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적인 사람은 1분에 13번 눈을 깜박인다고 보도한 TV 보도를 접한 적이 있습니다. 흥미로운 상식입니다. 하지만 제가 정말 흥미를 느낀 것은 세계 기아 문제에 관한 기사였습니다. 전 세계에서 매분 13명이 굶어 죽는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이는 제가 눈을 한번 깜빡일 때마다 다른 사람이 굶주림으로 죽어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충격적인 통계는 계속 이어질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많은 축복에 대해 감사하고, 그 축복을 불우한 이웃과 희생적으로 나눔으로써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 중 기아 단체, 노숙자 섬김, 또는 Meals On Wheels에 아낌없이 기부함으로써 잘 입고 잘 먹고 있는 가족에 대해 주님께 감사를 표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굶주린 사람들의 필요에 제대로 응답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보다 더 불우한 사람들을 진정으로 걱정하기 전에 여러분과 제가 삶에서 극복해야 할 두 가지 태도가 있습니다.

첫째, 가장 기본적인 것은 우리의 무관심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 중 너무 많은 사람들이 신학을 내 신학으로 바꿨습니다. 즉, 나의 진정한 기독교적 관심사는 나를 위한 것이지 주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교회는 나를 섬기고, 나의 필요를 채우고, 나의 구원을 구하고, 나의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입니다. 아모스 선지자가 이스라엘에서 보았던 바로 그 문제입니다. “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양 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잡아서 먹고…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에 대하여는 근심하지 아니하는 자로다”(아모스6:4,6)라고 말했습니다.

유대인들은 형제의 파멸을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스스로를 ‘형제의 지킴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형제의 파멸은 그들을 괴롭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상아 침대와 엄선된 고기와 고급 와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좋은 삶”을 즐기고 있었는데 왜 신경 써야 할까요? 하나님이 요구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구절에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있지 않을까요? 성경의 명령은 이웃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의 상처와 고통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진정으로 그러한 관심을 느끼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주님께 순종하여 그렇게 행동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굶주린 사람들을 돕기 위해 우리가 극복해야 할 두 번째 태도는 ‘하나님이 배고픈 사람들을 먹여주시도록 기도만 하자’는 태도입니다.

하나님만이 배고픈 사람들을 먹일 수 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주를 창조하신 분,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히브리인을 먹이신 분, 광야에서 떡을 떼어 무리를 먹이신 분이라면 오늘날 세상의 굶주린 자들을 먹이실 수 있습니다. 그분은 말씀 한 마디로 모든 식탁에 음식을 차려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과 이 삶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시험대입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서로에 대한 책임을 주셨습니다.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헌신을 시험하는 시험대입니다!!

풍성한 축복을 받은 우리는 목적이 있어서 축복을 받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너무 잘나서 또는 우리가 복을 받을 자격이 있어서 복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많은 것을 베풀 수 있도록 많은 것을 받았습니다. 누가복음 12장 48절에서 예수님은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 많은 것이 주어졌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십니다. 훨씬 적은 것을 가진 사람들과 나누세요. 이 시험은 우리의 신실함, 감사함, 기꺼이 순종하려는 의지, 이웃에 대한 책임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실패하는 시험입니다.

누가복음 12장에 나오는 부자 바보가 있습니다. 어느 해에는 곡식이 너무 풍성해서 헛간에 다 담을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는 불우한 이웃과 나누기보다는 자신의 미래를 위해 더 큰 헛간을 지어 저장해 두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바로 그날 밤 자신의 목숨을 읽었습니다! 하나님만이 배고픈 자를 먹이실 것이라는 잘못된 태도 때문입니다. 그것은 마가복음 6장 30절에서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5,000명을 가르치신 후, 제자들이 취한 태도입니다.

밤이 깊어가고 있었고 사람들은 배가 고팠습니다. 사도들은 제자들이 스스로 먹을 것을 구할 수 있도록 그들을 돌려보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가서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책임을 돌리셨습니다.

우리가 단순히 굶주린 사람들의 필요를 위해 기도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바로 돌아서서 우리에게 음식을 보내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세상에서 우리를 통해 굶주린 자를 먹이시고 절망한 자를 돕고 계십니다. 우리가 그분의 도움을 구할 때. 그분은 우리에게 풍성한 자원과 굶주린 자를 먹일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해 주셨음을 상기시켜 주십니다. 그분은 “그래, 내가 너를 통해 돕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도 우리가 눈을 한번 깜빡일 때마다 전 세계 누군가가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축복을 주셨고 이제 우리에게 시험을 주십니다 여러분, 새해에 어떻게 응답하시겠습니까?

백동인 목사-포틀랜드 갈보리교회 전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