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은 그가 포로로 끌려온 바벨론 그발 강가에서 하늘이 열리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말옷트 엘로힘’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비전)을 보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창세기 15장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을 때 타는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가는 ‘타는 횃불’을 본 것처럼, 모세가 출애굽기 3장에서 불이 붙었지만 타지 않는 떨기나무를 봇 것처럼, 에스겔도 에스겔 1 장에서 빛이 사면이 번쩍번쩍 비치는 불 가운데 단쇠 (광채 나는 보석)같은 것을 보았습니다. 심지어 그는 “궁창 위 하늘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까지 보게 됩니다. (1:22-28)

그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낯설고 물이 선 포로지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 버림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에스겔은 포로지에서는 하나님을 예배할 수도 없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갈 수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포로지에 있는 포로민들을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불의 상징)인 (수레보좌)를 타시고 먼 포로지까지 그의 백성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포로민들은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들과 가까이 계셨습니다.

그동안 포로민들은 절망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포로민이 된 비참한 상황에서 침묵하시는 듯한 하나님에 대한 신뢰는 흔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도대체 어디 계십니까?”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통해서 결정적인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그는 환상 가운데 오래된 말라붙은 해골들이 가득 쌓여 있는 계곡 한가운데에 앉아 있었습니다. 사방에 뼈가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완전한 황폐와 절망의 장면이었습니다.

에스겔은 그 마른 뼈들을 둘러보았고 그 뼈들이 나라와 성전을 잃고 희망없이 흩어져 있는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들은 아무런 소망이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외칩니다.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겔37:12)

그때 에스겔은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고 묻는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주님은 이 나라, 이들의 관계, 이들의 가족, 이들의 미래에 희망이 있겠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에스겔이 대답합니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알고 계십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 만이 우리의 고통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이 뼈들에게 대언하여라 … 내가 너희 속에 생기를 불어넣어, 너희가 다시 살아나게 하겠다.” (37:4-5) 그래서 에스겔은 명령을 받은 대로 예언을 했고,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자 그들이 살아나서 엄청난 수의 무리가 되었습니다. 이 그림이 상상이 되십니까? 좀비와 사이보그 영화의 한 장면과 같지 않습니까? 이때 하나님께서 구약의 가장 위대한 말씀 가운데 하나를 주십니다. 그것은 유다 포로민들의 귀향과 부활에 대한 약속입니다.

 “인자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포로지)을 열고 너희로 거기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내가 내 신(Spirit)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살게 하고 내가 또 너희를 너희 고토에 거하게 하리라.” (겔37:11-14)

춤추고 싶지 않나요? “내가 내 신(Spirit)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살게 하고 내가 또 너희를 너희 고토에 거하게 하리라.” 죽었던 사람들이 다시 영광스러운 삶으로 돌아온다는 것이 얼마나 흥분되는 일입니까? 절망과 낙담의 삶이 활력과 목적 있는 삶으로 회복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원래의 삶의 자리, 원래의 예배의 자리로 우리가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잘 아시는 대로, 1980 년 이 지역의 세인트 헬렌 산이 분화하며 주변이 황폐화되었습니다. 엄청난 산림이 산불로 잿더미로 바뀌었고 57명이 사망했습니다. 강은 화산 잔해로 막혔고 많은 물고기와 다른 야생 동물들이 죽었습니다. 독성 연기가 대기를 가득 채웠습니다. 기자들은 화산재 구름으로 인해 몸에 치명적인 산성비가 내릴 것이라고 불길한 예측을 했습니다. 지역의 미래는 암울 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화산이 분화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연어와 송어 등의 어류가 뜨거운 진흙, 화산재, 떠 다니는 잔해로 막힌 강줄기에 살아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어떤 연어들은 산란기를 맞아 깊이가 불과 6 인치 미만인 작은 개울과 수로를 이용해서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몇 년 만에 세인트 헬렌 산을 둘러싼 들판, 호수 및 강은 생명으로 가득했습니다. 물과 토양은 마치 화산 폭발로 새롭게 영양분의 혜택을 받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산과 들판 여기저기에서 새로운 초목의 흔적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에스겔은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고 묻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에스겔이 대답했습니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지금도 누군가는 우리의 삶이나 사랑하는 사람의 삶에 대해 질문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내가 내 신(Spirit)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살게하고 내가 또 너희를 너희 고토에 거하게 하리라.” (37:11-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어떤 상황도 절망적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마른 뼈들은 다시 모이고 또 다시 위대한 삶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위기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기회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새 생명의 하나님입니다. 그리스도는 지금도 사람들의 삶을 만지고 있습니다.

백동인 목사ㅣ갈보리장로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