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사람들로 가득 찬 방 안에서 강제로 옷을 벗은 경험이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실제로 2007 년부터 전신 스캐너는 많은 국가의 공항과 기차역에서 금속 탐지기를 보완하기 시작했습니다. 전신 스캔은 옷을 전혀 벗기지 않고 우리 신체의 모든 것을 한 눈에 들여야 봅니다. 그것을 위해 사람들은 지저분한 공항 바닥에 맨발로 스캔을 통과해야 하는 불편을 겪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랜덤으로 분류되어 관통 X- 레이 보안 스캐너를 통과하기도 합니다. 이 전신 스캐너를 사용하면 뱃속의 마약 배달원이 운반하는 약물이나 충치에 숨겨진 물체도 감지해 낸다고 합니다. 이 때 소량의 X 선 방사선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X선 전자기파로 불리는 이 빛의 강도와 파장은 우리 몸의 어떤 것도 다 드러냅니다. 그런데 오늘 바울이 본문에서 말하는 것은 다른 종류의 빛의 강도와 파장입니다. 이것도 일종의 전신 스캔입니다. 그러나 이 경우는 신체의 전신 스캔이 아니라 영혼을 스캔한다는 점이 다릅니다.

우리의 영혼을 살피는 빛은 X선 전자기파가 아니라 완전히 다른 빛입니다. 그 빛은 다메섹 로드에서 한낮에 사울의 눈을 멀게 했던, 정오의 태양빛보다도 강렬한 빛입니다. 이 그리스도의 빛이 비추면 사람의 모든 것이 다 드러납니다.

뉴욕 타임즈 편집장이었던 로젠탈은 이 나라의 마약 중독 문제에 대한 칼럼을 썼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칼럼을 시작했습니다. “익숙한 악몽입니다. 우리 모두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차가 당신이 아는 누군가를 향해 달려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비켜요, 비켜!” 라고 외칩니다. 하지만 그는 움직이지 않았고 기차가 그를 향해 달려들 때 당신은 땀을 흘리며 깨어납니다.”

그런 다음 그는 다음과 같은 극적인 말을 덧붙입니다. “마약 열차가 오고 있지만 열차 트랙에 서있는 사람들이 거의 휘파람 소리를 듣지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로젠탈은 확실히 이곳의 가장 큰 문제를 짚고 있습니다. 이 나라에서 마약과 알코올 중독자들의 증가와 그들이 야기하는 문제들은 범죄, 가정 폭력, 삶의 낭비 등 달려드는 기차만큼 치명적입니다. 우리 가운데 이 전투를 벌이고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벌어지는 악몽을 꾸며 놀라 잠에서 깨어났을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영적인 모닝콜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우리는 가족과 자녀를 위해 무엇을 했습니까? 세상에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와 우리 공동체를 위해 무엇을 했습니까? 사도 바울도 그 같은 위기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가 쓴 것을 들어보십시오. (롬13:11-14)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음이니라!”

바울 시대의 로마와 우리 시대는 놀라운 정도로 닮은 꼴입니다. 그때 사람과 지금 사람이 하나도 다르지 않습니다. 누군가 수시로 경보를 울리지 않는 한, 우리 모두는 달려오는 기차를 인식하지 못합니다. 바울은 파괴적인 쾌락의 바람이 불어올 때 자명종 알림 소리를 끄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우리가 가끔 하는 일이 아닙니까? 우리는 때로 아침을 맞이할 준비가 되지 못해 다시 알림 버튼을 꺼버립니다. USA Today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1/3 이상이 매일 아침 평균 자명종을 세 번 누르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25 ~ 34 세의 57 %가 매일 침대에 누운 채로 자명종 버튼을 꺼버립니다. 65 세 이상의 미국인 중 단 10 %만이 정기적으로 자명종 소리를 듣고 일어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드디어 깨달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확실히 우리 사회를 보다 건강하고 건전한 사회로 만들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자리에서 깨어나 스스로에게 물어볼 때입니다. 가족이 건강하고 사회가 건강해서 모두의 존엄성이 인정되는 사회, 그리스도의 사랑이 모든 사람의 마음에 거하는 세상, 그것이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는 보통 이 본문을 부정적인 방식으로 이해합니다. 세상과 자신의 삶에 깊숙이 자리잡은 죄의 존재를 깨달으라는 메시지 만으로 이해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본문에서 이 세상에 대한 구원이 임박했다는 메시지를 들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다음가 같은 말로 시작한 것을 주목해 보십시오.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13:11-12)

여기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다는 바울의 강조점은 전혀 부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어두운 세상으로 빛이 들어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위해 세상을 준비시킨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을 위해 준비하는 열쇠는, 구원받은 우리 각 개인이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밤이 떠난다는 것입니다. 그날이 거의 다 왔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준비를 계속 하라는 것입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위기와 변화 가운데서도 목표에 흔들림이 없다는 점을 주목해야합니다. 목표 설정은 삶에 목적이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녀나 배우자가 응급실에 실려갔다는 전화를 받을 때까지 승진할 생각에 빠져 있습니다. 위급한 시간에는 삶의 우선 순위가 정말 빨리 정리됩니다. 그게 바울에게 일어난 일입니다. 더 많은 예수의 추종자들을 체포하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사울은 하늘의 섬광에 눈이 멀었습니다. 그리고 극도로 무기력한 상태에서 그곳에서 사흘을 보내는 동안 자신이 살아온 목적에 대해 극도의 회의에 빠져들었습니다.

바울은 3 일 동안 실명한 후 아나니아라는 예수님의 제자로부터 안수를 받고 다시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바울의 삶에 대한 이전 목표는 쓰레기처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새로운 목표를 다음과 같이 요약합니다. “(나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부르신 그 부르심의 상을 받으려고, 목표점을 바라보고 달려가고 있다.” (빌3:14) 저와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소망을 드러내는 선한 일을 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이제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면서 우리의 참된 성취를 이룩할 수 있습니다. 이것 외에 다른 어떤 목표도 저와 여러분의 삶을 만족시킬 없습니다.

백동인 목사ㅣ갈보리장로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