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끔, 아주 잠깐이지만, 우리의 삶이 전부 우연과 혼돈으로 얽혀 있다는 불안에 휩싸이곤 합니다. 오랫동안 애써 준비한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혹은 예기치 못한 시련이 찾아와 모든 것을 뒤흔들어 놓을 때 말입니다. 그때 우리는 묻습니다. “이 일에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디에도 답이 없다면, 이건 그냥 무작위적 불행의 연속 아닌가?” 하지만 어둠 속에서 길을 찾기 어렵다고 해서, 길 자체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로마서 8장 28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분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라는 말씀은 마치 캄캄한 방 한구석에서 켜진 작은 등불 같습니다. 뿌연 공기를 뚫고 번지는 희미한 불빛이지만, 그 등불을 붙잡으면 우리는 두려움 속에서도 한 걸음씩 내디딜 수 있습니다.

  1. 혼란 속에서도 하나님이 통제하고 계신다. 바울은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놓치기 쉬운 사실 하나를 강조합니다. 세상은 분명 예측 불가능해 보이고, 우리 계획은 자주 어그러지지만, 그 모든 과정 안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겁니다.
    어떤 때는 인생이 ‘하염없이 추락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재정적 위기, 건강 문제, 인간관계의 단절… 마치 사방에서 동시에 무너져 내리는 소리를 듣는 것 같죠. 하지만 우리가 인정해야 할 사실은, 그 모든 소음 너머에도 하나님의 계획이 들려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상황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을지라도, 적어도 하나님께선 통제권을 놓지 않으신다는 믿음 말입니다.
    성경은 여러 이야기를 통해 이 사실을 보여줍니다. 요셉의 삶을 떠올려 보십시오. 형들에게 배신당하고, 노예로 팔려가고, 억울하게 감옥살이까지 했지만, 결국 그는 기근 앞에 민족을 구하는 핵심 지도자가 됩니다. 욥도 마찬가지입니다. 거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욥이지만, 마지막엔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복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역설적인 순간들(절망이 끝이라고 느낄 때 찾아오는 새로운 시작)은 하나님이 결코 우리를 놓아 버리시지 않는다는 상징처럼 다가옵니다.
    신앙이 흔들리는 시점에 이 이야기를 떠올려 보세요. 그리고 마음속으로 속삭이듯 말해보십시오. “나는 혼자가 아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여전히 일하고 계신다.”
  2. 모든 것이 선을 위해 함께 일한다. 로마서 8장 28절을 읽으면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모든 것(all things)”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일상적 기쁨이나 사소한 난관을 넘어, 때로는 크나큰 상실과 고통, 그리고 예측할 수 없는 비극까지도 포함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뭔가 의미가 생길 수 있을까?”라는 의심은 누구든 품을 수 있지요.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선(善)’은 단순히 우리의 눈에 보이는 행복이나 편안함 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인간적인 기준으로는 ‘이익’이 나지 않는 사건들도, 하나님의 큰 그림 속에서는 깊고 묵직한 의미를 지닐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영적 성장, 인격의 성숙, 그리고 영원과 연결된 더 큰 목적이 모든 것이 하나님 보시는 ‘선’의 범주 안에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주어진 역경을 단지 ‘고통’으로만 치부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하나님은 그 고통조차 사용하십니다. 그분의 손안에서 재료가 되어, 결국은 우리의 믿음과 삶을 더 단단하게 빚어내는 도구로 쓰이게 됩니다. 모든 조각은 우리가 다 헤아리기엔 너무 복잡하고 거대해 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 퍼즐의 완성도를 알고 계십니다.
  3.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로마서 8장 28절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 바로 이 조건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분이 모든 것을 다스리시고, 우리의 고통조차 선으로 이끌어 주신다는 약속을 진정으로 받아들이려면, 우리의 삶이 그분과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저 기분 좋은 감정이나 막연한 호의가 아닙니다. 그것은 적극적인 신뢰와 순종, 그리고 깊은 헌신에서 비롯됩니다. 우리는 그분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때로는 내 뜻, 내 욕심에만 몰두합니다. 그런데 정작 삶이 난관에 부딪히면,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라고 분노나 절망에 빠지곤 하지요.
    하지만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우리 시선과 마음은 조금 달라질 겁니다. 그분과 걸으며, 그분을 예배하며, 그분의 말씀에 귀 기울일 때, 세상이 폭풍처럼 흔들려도 우리의 중심은 생각보다 덜 흔들립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손안에 있다는 믿음이 우리 내면 깊숙이 자리 잡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한복음 14:15) 그 계명을 지키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의 통제와 섭리를 온전히 체험하게 됩니다. 말하자면, 사랑은 신앙의 언어가 되고, 순종은 그 언어를 실천하는 행동 양식이 됩니다.
    세상은 여전히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변하고, 불확실성은 우리의 일상을 휩쓸고 지나갑니다. 그러나 로마서 8장 28절은 이런 광풍 속에서도 우리가 붙잡을 수 있는 닻이 되어 줍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여전히 통제하고 계시며(첫 번째),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고(두 번째), 우리가 그분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살 때(세 번째) 그 신성한 계획의 결실을 온전히 누릴 수 있다는 ‘삼중의 약속’입니다.
    우리는 자주 의심과 낙심의 틈바구니에서 서성입니다. 하지만 이 말씀을 붙들 때, ‘지금 겪는 혼돈이 결코 마지막 장면이 아니’라는 희망이 우리 마음에 피어납니다. 한낮의 태양이 때론 구름 뒤에 숨을 때도 있지만, 그것이 태양이 사라졌음을 의미하진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이 아무리 어두워 보여도, 하나님이란 태양은 결코 빛을 거두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잠시 구름의 그림자에 가려져, 그분의 밝은 손길을 못 보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조금만 더 견디고, 그분을 신뢰하며, 사랑하십시오. 이미 우리의 모든 것은 그분의 손안에 놓여 있으니까요.
백동인 목사
『Nature&Time』 시리즈(I,II,III)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