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바다속의 작은 물고기가 누군가에서 들은 “바다” 라는 것이 있다고해서 찾아 다녔다. 이작은 물고기는 여기저기 매일 묻고 다녔다. “바다” 라는것이 무엇 인지 아세요 ? “바다”을 본적이 있나요? 하고, 그러나 그 어느 물고기도 그것을 몰랐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우리 역시, 이 물고기들 처럼 바다에 살면서도 물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아가는 것처럼 우리 또한 삶을 살아 가면서도 삶이 무엇인지을 모르고, 죽어가면서도 죽음을 모른다.
언젠가 들판에서 풀을 뜯고 있는 소들을 보았을 때, 난 그들이 불쌍했다. 그들의 운명이 인간의 음식이 된다는게 불쌍 하다기 보다는 이짐승들은 평생 한곳에서 죽을 때까지 생존을 위한 단순한 육체적인 움직임에 불가하기 때문이였다. 그러나 그순간 더 슬픈 사실을 깨닫게 된것은, 사실 우리 인간들은 저소들의 인생보다 더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소들은 그것이 그들의 운명이지만, 인간들은 자유가 있어도 스스로가 한계선을 그어놓고 거기에 자신을 가두워 놓고 살기 때문에 즉, 선택과 자유 의지을 잃어버리고 살기 때문이다.
평생 생존을 위해 풀을 뜯는 소나, 생계을 위해 오로지 집에서 일 , 일에서 집 doing, doing & doing에바뻐, being (진정한 삶음위한 삶을 사는것) 이 되는것을 잃어 버렸고, 작은 햄스터 캐이지에서 망상과 감정에 얼키고 설킨 자아 심리 드라마 ( self-conceived psychological drama)가 진짜 인생 인줄알고 무의식적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그것은 환상일 뿐이며, 오직 더높은 수준의 의식만이 현실이고 진실이다. 또한 인생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이 의식을 통한 실존적인 경험 (existential experience)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영적인 무지에서 깨어 나야만이 고통에서 벋어날수있고, 육체의 한계을 초월하는 눈이 뜨여야 다른 차원의 인생을 볼수가 있으며 삶의 해답을 또한 거기에서 찾을수가있다.
우리 주위을 둘러보면 알수 있듯이, 불행하게도 영혼이 살아있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그이유는 지금 현대인은 두가지 병에 걸려있기때문이다. 그 첫째는, 나 자신을 잃어 버린병이고, 둘째는 나 자신을 잃어 버리고도 깨닫지 못하는병이다, 이병은 영혼이 벌써 죽은 병이다. 우리는 그저 이 세상에 나와서 한가지 생활을 발견하고 그것을 몸에 걸친체 자신이 만든 패턴 속에서, 되풀이 됨에 때로는 질식하면서, 때로는 느끼기을 거부하면서, 때로는 삶의 노예가된 자신을 부정하면서 산송장 처럼 살아가고있다. 영혼이 죽은 인간은 감히 인생이 무엇인지을 질문 하려하지 않는다, 그저 한치 앞에 보이는 생활에 바둥 거릴 뿐이고, 생각하고 깨닫기 보다는 느낌과 감각으로 살며 꼭두각시 처럼 무대에서 거드럭 거리다 영원히 사라지는 존재일 뿐이다. 그러나, 인간은 죽어있는 영혼으로 살아 가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 짐승이라면 평생 생존에 끝나겠지만, 인간의 삶은 생존 이상이 되어야하며, 또한 생존에 그치기 때문에 행복 해질수가없다. 하루 24 시간, 일년365일 중에 당신이 진정 살아있는 시간은 얼마나 되는가 ?
당신의 영혼이 죽어있다면 흐릿해진 눈빛에 다시 생명감을 불어 넣어봐라. 시간이 티킹하는 것이 아니고 당신의 인생이 티킹 한다는걸 인식하고 원하는 진정한 삶을 창조해보라. 특히 한국 아줌마들한테 유명한말, 하고자 하는것을 “ 우리 아들/ 딸이 대학교 갈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핑계 따윈 버려랴. 이말은 즉, 우리 애들이 대학교 갈때 까지 숨을 쉬지않겠다는 것과 같이 어리석은 일이다. 자신의 의지가 없어서 못하는것을 자식으로 구실 삼지말라. 이것은 사랑이 아니고 집착이며, 결국 이것이 나중에 화근이 된다, “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지로 시작해서” 희생관념은 반드시 원한을 응태시킨다. 그리고 자기 생활이 있는 엄마가 여러면에서도 더좋은 본보기가 되고 자식들도 그런 엄마을 더 존경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시간은 당신을 기다려 주지 않는 다는것이다, 당신이 내일 산다는 보장은 절대없고, 영원히 살것 같은 착각을 버려라, 이 착각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무것도 못한다. 오늘 못하는 사람은 10년후에도 못하고, 30년 전에도 못했고, 죽을때 까지 못한다.
결국, 죽음 앞에서만 모든걸 내려놀수있지만, 이미 때는늦었다. 그래서 죽기전에 죽을수 있어야한다.(die before you die) 즉, 죽기전에 죽을수있는 연습이 필요하다. 죽기전에 내려놀수있는 용기가 당신을 행복하게 할것이다. 아무 조건 없이도 행복감을 느낄수있는 비밀이 바로 여기에 숨겨져있다. 죽기전에 죽을수있어야, 진정한 알맹이가 무엇인지을 볼수가있고, 왜 햄스터 캐이지에서 나와야 하는지도 알수가 있다.
지금 현제 우리는, 살아가는것이 아니고,죽어가고 있는것이다 그리고 삶은 죽어 가는것이라고 인식 한다면 최소한 무의식적으로 생존해 가기보다는 좀더깨어 있는 의식일것이다. 영원히 살것처럼 착각 하지 말라, 그렇기때문에 삶이 죽음이 되어 버리고, 죽음이 삶이 되는것이다.
우리가, 죽기바로 직전 인생을 회상할 때, 돈을 더많이 모았어야 했는데하고 후회하는 사람은 없다. 하고 싶었던거 못했고 ,가고 싶었던곳 못간게 후회스럽지.당신은 락킹체어에 앉아서 무엇을 후회할지 지금 생각해 보아라.
죽어가는 삶이 아닌 깨어있는 영혼이길 바란다면, 현제 몰딩된 생활에 습관적으로 살아가는것에 반항하라. 반항한다는 그자체는 아직도 한가닥의 영혼이 살아 꿈틀 거리고,그것은 바로, 당신의 영혼이 아직도 존재 한다는 것이기에.
유한성의 인간, 한계 상황의 죽음이라는 전제 아래서 그 무엇이 두려운가 ??
만약에, 두려움이 발목을 잡는다면 죽는 연습을 더해라, 그리고 영혼이 죽어버린 텅빈 눈빛에 생명력을 불어 넣고 싶으면, 여행을 떠나, 영혼을 다시 일깨워보라.
여행이란 가장 생명력있는 살아있는 문학이며, 가장 아름다운 감동이기에, 여행이란, 삶에 있어서의 신비성, 자연에 있어서의 신비성을 일깨워 주기에,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것은 틀에박힌 일상 생활에서 벗어나는 행복감을 주기에. 여행을 통해, 보면서도 볼수 없었던것을 보고, 들리지 않았던 소리속에 숨겨진 소리을 들어보고, 느끼지 못했던걸 느껴보라, 여행을 통해 삶에서 쌓인 쓰레기 들을 버릴수 있는 기회을 가져라 (garbage in garbage out) 그렇지 못하니까 속에서 썩고 냄새가(negative energy) 나고, 결국 이것이 한국여자 특유의 홧병 이되는것이다.
오픈 로드을 끝없이 달리면서, 마음컷 자유을 느껴보라, 새로운 환경에 접해 익사이딩한 경험을 통해 가슴 벅차는 희열을 느껴보라, 그것이 진정 살아있는 순간이다, 왜냐하면, 그순간 만큼은 우리 존재의 높은댓가 (생사고락)을 치루는 것을 잊게해주니까.
좋은 경험은 어떤것을 소유하는 것보다, 행복감이 훨씬 오래가고, 삶이 풍부하고 영혼을 살찌우게한다. 또한 여행은 우리의 추억에 투자 하는것이다, 우리가 가지고 갈수있는것은 오직 이것 뿐이기에…….
지금 전 세계가 격고있는 이 팬더믹은, 아마 모든것을 멈추고, 햄스터 캐이지에서 나오게 하는 계기인지도 모른다. 물질만능주의에 영혼을 팔았고, 생계 유지만이 인생이 전부인줄 알고 끝없이 달렸던 인생, 우리는 너무 멀리 왔는지도 모른다…. 결국, 가고, 가고, 또 간곳은 제자리 걸음이였고, 도착지는 죽음 일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또한, 지금 인간은 자연의 품에 안겨 힐링이 필요하다는 암시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의 내면의 세계에 눈을돌려 꺼져버린 영혼의 불씨을 다시 재생 시키는 기회가 될것이다.
시간속에, 시간이 묻히고, 어둠속에 어둠이 묻힌다, 밤은 또다시 살며시 제자리로 돌아와 우리들의 하루살이 인생을 되새겨 주고있다.
다 타버린 잿더미 속에 남겨진 발자국을 따라, 나는 오늘도 희미한 한줄기의 빛을 찾아 지구촌을 방황하는 꿈을 꾸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