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을 따로 데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가르치고 치유하러 가실 때 가장 편안하게 느낀 세 제자였습니다. 또한 가장 신뢰했던 세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주님과 함께 높은 산 정상에 오르도록 초대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은 주님께서 그들을 위해 준비하신 것을 거의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산 정상에서 특별한 모습으로 변형된 그리스도를 목격하게 됩니다. 주님이 어떤 모습으로 변화되었을까요? 우리는 정확히 모릅니다.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언젠가 모든 삶을 다스리실 영광스러운 그리스도로 변화되었다는 것입니다. 마가복음은 그리스도의 옷이 지구상의 어떤 표백제로 얻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눈부신 흰색이 되었다 고 증언합니다. 그곳에 신비롭고 거룩한 그리스도의 임재의 빛이 가득했습니다.

1. 그리고 제자들은 곧 큰 겁에 질렸습니다. 그들이 왜 겁에 질렸습니까? 그들이 본 것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체험하는 경험 밖의 일이었습니다. 그 모든 영광 속에 그리스도가 계셨습니다. 그들은 인생의 더 높은 리그를 목격했습니다. 그가 입은 하얀 가운의 신비함과 거룩함이 제자들을 압도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변화된 그분 앞에서 자신의 부족함과 불완전 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죄 없으신 주님 앞에서 죄인이었습니다. 그들이 겁에 질린 것도 당연합니다. 사실 제자들은 변화된 그리스도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볼 수 있었던 것은 “그리스도의 거룩함과 그들 자신의 무가치함 뿐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겁에 질렸습니다. 그런 다음에 대반전이 일어납니다.

2. 곧 제자들도 변화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들 또한 변화되었습니다. 아, 그들이 단번에 변화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하룻밤에 완전히 변화된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변화 산에서의 체험은 제자들에게 한 정거장에 불과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내면에서 진짜 중요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더욱 스승을 닮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서로에게 더 헌신적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겨자씨만큼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로마 제국을 뒤흔드는 강력한 믿음으로 꽃을 피울 것입니다. 그들은 변화된 그리스도의 임재의 능력으로 그들 역시 변화되는 과정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같은 일이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처럼 우리도 그리스도의 면전에서 두려워할 수 있지만, 곧 그분의 임재의 빛 가운데 우리도 역시 변화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변화가 가능합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핵심입니다.

3. 그러나 우리 신앙의 중심은 그리스도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약과 신약 경전을 소중히 여깁니다. 그러나 우리 믿음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는 알파와 오메가, 시작과 끝입니다. 그는 새 언약궤입니다. 그리스도는 창조주 하나님의 완전한 계시입니다. 그래서 변화 산 정상에 있던 세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이것이 그날의 가장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을 들어라!”

여러분은 유대인 스필버그 감독의 “레이더스”라는 영화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대학에서 고고학을 가르치는 인디아나 존스 박사는 미국 정부로부터 성서에 나오는 언약궤를 찾으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언약궤는 원래 하나님 자신의 임재를 상징했습니다. 유대인들은 구약 시대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언약궤가 우리와 함께하는 하나님의 상징이라고 믿습니다. 인디아나는 단서를 하나하나 찾아가며 언약궤의 행방을 추적해 갔습니다. 그런데 독일 나치군들도 역시 모든 전쟁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는 무서운 힘을 지닌 언약궤를 찾아 나섰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 과정에서 먼저 언약궤를 연 나치군들은 모조리 죽음을 당하고 어렵사리 언약궤를 확보한 인디아나 존스에게는 상이 주어집니다. 그리고 비밀의 언약궤는 영원히 창고 속에 파묻힙니다. 그러나 이것은 신학적으로 올바른 내용이 아닙니다. 누군가가 언약궤를 다시 찾아 설령 그것을 연다 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원래 언약궤는 하나님의 백성과 맺은 옛 언약의 상징이었고 또한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했습니다. 지금은 예수님이 새 언약의 새 언약궤입니다. 우리는 이 새로운 언약궤를 숭배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의 아들 안에서 그의 능력과 임재를 주셨습니다.

변화 산 이야기가 어떻게 끝나는지 여러분은 잘 아실 것입니다. 베드로는, “하나는 그리스도를 위해, 하나는 모세를 위해, 하나는 엘리야를 위해” 세 개의 초막을 짓고 그 산에 머물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산에 머물면서 신앙에 취해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명이 아닙니다. 그의 사역은 산 아래 사람들에 대한 사랑의 사역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사역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산 아래로 내려가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 모두는 실현되지 않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늘의 상속권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왔을 때 우리는 엄청난 잠재력과 함께 왔습니다. 어느 젊은이가 초라한 자전거를 타고 캠퍼스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는 티셔츠를 입고 있었습니다. 그 셔츠에 “나는 뛰어난 의사가 될 거야!”라고 써 있었습니다. 그가 탄 자전거 뒤쪽에도 표지판이 달려 있었습니다. “나는 메르세데스 벤츠가 될 거야!” 그는 자신의 잠재력을 이해한 청년이었습니다. 산 정상에서 변형된 그리스도를 본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더 이상 작은 어항에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더 크고 더 넓은 바다로 부르셨습니다. 이제 그들은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기회를 맞게 됩니다. 그리고 그 변형된 그리스도가 지금 이 자리에 계십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에게 말씀합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변화하라! 그리고 나의 임재의 빛 아래 너의 모든 잠재력을 사용하라!”

백동인 목사 ㅣ주유럽 선교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