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는 이전 삶에서 해방되어야 합니다. 기독교 세례의 물은 하나님의 모든 자녀가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러 갈릴리에서 요단강으로 내려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새로운 시작을 하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세례 의식을 통해 예수님은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세례를 그의 사역을 준비하는 데 사용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더 이상 작업실에서 가구를 만들지 않고 이제부터 모든 인류를 위한 미래를 건설하려 하십니다. 우리가 누구이든, 우리가 믿음의 여정에서 어디에 있든 이것은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우리 또한 새로운 시작이 가능합니다. 오늘은 정말 남은 인생의 첫날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방향을 계획하고,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해서 하나님께서 부르신 사람이 되려고 결심할 수 있습니다. 오늘 꿈을 쫓는 우리 삶에 예수님의 모범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 예수님의 겸손을 주목하십시오. 우리는 보통 겸손과 우리 꿈을 연관시키지 않습니다. 그러나 겸손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께 사촌이 있었습니다. 그는 기성 교회에 속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강가에서 예배를 드리고 야외 세례를 하는 엉성한 전도사였습니다. 그의 비정통적인 방식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분명히 그의 사촌 요한을 존경했습니다. 나중에 예수님은 세례 요한보다 더 나은 사람은 없다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러 가신 이유를 모릅니다. 우리는 그것이 그가 자신의 죄를 씻어야 했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예수님은 세례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는 것을 친히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을 멘토로 여기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이 하고 있는 일에 감사를 표현하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신 겸손을 생각해보십시오. 요한은 그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왜요, 저는 주님의 신발 끈을 풀 자격도 없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만일 저와 여러분의 마음에 하나님께서 부르시기를 기다리는 꿈이 있다면,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겸손하게 시작하십시오.

2. 또한 예수님의 긴급함을 주목하십시오. 예수님이 봉사의 직무를 시작하기로 결정하신 후에는 머뭇거리지 않으셨습니다. 신약성경의 모든 페이지는 그의 세례로부터 광야에서의 시험과 예수님의 사역의 시작으로 신속하게 이동합니다. 주님은 결정이 내려지기 무섭게 면 곧바로 행동으로 옮기셨습니다.

마이클 디베키는 현대 의학에서 가장 유명한 이름 가운데 하나입니다. 존경받는 심장 외과 의사인 디베키는 인공 심장이식을 시행한 최초의 사람이었습니다. 의료 기술은 끊임없이 사용되어야 해서 시간을 낭비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의사 디베키는 이 기준을 병원의 엄격한 정책으로 시행했습니다. 엘리베이터로 한 층을 오르거나 내려가기 위해 기다리다가 적발되면 즉시 해고되었습니다. 디베키 박사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특히 한 층만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경우에는 더욱 그랬습니다. 엘리베이터가 얼마나 걸릴지 누가 압니까? 그런 식으로 낭비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심장 수술 분야에서 몇 초는 누군가의 삶과 죽음을 의미할 수 있었습니다. 기다리는 것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나라에 온 많은 이민자 가족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이유는 무엇입니까?  한 가지 이유는 긴박감입니다. 그들은 실패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들을 붙잡아줄 안전망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의지할 수 있는 사회적 연결망도 없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오직 자신만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삶에 대해 긴박감을 느끼셨습니다.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강에서 나올 때부터 그의 얼굴은 예루살렘 선교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3. 그 다음에 예수님은 뒤를 돌아보지 않으셨습니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예수님은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나사렛 목공소에서의 고요한 날은 잠시 지나는 길에 불과했습니다. 공개적인 굴욕, 투옥, 심지어 십자가에서의 죽음의 위협도 주님을 억누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계획을 향해 긴박하게 움직이셨고 마침내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셨습니다.

어느 날 알리스테어 베그 목사가 런던의 노숙자 보호소에서 부흥 예배를 설교했습니다. 베그는 경험 많은 설교자가 아니었고, 남자들은 그의 설교에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동료인 메리 피셔라는 젊은 여성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을 때 노숙자들은 경건한 침묵에 빠졌습니다. 마리아의 진심 어린 믿음이 그의 찬송을 통해 빛났습니다. 몇 년 후 메리는 선교사로 봉사하기 위해 짐바브웨로 이사했습니다. 1978년, 런던 신문은 짐바브웨의 한 선교학교에 대한 반군 공격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보도했습니다. 남자, 여자, 어린이들이 고문을 당하고 죽임을 당했습니다. 사망자 중에는 젊은 메리 피셔도 있었습니다. 메리의 소유물 중에 메리가 젊은 아프리카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준비한 찬송가 테이프가 발견되었습니다.​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 그의 손을 잡고 그의 좁은 길을 걷기 위해 / 화평도 기쁨도 전율도 없이/ 그의 뜻대로 행하는 것 같으니라 /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하니라” 특별한 대가를 치르지 않고 이루는 꿈은 거의 없습니다. 자신의 삶에서 그것을 발견한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잠 못 이루는 시간, 끝없는 스트레스, 자기 회의 및 실패, 끊임없는 희생 없이 어떻게 세상의 꿈을 이루기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새해, 새로운 시작입니다. 겸손과 절박함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두신 고귀한 꿈이 무엇이든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으로 새해를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백동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