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4세기에 히포크라테스는 “멜랑콜리아”라는 용어를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이를 “우울” 또는 “침체” 또는 “우울한 기분”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보다 정확하게는 우울증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특정 계층의 질병이 아닙니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 모두를 공격합니다. 인종이나 국적을 가리지 않습니다. 청소년들도 성인만큼이나 고통받습니다. 청소년 사망 원인 중 두 번째로 자살을 아시나요? 그리고 헌신적인 기독교인들도 면역이 없습니다. 일부에게는 우울증이 간헐적으로 나타나지만, 다른 일부에게는 만성적입니다.
우울증의 심각성은 우리를 무력하게 하며, 그 경미함조차도 우리의 삶을 회색으로 물들이고 기쁨과 의미를 앗아간다는 것입니다. 거의 모든 사람에게 면역이 없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우울증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다양한 경험은 단지 정도의 문제일 뿐입니다. 시편 기자는 우울증을, ” 나는 물같이 쏟아졌다”고 표현합니다. 많은 경우에 우울증은 진행성이며, 우리 모두에게는 증세가 심각하지 않을지라도 여전히 우리의 삶을 황폐화시키고, 삶을 늪에 빠뜨리며, 그리스도가 제공하는 풍요로운 삶을 경험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 있습니까? 저는 시편 22편을 모델, 지침의 원천으로 사용하고자 합니다.
1. 먼저 우리는 주님 앞에서 정직하게 자신을 찾아야 합니다. 저자는 심각하게 우울했으며 그가 한 첫 번째 일은 주님 앞에서 자신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1절을 들어보세요.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로욜라에서 가르치는 예수회 사제인 존 파월 신부는 세계에서 가장 효과적인 기독교 커뮤니케이터 중 한 명입니다. 때때로 그는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엄청나게 어렵다고 느껴서 주님께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주님, 오늘은 사제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찾아와 요구하는 마을 펌프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겟세마네를 기억하십니까? 땀방울이 피가 되었습니다. 십자가를 기억하십니까?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여, 왜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부르짖으셨습니다. 우리의 우울과 절망의 감정에 상관없이, 우울증을 다루기 시작하려면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자신을 찾아야 합니다.
2. 두 번째 지침은 우리의 기억을 사용하여 우리의 자신감과 믿음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는 과거로 돌아가 기억 속에서 경험을 붙잡습니다. “우리 열조가 주께 의뢰하였고 의뢰하였으므로 저희를 건지셨나이다 저희가 주께 부르짖어 구원을 얻고 주께 의뢰하여 수치를 당치 아니하였나이다” (시22:4-5) 한 번의 자신감과 믿음의 확언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자신감과 믿음에 필사적으로 매달리려는 지속적인 패턴이 중요합니다. 그 투쟁의 리듬을 보세요.
(1) 우울과 절망 –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2) 자신감과 믿음 – “그러나 너는 자궁에서 나를 데려온 이로서 나를 내 어머니의 젖가슴에서 안전하게 지켜 주셨나이다.” (3) 우울과 절망 – “나는 물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4) 자신감과 믿음 – “그러나 주여, 멀리 계시지 마옵소서! 나의 도움이 되시는 분, 나를 돕기 위해 서둘러 오소서!”
우리가 우울할 때, 우리는 기억 속으로 되돌아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셨던 때, 우리가 안개에서 구원받았던 때, 날들이 밝고 삶이 기쁘게 흘렀던 때를 회상할 수 있습니다 – 그리고 그때 우리는 자신감과 믿음을 확증할 수 있습니다.
3. 세 번째 통찰력은 증언과 찬양입니다.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22절) 우울증의 유혹은 우리를 뒤로 물러나게 하고, 우리 자신 속으로 철수하게 하며, 집에 숨게 합니다. 종종 알코올이나 다른 약물을 통해 숨습니다. 그러나 시편은 우리를 증언과 찬양으로 부릅니다. 과거에 하나님이 하셨던 일을 되풀이하는 것은 자신감과 믿음을 살아 있게 합니다. 우리의 찬양의 목소리는 때때로 깨질 수 있으며, 물음표로 구두점이 찍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울한 가운데 부르는 찬양에는 힘이 있습니다.
4. 이제, 네 번째 원칙입니다. 주변 사랑하는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십시오. 철수하려는 유혹에 저항해야 합니다. 우리가 우울할 때, 우리는 분명하게 보지 못합니다. 우리는 자신을 가혹하게 판단하며, 우리의 실패를 지나치게 부풀립니다. 극단적인 경우, 우리는 자기 혐오에 의해 마비됩니다. 우리는 방향을 잃고 모든 것이 더 나빠집니다. 우리가 더 물러설수록 더 나빠집니다.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고 돌보는 사람들, 즉 우리에게 “편안하고 인내심 있고 주의 깊은 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가족과 가까이 지내야 합니다. 그분들은 우리를 듣고 사랑하며 지혜를 조언할 것입니다 – 함께 있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큰 힘의 원천입니다.
5. 시편의 마지막 지침은, 주님의 약속이 살아있게 하라는 것입니다. “주를 경외하는 자 앞에서 나의 서원을 갚으리이다” (시22:25) 약속이라는 것은 계속되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매일 그것을 업데이트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약속을 살아 있게 유지할 때, 주님의 구원에 대한 자신감이 우리를 지탱합니다. 시편 작가는 아무리 우울해도 그는 그의 믿음을 고수했습니다. 그가 시를 마무리하는 방식을 들어보세요. “후손이 그를 봉사할 것이요 대대에 주를 전할 것이며 와서 그 공의를 장차 날 백성에게 전함이여! 주께서 이를 행하셨다 할 것이로다” (시22:30-31)
다음은 시편 작가가 가르쳐 준 우울증을 다루는 데 도움이 되는 지침입니다. 하나, 주님 앞에서 자신을 찾으세요; 둘, 기억을 사용하여 우리의 자신감과 믿음을 확인하세요; 셋, 아무리 어려워도 증언하고 찬양하는 노력을 기울이세요; 넷, 중요한 다른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세요; 다섯, 주님께 대한 당신의 약속을 살아 있고 성장하게 유지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