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은 돌연히 예루살렘을 향해 단호하게 얼굴을 내미십니다. 자신이 체포와 고문과 십자가형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오직 자신뿐입니다. 이것이 그의 지상 사명의 끝이 될 것이라는 사실은 오직 그만이 아십니다. 그래서 그의 추종자들과 제자들에게 횃불을 넘겨주어 그들이 그의 메시지를 전하고 그의 사명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들 중 70인을 임명하고 그가 가시려는 모든 성읍과 모든 곳으로 앞서 보내십니다. 그리고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고 하십니다. 제자들은 깨닫지 못하지만 이것은 예수님의 여정에서 결정적인 순간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공식적으로 그분의 사도가 되는 순간입니다. 예수님이 두 사람씩 보내셨다고 하는데 문자 그대로 그들은 세상에 “사도”로 보냄을 받습니다.

제자와 사도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제자는 단순히 학생이거나 교사의 헌신적인 추종자입니다. 반면에 사도는 “보냄을 받은 사람”을 의미합니다.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지혜와 겸손이 필요합니다. 거기에 힘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평생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나가서 예수님의 메시지와 사역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기 전에는 사도가 아닙니다. 우리가 매주 교회에 앉아 있는데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자비와 정의와 진리의 행위를 위해 준비되고 있다고 느끼지 않는다면, 그리고 예배 드리고 성경공부를 하면서도 교회 밖으로 나가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필요한 사람을 찾지 않는다면, 우리는 제자일수는 있어도 사도는 아닙니다. 그럼 우리 안에 있는 살아 계신 그리스도의 영의 권능과 권세와 비전과 임재를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가르침에 따르면, 사도로서의 부름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기본 단계가 있습니다.

1. 사도의 첫 번째 소명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추수하는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달라고 간구하라.” (눅10:2) 신약성경에서 “기도”에 대해 다섯 가지 헬라어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각각은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서 다른 접근 방식을 나타냅니다. 여기에 사용된 “추수하는 주인에게 간구하라.”에서 “간구하라”는 헬라어 데오마이입니다. 구걸하거나 간청하는 행위를 언급하기 위해 신약에서 사용되었습니다.

누가복음 5장 12절에 보면, 한 나병환자가 예수님 앞에 엎드려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라고 간구합니다. 누가복음 8장에서 귀신 들린 사람이 예수님께 자신을 괴롭히지 말아 달라고 간청합니다. 예수께서 그를 고쳐 주신 후, 그는 예수님을 따르게 해 달라고 주님께 간청합니다. 누가복음 9장에서 아버지는 병든 아들을 고쳐달라고 예수님께 간청합니다. 이 구절들 각각에서 사용된 단어는 데오마이였습니다. 절망이나 상한 마음으로 기도해 보셨습니까? 그렇다면 더마이의 개념을 이해하고 계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예수님의 메시지를 들어야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때 예수님께서 우리가 가지기를 원하시는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위하여 애원하고 그들을 위하여 간청하며 그들을 위하여 마음을 찢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부모가 병든 자녀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듯이 그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할 수 있을 만큼 그들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종류의 사랑과 기도가 있을 때 우리가 그들을 향해 갈 수 있도록 동기를 준다는 것입니다.

2. 사도의 다음 부르심은, 가서 화평을 베풀고 병자를 고치라는 부르심입니다. 누가복음10: 5에서 우리는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찌어다 하라.”는 말씀을 읽습니다.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자신의 영, 곧 평화의 영으로 가라고 아주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항상 평화의 영으로 가는 것은 아닙니다. 만일 우리가 그랬더라면 그리스도의 왕국이 하늘에서 와 마찬가지로 땅에도 이미 임했을 것입니다. 또한 누가복음 10:9에서 우리는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고 읽습니다. 치유와 하나님의 나라 선포 역시 그리스도의 사역의 핵심이었습니다.

우리는 교회의 안락함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성취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문 안에서 우리는 제자로 성장합니다. 이 문 밖을 향해 우리는 사도로 나갑니다. 할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은 주 예수님의 영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도로서 우리의 첫 번째 소명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그 다음 사명은 가서 화평을 베풀고 병자를 고치는 것입니다.

3. 그리고 사도로서 우리의 마지막이자 가장 중요한 소명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앞으로 하나님이 온 세상을 다스리실 때와 같은 세상입니다. 그것은 정의의 왕국과 충만한 평화의 세상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을 때, 바로 그분이 말씀하신 세상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누군가가 이 기도를 했고 누군가가 이 기도에 응답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 있습니다. 70명의 성도가 기도하고 가서 화평과 병 고침을 드리며 하나님 나라의 임함을 전파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과 권세를 받아 말씀과 사역을 온 땅에 전파한 결과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있습니다. 그러나 사명은 완료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을 그의 사도로 부르고 계십니다. 이 교회 문을 나서실 때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그 날까지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는 세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교와 메시지에 동참하시기를 바랍니다.

백동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