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사 65:17). 말씀은 번개처럼 터지는 선언이 아니라, 오래된 집의 문틈으로 스며드는 새벽 공기 같은 것이었습니다. 삶을 무겁게 만드는 것은 언제나 사건이 아니라 기억입니다. 사람은 어제를 등에 지고 오늘을 걷습니다. 아무 일도 없는 듯 고요한 기억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줄처럼 발을 묶고 마음을 눌러 삶의 무늬를 낡게 만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낡은 방에 들어오셔서, 스위치를 켜듯 불을 밝히지 않습니다. 대신 아주 작은 숨결처럼, 어둠이 눈치채지 못할 만큼의 빛을 놓습니다. 그리고 그 빛은 어제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어제가 머물던 자리를 다시 써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이전 것은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사 65:17). 이 말은 잊으라는 명령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기억의 문법을 바꾸겠다는 선언입니다.

1. 기쁨이 도시를 다시 세우는 순간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운 성으로 창조하며 그 백성을 기쁨으로 삼고”(사 65:18). 도시는 객관적으로는 사람들이 모여 관계와 제도를 이루고 문화를 형성하는 장소입니다. 이민자에게 도시는 낯섦과 두려움이 스며 있는 공간이며 동시에 자신이 누구인지 다시 질문하게 만드는 거울 같은 자리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말은 이 도시가 단순히 기능적으로 회복된다는 뜻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 다시 살아나는 회복을 의미합니다. 히브리어 수스는 감정이 깊게 흔들릴 만큼 강한 기쁨을 가리키는데 하나님은 여러분을 볼 때 바로 그 흔들림으로 다가오십니다. 그 기쁨이 마음 위에 부드럽게 머물기 시작하면 울음의 자리는 조금씩 비워지고 오래된 상처의 그림자도 천천히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다시는 울음 소리와 부르짖음이 그 가운데서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사 65:19). 이 말은 고통이 완전히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라 고통의 자리가 새로운 의미로 덮이기 시작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마음이 우리의 내면으로 흘러오면 상처는 중심에서 비켜나고 울음은 억지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기쁨이 천천히 그 자리를 채우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집니다. 이민자의 도시가 주는 외로움과 두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은 마음의 벽을 부드럽게 다시 세워 가십니다. 예루살렘이 회복되듯 여러분의 마음도 그 깊은 결에서부터 새로운 호흡을 찾게 됩니다.

2. 헛되지 않는 삶이 열리는 자리

“그들이 수고한 것이 헛되지 아니하겠고”(사 65:23). 인간에게 가장 큰 두려움은 실패보다 헛됨입니다. 이민자의 삶에는 그 두려움이 더 선명하게 드러나기도 합니다. 익숙하지 않은 언어와 제도 속에서 쏟아낸 수고가 허공으로 흩어지는 것 같고 삶이 의미 없이 스쳐 지나가는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무너지는 경계에 손을 얹으셔서 여러분의 수고를 붙잡아주십니다. 헛됨이라는 이름이 붙던 순간들이 하나님 앞에서 다른 이름으로 다시 불리기 시작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노동은 우리를 소진시키는 구조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목적을 담아내는 그릇이 됩니다. 여러분이 쏟아낸 시간과 마음은 사라지지 않고 하나님이 빚어 가시는 길의 일부가 됩니다. 도시라는 공간은 때때로 사람을 비교하며 소모하게 만들지만 하나님은 그 도시의 질서 속에서도 여러분의 수고를 헛되지 않게 보존하십니다. 수고의 결과는 인간의 평판이나 기준에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의미 속에 자리 잡게 됩니다.

“그들은 여호와께 복된 자의 후손이요”(사 65:23). 이 말은 단순히 자녀의 번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 전체가 끊기지 않고 복의 흐름으로 이어진다는 의미입니다. 이민자의 삶은 종종 단절의 경험을 동반합니다. 도시가 너무 빠르게 변해 따라가기 어렵고 다음 세대는 또 다른 문화의 경계에서 고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러분의 삶이 오늘에서 끝나지 않도록 내일과 그 이후를 잇는 선 위에 두십니다. 미래는 불안의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빛을 두신 자리입니다.

3. 상상할 없는 평화가 시작되는 지점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사 65:24). 이 말씀은 기도의 능력보다 하나님의 가까움이 더 깊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마음의 떨림을 알아채시고 움직이시는 하나님은 이민자의 도시 속에서 외로움으로 지친 마음을 먼저 아십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나님이 먼저 다가오시는 관계의 구조에서 시작됩니다.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먹고 짐승이 서로 해하지 아니할 것이며”(사 65:25). 도시는 경쟁과 격차가 분명한 공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새롭게 빚으시는 세계에서는 이런 질서 자체가 해체됩니다. 본문에서 “해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יָרֵעוּ(야레우)는 공격하거나 상처를 입히는 행동을 가리키지만 하나님은 이 단어가 실제로 사용될 상황 자체를 사라지게 하십니다. 그래서 강함은 위협이 아니라 보호가 되고 약함은 두려움이 아니라 신뢰가 됩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서도 하나님은 이런 평화의 작은 움직임을 심기 시작하십니다. 아주 미세하지만 분명히 방향을 바꾸는 힘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어느 거대한 사건처럼 들리지만, 사실 하나님은 그것을 아주 소박한 방식으로 시작하십니다. 우리 마음속에 켜켜이 쌓인 기억의 먼지를 한 번에 털어내지 않고, 오래 닫혀 있던 서랍 하나를 살짝 여시는 것처럼 다가오십니다. 그 작은 틈으로 들어온 공기가 방 안의 냄새를 조금씩 바꾸듯이, 하나님은 삶의 방향을 조금씩 다른 쪽으로 돌리십니다. 때로는 우리가 알아채지도 못하는 속도로. 우리가 해 왔던 수고는 어느 날 갑자기 빛나지 않지만, 낡은 나무탁자에 조용히 배어드는 햇살처럼 의미가 다시 배어듭니다. 평화는 거창한 선언으로 시작되지 않습니다. 마음속에서 오래 갈등하던 한 가지 생각이 잦아드는 순간, 혹은 내일로 미루던 작은 용기가 오늘로 다가오는 순간에 슬며시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러니 무엇을 크게 바꾸려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이 열어 놓은 그 작은 틈 하나를 그냥 놓치지 마십시오. 그 틈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이 자랍니다.

백동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