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러그(민달팽이)의 공격으로 첫 해 배추 재배는 실패하였습니다. 하지만 맥주 처방으로 재배에 성공만 한다면 직접 가꾼 배추로 맛갈나는 김치를 유학생 들및 교민 들과 나눌 수있다는 꿈은 부풀어 갔습니다.

맥주를 가득히 채운 병들을 오후에 밭 곳곳에 묻어 놓고 슬러그들이 무수히 빠져 죽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이른 아침에 밭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러나 빠져 죽은 슬러그는 두, 세 마리 정도에 불과하였을 뿐이었습니다. 파랗게 고개를 내 밀었던 어린 배추 싹은 밤이 지나면 또다시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동안 쏟은 땀과 전도에 부푼 기대를 생각하면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다시 파종을 하고 어린 싹이 고개를 내어 밀 즈음에 손 전등을 들고 밤 중에 밭으로 내려가 보았습니다. 낮에는 전혀 볼 수없었던 수 많은 민 달팽이들이 어디에서 나왔는 지 씨를 뿌려 놓은 밭 골마다 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많은 달팽이들이 맥주를 부어 넣은 병에 들어가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기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직접 손으로 잡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빈 페인트 통에 물을 약간 채우고 달팽이를 잡아 넣기 시작하였습니다. 밤중부터 시작한 이 작업은 네 시간 쯤 지났을 때야 끝이 났습니다. 새벽기도회 시간만 아니라면 꼬박 밤을 지새웠을 것입니다. 날이 밝자 다시 밭으로 내려갔습니다. 전 같으면 이미 배추 싹은 종적없이 사라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제 밤에 슬러그를 잡아 낸 덕분인지 배추 싹은 별로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이튿날 저녁에 또 밭으로 갔습니다. 전등 빛을 받은 흰색의 슬러그들이 흙 위를 기어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날 저녁에도 새벽까지 작업은 계속되었습니다. 페이트 통은 슬러그로 가득히 채워졌습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집사님 두 분이 합류했습니다.

2주 동안 저녁마다 이 작업을 계속한 덕분에 배추는 무럭 무럭 자라기 시작하였습니다. 성공적이라는 생각에 밤잠을 설치는 어려운 작업 임에도 불구하고 마음만은 지치지 않았습니다. 잎들이 자라서 배추의 형태를 갗추어 갈 무렵에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가끔 산에서 내려와 집 근처를 서성거리던 사슴 한 가족이 배추 밭을 초토화 시키고 말았습니다. 배추 허리를 싹둑 잘라 먹어버리는 가하면 아예 뿌리채 뽑아 먹기도 하였습니다. 사슴이 그처럼 야속하게 보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그들은 매우 영리하였습니다. 문을 열고 나가면 먼저 알고 멀리 도망을 가버립니다. 집을 비우면 영락없이 사슴은 다시 내려왔습니다. 밤에도, 새벽에도 내려와 밭을 휘저어 놓았습니다. 사슴을 내려오지 못하게 해 달라고 새벽마다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막무가내였습니다. 사슴을 막아 내지 못하면 김치 전도는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란 좌절감이 커져만 갔습니다.

결국 그 해 가을은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왜 이 지역에 거주하는 한국 사람들이 배추를 가꾸지 않는 지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습니다. 사슴을 막기 위하여 사람들이 철망을 친다는 사실을 그 후에 알게 되었습니다. 이듬해 여름에 부지런히 철망으로 밭 주변을 막았습니다.

가을이 왔습니다. 지난 해처럼 네파라는 배추씨를 구입하여 뿌린 후 열심히 물을 주었습니다. 싹이 틀 무렵부터는 매일 저녁 한 손에는 페인트 통을, 다른 한 손에는 손 전등을 들고 밭으로 내려 갔습니다. 서너 시간 정도 작업을 하면 페이트 통에는 슬러그가 가득히 잡혔고 새벽은 밝아 왔습니다. 가을 바람과 함께 배추는 점점 자랐습니다. 그러나 사슴이  점프를 그렇게 높이 잘 하리라고는 미쳐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사람 키 보다 더 높은 6피트 높이의 철망을 사슴은 가쁜히 넘어 들어왔습니다. 부드러운 배추 잎은 사슴들에게는 진수성찬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주야로 밭을 지키고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사슴이 자주 들어오는 길목에 센스 장치를 설치하였습니다.

물체가 나타나면 찬송가가 울려 퍼지도록 녹음기에 연결시키고 동시에 100와트의 전등이 환하게 켜지도록 설치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장치도 몇일 동안만 효과를 발휘하였습니다. 갑자기 울려 퍼지는 찬송가 소리와 함께 대낮처럼 밝히는 전등불을 보고 처음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가던 사슴들이 몇 일 후 부터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 다는 것을 알았는 지 도망도 가지 않고  배추를 먹는 것이었습니다.

삼년 째가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개를 입양하기로 하였습니다. 동물 보호소를 찾아가서 큼직한 세파트 한 마리를 입양하였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교포 한 분이 사냥 전문 개 한 마리를 맡겨 주었습니다. 유학생이 이사를 가면서 또 한 마리를 주었습니다. 세 마리의 개를 배추밭 모퉁이 마다 매어 두고 보초를 서게하였습니다.

그 해 가을 마침내 배추가 수확되었습니다. 부더러운 토양에 뿌려진 배추씨는 충분한 영양공급과 맑고 긴 가을 햇살을 받아서 샛노랗게 알찬 배추로 보답해 주었습니다. 수확한 배추와 무우를 본 사람들은 지금까지 그렇게 크고 무거운 배추와 무우를 본적이 없다고 칭찬해 주었습니다. 온 교우들이 모여서 김치를 담았습니다. 남는 배추는 박스에 넣어 집집마다 돌렸습니다. 교포들은 신기해 하였습니다. 유학생들은 함박같은 웃음으로 대답해 주었습니다. 전도 대상자들을 만나게 해 주는 배추가 더욱 사랑스러웠던 가을이었습니다.

전병두 목사

오레곤 주 유진 중앙 교회 담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