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니아카니 정상에서 내려다 본 오레곤 이스트코스트

이제 여름이 무르익어 본격적인 바캉스 철입니다. 저는 주말 산행을 계획하며 고민에 빠졌습니다. 산으로 갈까, 강으로 갈까, 아니면 바다로 갈까? 요즘 같은 시기엔 정말 살짝 고민되거든요.

가끔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 매주 가는 산, 그 산이 그 산 아냐?”
그럴 때마다 저는 생각합니다. 맞아요, 그래서 ‘변화 있는 산행’이 필요하다고요.

오레곤은 아웃도어 활동을 즐기기에 정말 좋은 곳입니다. 멀리 우뚝 선 하얀 후드산, 콜롬비아 강이 대양으로 흘러가는 모습, 그리고 차로 한 시간만 가면 펼쳐지는 아름다운 해변들까지. 이렇게 선택지가 풍성한 포틀랜드에 산다는 건 참 행복한 일입니다.

지난주는 후드산을 다녀왔으니, 이번엔 바다로 방향을 틀기로 했습니다. 목적지는 바로Mt. Neahkahnie!

Neahkahnie 산은 케논비치 남쪽으로 15마일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Neah-kah-nie’라는 이름은 합성어인데, 원주민들은 이를 “으뜸 신이 사는 곳” 혹은 “창조자의 장소”로 여겼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곳은 원주민들에게 영적인 장소였죠.

등산을 시작하니 트레일은 덤불이 우거져 있고, 관리가 잘 안 된 듯 보였습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죠. “으뜸 신이 산다더니, 뭐 특별한 거라도 있으려나?” 주위를 둘러봤지만, 오래된 고목 두 그루가 인상적일 뿐, 특별히 눈에 띄는 건 없었습니다. 그래도 길가에 야생 베리들이 자라 있어, 목마를 때마다 하나씩 따먹으며 순조롭게 정상에 올랐습니다.

산 정상엔 먼저 도착한 이들이 울퉁불퉁한 바위에 걸터앉아 전망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저는 조용히 서서 아래쪽을 바라보았습니다. 안개가 살짝 깔려 마치 스크린에 얇은 필터를 씌운 듯 흐릿했지만, 앞사람이 떠나자마자 얼른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마치 대형 공연장의 로열석에 앉은 기분이었죠. 집중해서 한 장면, 한 장면을 눈에 담았습니다.

초승달처럼 휘어진 해안선, 겹겹이 밀려오는 파도, 구름 낀 하늘 아래 꼬막껍질처럼 모여 있는 집들, 드넓고 푸른 바다…
오마이갓! 그 풍경은 말 그대로 장관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곳에서 바라보는 오레곤 해안선이 어디보다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이곳에 올 때마다 “선택받은 사람들만 볼 수 있는 풍경”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산은 늘 그 자리에 있으니, 우리가 찾아가야 그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법이죠.
원주민들의 성지라 했으니, 당연히 찾아야지요.

그런데 오늘따라 햇님은 어디 가셨는지…
“햇님아~ 네가 있어야 모든 게 완성되는데! 공연도 더 빛이 나는데 말이야…”
아쉬움을 뒤로한 채 하산을 시작했습니다.

내려오는 길에 문득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풍경이라도 조명(햇님)이 없으면 감동도 반감된다는 것.
하지만 또 한편으론, 비탈길을 내려오며 강한 햇빛을 받는 것도 꽤나 고역이겠지요.
그러니 이런 날엔 햇님이 조금 늦잠 자셔도 괜찮겠다 싶습니다. ㅎㅎ
인간의 마음이란, 참 얄팍하지요.

그리고 이렇게 먼 길을 운전해 바닷가에 왔으니, 그냥 돌아가기엔 뭔가 아쉽잖아요.
그래서 귀갓길엔 Hug PointEcola State Park에도 잠시 들러 눈과 마음에 풍경을 더 담았습니다.

글. 사진 산사랑 산악회 허관택 회장

이콜라(Ecola)
Treasure c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