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는 혼란과 불안이 가득한 시대 속에서 “여호와의 집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서게 될 날”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 산은 단순한 높은 봉우리가 아니라,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경계선이었습니다. 히브리어 ‘올라가다’는 ‘알라’로, 인간의 의지가 상승하려는 동작을 담지만, 죄의 무게와 정서적 혼란, 마음 깊은 공허, 붙잡지 못하는 내적 갈라짐은 걸음을 반복해서 멈추게 만들었습니다. 올라가려는 의지는 있으나 결국 정상에 이르지 못하는 상태. 이사야는 그 절망과 한계를 정확하게 포착합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대림절의 드라마가 시작됩니다.

1. 하나님의 높으심이 세상을 재배열합니다 ( 2:2) “말일에 여호와의 집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서리니.” 여기서 “굳게 서다”는 ‘쿤’으로, 한 번에 고정되는 상태가 아니라 지속해 세워지고 자리 잡아 가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현실에 갑자기 떨어지는 번개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중심을 조용히 잡아 가는 장면입니다. 어두운 무대에 천천히 빛이 더해져 산의 윤곽과 높이가 드러나듯, 세상의 중심이 새롭게 재배열됩니다. 그러나 산이 높아질수록 인간의 연약함이 도드라집니다. 마음의 균열, 두려움, 반복되는 죄책감, 내면적 혼란은 결국 우리를 멈추게 합니다. 이 산은 거룩함의 상징이자 인간 실패의 퇴적층입니다. 그리고 그 멈춤 속에서 하나님의 움직임이 시작됩니다.

2. 하나님이 길을 내려오십니다 ( 2:3)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가르치다”는 ‘야라’로, 단순한 교육이 아니라 흩어진 마음을 하나의 방향으로 모으는 행위입니다. 정서적 소음 속에서 한 문장이 마음을 다시 붙잡는 순간처럼, 하나님은 혼란한 내면을 하나의 흐름으로 정렬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 하나님께 오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언어와 현실로 내려오신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대림절의 진실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길을 여십니다.

3. 하나님이 미래를 뒤집으십니다 ( 2:4–5)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판단하시며”는 ‘샤파트’로, 하나님이 새로운 질서를 여는 개입을 뜻합니다. 칼이 보습이 된다는 말은 인간 내부의 파괴 에너지가 창조의 에너지로 바뀌는 사건입니다. 상처, 공격성, 오래된 패턴이 하나님 손에서 새로운 형태로 변환되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고 초대합니다. “행하다”는 ‘할라크’이며, 빛 속에서 계속 걸음을 이어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빛은 완성된 길이 아니라 걸어갈 때마다 열리는 길입니다. 이 본문은 우리 각자의 삶 속 “오르지 못하는 산”을 보여 줍니다. 실패의 기록, 정서의 무게, 반복되는 패턴,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그 산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산 아래까지 내려오십니다. 인간이 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