혼잡한 공항에서 의젓하게 부모를 챙기는 아이들이 다시금 대견하게 느껴졌다.
다음 날에는 LA에서 작은 딸 커플이 합류했다. 아들 친구와 조카까지 모여 뉴욕의 작은 아파트에서 조촐한 추수감사절 디너가 차려졌다. 몇 해 전부터 터키를 굽고 사이드 메뉴를 준비하는 역할은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몫이 되었다. 이제는 도움 없이도 제법 능숙하다. 비록 성대하진 않아도, 피붙이들이 함께 모인 자리만큼 따뜻한 명절은 없다.
식사를 마친 뒤에는 잠시 저의 이민 초기의 기억이 떠올랐다. 불안정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시작했던 지난날과 달리, 우리 아이들은 더 안정적인 기반 위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는 사실이 감사함으로 다가왔다. 그럼에도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는 있다. 결혼, 가정, 주택 마련—지금 젊은 세대에게는 결코 가볍지 않은 숙제들이다. 치솟는 집값과 늦어지는 결혼, 예전과 다른 현실 속에서 가족이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할 문제들이다.
올해 추수감사절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가족이 함께 모여 서로의 삶을 응원한 시간이었다. 뉴욕이라는 낯선 도시에서, 그리고 북적이는 공항 한복판에서 다시금 깨달았다. 가족은 늘 우리가 돌아갈 곳이며, 명절의 의미는 결국 그 온기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글 사진 허관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