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가족에 대해 많은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우리가 집을 짓고 있지만 가정을 짓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집을 지을 수 있는 사람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가정은 오직 주님만이 지으실 수 있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역사상 가장 지혜로운 사람인 솔로몬은 시편에서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다” 라고 썼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없이 가정을 짓는 것은 허리케인 가운데 모래성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솔로몬이 이런 말을 썼다는 것은 아이러니합니다. 솔로몬은 자기 가족을 제외한 모든 일에서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교훈을 어렵게 배웠습니다. 그는 우리가 우리의 교훈을 쉽게 배울 수 있도록 이 말을 씁니다. 우리는 가족에 대한 하나님의 비전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승리하면 교회에서도 승리합니다. 교회에서 승리하면 도시에서도 승리할 것입니다. 도시에서 승리하면 국가에서도 승리합니다. 국가에서 승리하면 국가에서도 승리합니다.

1. 오직 주님만이 경건한 가족을 시작하실 수 있습니다. 시편 127편과 128편이 함께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것은 실제로 가족에 대한 두 부분으로 된 설명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가족이 통과해야 할 네 가지 주요 단계를 다룹니다. 마치 처음부터 끝까지 가족의 발전 단계를 보는 것 같습니다. 1단계: 결혼에서 첫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초기의 가족을 봅니다. (시 127:1-2) 2단계: 가족은 자녀의 출생을 포함하도록 확장됩니다. (시 127:3-5) 3단계: 가족은 자녀를 훈련하고, 사랑하고, 훈육하고, 풀어주는 수년간을 거칩니다. (시 128:1-3) 4단계: 가족은 남편과 아내가 함께 보낼 마지막 몇 년 동안의 원래 상태로 돌아갑니다. (시 128:4-6)

솔로몬은 매우 극단적인 진술을 합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다” 여기 헛되다는 말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먼저, 낭비를 의미할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비어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가족에 적용하면, 결혼 생활의 처음 몇 달과 몇 년 동안 주 하나님이 그 결혼의 중심과 중심에 계시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계시지 않으시면 우리의 가족이 헛되이 사용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낭비되고 공허하며 비생산적인 노력으로 낭비할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헛될 것입니다. 그가 여기서 가족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는 벽에 많은 모토를 붙이거나, 그냥 교회에 집을 짓거나, 식사 전에 간단한 기도를 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실제로 그 가족의 주인인 곳을 의미합니다. 127편의 “헛되다”라는 단어는 또한 잘못된 것을 의미합니다.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제3계명에서 사용한 “망령되이 일컫다”라는 단어와 같은 말입니다. (출애굽기 20:7)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방법에는 옳고 그름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집을 시작하는 올바른 방법이 있고 집을 시작하는 잘못된 방법이 있습니다. 가족이 다른 무엇을 하든 예수 그리스도가 가족의 중심에 있지 않다면 그 가족은 잘못된 길을 걷게 된다는 것입니다.

2. 주님만이 경건한 가족을 건설하실 수 있습니다. “건축”이라는 단어는 아름다운 히브리어 단어입니다. 창세기 2장 22절의 “여호와 하나님이 남자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사”에서 “만드사”와 같은 단어입니다. made라는 단어는 문자 그대로 “건축”에 대한 단어입니다. 아담과 하와를 연합하여 하나가 되게 하실 때 에덴동산에 첫 가족을 지으신 분은 주님이셨습니다. 우리의 미래의 집을 짓고 계신 분은 주님이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우리의 믿음의 집인 교회를 세우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우리는 우리 가족을 시작하기 위해 주님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가정을 짓기 위해 주님이 필요합니다.

집과 가정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집을 지으려면 돈이 필요합니다. 가정을 짓는 데 한 푼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집에는 많은 것이 있지만 가정에는 주님이 계십니다. 집은 우리가 사는 곳이고 가정은 우리가 사랑하는 곳입니다. 집은 목수가 지었고 가정은 그리스도께서 지으셨습니다. 집은 장소에 고정되고 가정은 사람에게 고정됩니다. 집은 밖에서 보는 것이고 가정은 안에서 보는 것입니다. 가정은 주님에게서 빛을 받고 거룩함으로 뜨겁습니다. 그것은 어떤 폭풍도 이겨내는 유형입니다. 어떤 불로도 태울 수 없습니다. 어떤 폭풍도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어떤 흰개미도 삼킬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영원히 지속됩니다. 유진 피터슨은 시편 127:1을 다음과 같이 번역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짓지 아니하시면 건축하는 자가 판잣집을 지을 뿐이다.” 문제는 집이 지어질 것인가가 아닙니다. 문제는 “가족이 지어질 것인가?” 입니다. 그리고 주님만이 가족을 지으실 수 있습니다.

3. 주님만이 경건한 가족을 축복하실 수 있습니다. 솔로몬이 시편 127:4-5에서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라고 언급한 것이 무척 흥미롭습니다. 화살은 두 가지 목적을 충족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쓸모가 없습니다. 우선 올바른 방향으로 쏴야 합니다. 둘째, 정확한 목표에 도달해야 합니다. 화살에 해당하는 것은 어린이에게도 해당됩니다. 아이들은 예수님의 방향으로 향해야 하고 목표는 천국이어야 합니다. 과녁은 영생인데 영생은 예수만이 줄 수 있는 축복입니다. 그래서 오직 주님만이 경건한 가족을 축복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재산을 하늘로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집을 하늘로 가져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은행 계좌를 가지고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자동차, 주식, 채권 또는 부동산을 가지고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가족과 함께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가족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은 영생의 축복입니다.

백동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