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는 혼자 입으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편을 암송해 봅니다. 시편23:3-4입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여러분의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나를 인도하신다. 내가 비록 죽음의 그늘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나를 위로해 주시니, 내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여기서 “죽음의 그늘 골짜기”, 즉 Death Valley는 라스베가스에서 140 마일 떨어진 곳에 있는 유명한 관광코스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이 지금 걷고 있는 우리 인생의 실존적인 길입니다.

우리 모두는 계곡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출생 시에 빈곤, 학대 또는 장애의 계곡을 넘어온 기억을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풍성한 푸른 목초지에서 태어난 사람들 가운데서도 술, 폭력, 무지, 편견의 골짜기를 피할 수 없었던 아픔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인은 계곡을 이렇게 정확히 표현합니다. 시편 57:6을 보시겠습니다.

“그들은 내 생명을 겨냥해서, 내 발 앞에 그물을 치고 내 앞에 함정을 파 놓았지만, 오히려 그들이 그 함정에 빠져 들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여러분은 더 이상 계곡을 두려워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시23:4. 내가 비록 죽음의 그늘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나를 위로해 주시니, 내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죽음의 그늘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성경은 우리가 계곡을 달릴 수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림자의 계곡”에서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계시며 여러분과 함께 동행하시는 하나님이 여러분의 모든 고난을 짊어지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중 그 누구도 이 계곡을 거치지 않고 인생의 그늘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거기에 오래 머물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세상의 고통과 우리의 아픈 상처. 우리가 직면한 모든 두려움에서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림자의 골짜기는 지나가는 무엇입니다. 계곡은 휴식 장소가 아니라 통로입니다. 우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슬픔을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고통을 헤쳐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최종 목적지가 천국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이 비록 죽음의 그늘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주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셔서 골짜기를 빠져나오도록 하시고 여러분이 주의 집에서 영원히 살 수 있도록 이끌고 계십니다.

인생이란 알고 보면 단순히 이 최종 목적지를 준비하는 여행입니다. 주님은 오늘 걱정, 우울, 불안에 대한 승리의 미래에 서게 될 여러분에게 오늘 세 가지 격려를 말씀합니다.

I. 하나님의 선하심이 여러분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항상 여러분 뒤를 따르고 있습니다. 그것이 여러분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잘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구원을 위해 여러분에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사용하실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이 나쁜 길에 잠시 빠져 있을지라도 주님은 여러분의 모든 인생의 행로 기운데 여러분을 마침내 선한 길로 인도하십니다.

시편 기자는 “주님은 모든 만물을 은혜로 맞아 주시며, 지으신 모든 피조물에게 긍휼을 베푸신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시편 145: 9)

예수님은 산상보훈에서 “아버지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해를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사람에게나 불의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 주신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마5:45)

이 세상에서 여러분은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증거를 도처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시인은 이렇게 감탄합니다.

“주의 한결같은 사랑이 온 땅에 가득하구나.” (시33:5)

번개는 종종 우리를 끔찍한 두려움에 빠트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번개 속에서 우리의 생명을 지키고 계신 것을 아십니까?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 절대적으로 질소가 필요합니다.

대기는 질소로 가득 차 있지만 직접적으로 폐를 통해 흡수할 수는 없습니다. 해수면의 건조한 공기를 예로 들면, 대략 78%의 질소, 21%의 산소와 그 밖에 나머지 1%가 아르곤, 이산화 탄소, 그리고 수증기 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대기로부터 질소를 분리해 인간에게 건네시려고 번개를 일으키십니다.

그리고 비를 통해 질소를 지구로 보내십니다. 그 후에 작은 박테리아들이 그 질산염을 아질산염으로 변형시키고, 식물이 그것을 흡수합니다. 식물은 자신의 생존에 꼭 필요한 탄소와 질소를 만들어냅니다. 그런 다음 우리는 식물을 먹거나 식물을 먹은 동물을 먹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우리는 생존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질소를 얻습니다. 그러므로 번개가 번쩍일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게 됩니다.

II.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 안에서 역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선이 우리를 따를 뿐만 아니라 자비가 우리를 따른다는 사실을 배웁니다. 자비는 은혜의 결과입니다. 이것은 목자의 노래임을 기억하십시오. 양치기는 양을 몰지 않고 양을 인도합니다. 그래서 목자는 양들의 선두에 섭니다. 그리고 목자를 돕는 사냥개들은 양떼 뒤를 따르며 양들이 길을 잃거나, 다치거나, 절벽 같은 곳에서 떨어져 부상을 입지 않도록 대비합니다. 개가 주인을 향해 짖기 시작하면 목자가 순식간에 달려와 양을 보호합니다.

다윗은 주님의 선하심과 자비가 우리 삶의 거룩한 선한 목자와 그가 사용하는 사냥개와 같다고 말씀합니다. 주님의 선하심과 자비는 우리 인생 길 앞과 뒤에서 항상 우리와 동행하며 우리를 보살피고 도움이 필요한 시간에 즉시 도와줍니다.

우리 인생에는 선하심과 자비 두가지가 다 필요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걷는 길에 언제나 주의 선하심이 필요합니다. 때로 열심히 살아간다고 하면서 비틀거릴 때 그분의 자비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여러분의 필요를 공급합니다. 하나님의 자비는 양들의 대열에서 이탈한 여러분을 위로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이 여러분을 돕습니다. 하나님의 자비가 여러분을 치료합니다.

우리가 실수를 하고, 순식간에 꿈을 날려 버리거나 성취한 비전을 잊어버리고 맥이 풀어진 채 누워있으면 주님이 살며시 다가오셔서 우리 손을 잡아 일으키시고 우리의 혼란을 수습하십니다. 학교 가기 싫어 늦은 시간까지 침대에 머물며 응석을 부리는 어린 아이 돌보듯 여러분을 다시 보듬으시고 인생의 새 날에 날게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비입니다.

우리는 선함과 자비가 내 삶의 모든 날, 그리고 일 가운데 우리를 따른다는 소식을 읽습니다. 그는 선하심과 자비를 켜거나 끕니다. 삶은 어느 한 순간이 좋으면 그 다음은 좋지 않습니다. 삶은 또한 어느 한 순간엔 자비롭고 그 다음은 자비롭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하심과 하나님의 자비는 우리 삶의 모든 날에 우리를 따라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III. 하나님의 영광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시편에는 위대한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작은 연결 고리입니다. 그 작은 연결고리는 우리의 오늘을 우리의 내일과 연결시킵니다.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연결합니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시27:4 입니다.  “내가 주께 청한 한 가지 소원, 그 하나만을 얻으려고 애쓸 것이니, 한평생 주의 집에 살면서 주의 자비로우신 모습을 보는 것과, 성전에서 주님과 의논하면서 살아가는 오직 그것뿐이다.”

다윗은 자신의 인생에 단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의 삶의 최후에 날에 주님의 품에 안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나는 죽을 것이다” 또는 “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또는 “나는 무가치하게 끝날 것이다” 라고 말하지 않고 “한평생 주의 집에 살면서 주의 자비로우신 모습을 보고싶다” 고 자신의 소원을 고백하였습니다.

목자의 삶은 언제 움직이는 삶이었습니다. 양이 한 지역의 목초를 소비하기 무섭게 다른 초장으로 옮겨가야 했습니다. 목자는 한 곳에서 오래 정착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은 이제 “하나만을 얻으려고 애쓸 것이니, (그것은) 한평생 주의 집에 살면서 주의 자비로우신 모습을 보는 것”이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이제 그의 목적지는 장소가 아니라 인격이었습니다. 시편은 대부분 “주님”으로 시작해서 “주님”으로 끝납니다. 우리는 미래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합니다. 우선 어떻게 죽을 지 모릅니다. 또한 언제 죽을 지 모릅니다. 어디에서 죽을 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미래에 대해 거의 모르지만 한 가지 사실만은 확정적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시편23:6을 보십시오. “진실로,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내가 사는 날 동안 나를 따르리니, 나는 주의 집에서 영원토록 살겠습니다.”

다윗은 본문 1 절에서 우리에게 결코 부족함이 없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우리가 배가 고프면 주님은 우리를 푸른 초원으로 이끄십니다. 우리가 갈증을 느낄 때 그는 우리를 물가로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무너질 때 하나님은 다시 우리를 일으키시고 다시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가 죽음의 그림자 골짜기를 걸을 때에도 주님은 그의 막대기와 지팡이로 우리를 보호 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원수들에게 둘러싸여 있을지라도, 그분의 식탁에서 평안의 만찬을 즐기도록 하실 것입니다. 이 은혜가 여러분의 평생에 동행하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백동인 목사 ㅣ갈보리장로교회 담임 (503)856-4233

교회 주소: 8060 SW Brentwood St, Portland, OR 97225 / 주일예배: 12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