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를 많이 타다 보니 짐을 맡길 때마다 “최종 목적지가 어디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습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천국”이라고 말하면 그것은 정말로 그들의 마음을 흔들 것입니다.  사실, 우리 모두에게는 최종 목적지가 있으며 그 목적지는 영원입니다. 다윗의 유명한 시편 23편의 마지막 단어는 “영원히”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최종 목적지가 천국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저는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의 집에 있기를 소망합니다. 인생은 단순히 최종 목적지를 준비하는 여행입니다. 시편 23편에는 주님을 아는 우리 모두가 불확실한 미래에 직면할 때 걱정, 우울, 불안을 이기게 해 주는 놀랍도록 고무적인 세 가지 진리가 있습니다.

I. 우리는 평생 동안 선이 우리를 따른다고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항상 우리 뒤를 따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잘 될 것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그분의 유익을 위해 사용하실 것임을 의미합니다. 우리에게 어떤 나쁜 일이나 악이 닥쳐도 주님이 우리의 목자이시면 어떤 일이 일어나든 선하심이 뒤따릅니다. 로마서 8:28은 이것을 신약의 언어로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것은 목자가 양떼를 인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시편입니다. 다윗이 말하는 목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이며 예수님은 평범한 목자가 아닙니다. 요한복음 10장 11절에서 주님은 “나는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0장 38절은 “나사렛 예수는…선한 일을 행하시며…” 라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께서 33 년 동안 이 땅에 사시며 두루 다니시며 선을 행하시며 그 때에 하시던 것을 지금도 하십니다. 선한 목자는 지금도 자기 양들에게 선을 행하고 계십니다. 시편 52편 1절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말합니다.

II. 그분의 선하심이 우리를 따를 뿐만 아니라 그분의 자비하심도 우리를 따른다고 들었습니다. 자비는 은혜의 다른 면입니다. 사실 그것은 은혜의 결과입니다. 이사야 60장 10절은 “내가 내 은혜로 너희를 긍휼히 여기리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오늘 선과 자비가 모두 “우리를 따르고 있다”는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히브리어의 따르다는 문자적으로 “추구하다”를 의미합니다. 이것이 진정 말하려는 것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하나님의 자비가 우리를 뒤쫓고, 우리를 뒤따르며, 우리의 평생 동안 우리의 발꿈치에 머물러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목자의 노래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목자는 양을 몰지 않고 양을 인도합니다. 양은 앞에서 이끌어야 하기 때문에 목자는 항상 앞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목자가 항상 양과 하도록 그에게 양치기 개가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두 마리가 있었고 항상 뒤쪽을 지켰습니다. 그들의 일은 양 뒤를 따라가는 것이었는데, 양이 길을 잃거나 양이 다치거나 양이 뒤처지기 시작하면 주인을 위해 짖어 목자에게 경고하여 양을 돌보게 했습니다. 다윗은 선함과 자비가 우리 삶의 신성한 사냥개들과 같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항상 우리 뒤를 따르고 우리를 지켜보고 필요할 때 우리를 도와줍니다.

우리에게는 선하심과 자비가 모두 필요합니다. 우리의 발걸음에 선하심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넘어질 때 자비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이 우리를 공급하고 하나님의 자비가 우리를 위로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이 나를 도우시고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우리를 낫게 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이 공급하고 하나님의 자비가 용서합니다. 제가 성경에서 가장 좋아하는 구절 가운데 하나는 애가 3:22입니다.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여러분과 저에게 하나님의 자비가 필요하지 않은 날이 없기 때문에 매일 아침 그분의 자비가 새롭다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III. 히브리어 성경에서 시편 23:6은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라 (그리고)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로 쓰여 있습니다. 이 작은 단어 “그리고”가 우리의 오늘과 내일을 연결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묶습니다. 이 모든 생각은 다윗에게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다윗은 시편 27편 4절에서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과 그분의 성전을 사모하기 위함이라.” 고 말합니다.

다윗에게는 인생의 한 가지 목표가 있었습니다. 목자들은 항상 이동해야 했습니다. 양이 한 곳에서 풀을 다 먹어 치우면 그들은 전진해야 했습니다. 목자는 오랫동안 한 곳에 정착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언젠가 나는 최후의 여행을 하리라. 나는 나의 종착역에 이르러 여호와의 집에 있게 되리라.”고 고백합니다. 이제 이 목적지는 장소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시편이 “여호와”로 시작하여 “여호와”로 끝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미래에 대한 모든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어떻게 죽을지 모릅니다.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죽을지 모릅니다. 우리가 미래에 대한 사실을 알지 못하지만 미래의 최종성을 알고 있습니다.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을 최종적으로 남겨두셨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이 시편을 공부할 때 얻는 축복합니다. 그는 이 시편의 맨 처음에서 우리에게 결코 부족함이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배고플 때 그분은 우리를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목마르면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낙담할 때 그분은 우리를 일으켜 주실 것이며 항상 올바른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 때에도 그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우리를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원수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때에도 그분이 바로 우리 옆에 계시다는 것을 알고 그분의 식탁에서 고요하고 확신에 찬 식사를 할 것입니다.

백동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