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는 대단히 의욕적인 구약 성경의 한 젊은이를 다루려고 합니다. 그의 이름은 예레미야였습니다. 예레미야는 벤야민 땅 아나돗(Ananthoth)의 제사장이었던 아비아달의 후손입니다. 아비아달은 다윗왕 때 대제사장이었으나 다윗 이후의 왕위 승계 과정에서 솔로몬을 지지하지 않는 바람에 그 다음의 솔로몬 왕이 그를 축출해서 그의 고향 아나돗으로 유배시킨 바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다윗 왕가에 의해서 성전에서 축출된 대제사장가문의 후손이었습니다.

이 같은 배경에서 자란 예레미야는 자신이 거세된 대제사장 가문 출신이라는 데서 지독한 열등감을 겪습니다. 그 같은 그의 삶에 동기부여가 절실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예언자로 부르셨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때 예레미야는 10 대에 불과했던 청소년이었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얼마나 당황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 부르셨을 때 그는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항의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손을 예레미야의 입에 대시고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고 하시면서 그가 “열방의 예언자”가 된 것을 선언하셨습니다.

이쯤 되면 예레미야가 걷는 길이 탄탄대로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예레미야의 사역이 잘 풀리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의 예언을 거부하고 그를 조롱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상처받은 예언자”로 불렀습니다. 그는 조롱을 당하고 감옥에 갇히고 심지어 구덩이에 던져져 죽을 뻔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느끼는 분노와 좌절감을 글로 표현했습니다. 어떤 신학자들은 예레미야가 그의 예언에 분노한 사람들에 의해 이집트에서 살해당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죽을 때까지 그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역을 계속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시간이 지나며 예레미야의 예언이 옳은 것으로 판명되었지만 그것은 그에게 전혀 위로가 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를 비판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끝까지 그를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예언자는 자신의 백성을 향해서 그들이 엄청난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선포하는데 부담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그것이 친구를 사귀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번영의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부자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모든 면에서 축복하실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레미야에게 결코 올바른 예언이 아니었습니다.

예레미야는 그가 받은 사역과 사명에 충실했습니다. 오늘날 그는 지금까지 살았던 가장 진정한 하나님의 사자 중 한 명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의 예언이 당대에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했을 때에도 그가 그토록 열정적으로 일에 매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 가운데서도 가족을 부양하고,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지역 사회를 위해 봉사하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알아주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그같은 때에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그 일을 위해서 계속 노력하고 계속 섬길 수 있는 동기를 어디서 찾을 수 있습니까?

1. 예레미야는 강한 하나님의 임재 의식을 가졌습니다.

예레미야는 그의 삶에서 하나님의 강한 임재를 의식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우리가 예레미야만큼 세련되지는 않지만 각자 나름의 하나님의 임재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믿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 하나님 의식을 애써 무시하려고 합니다. 어떤 분들은 그들이 조금 더 잘 살 때가지만 하나님을 의식합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강력한 초월적 의식을 가졌습니다. 그는 자신이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님의 예언자자로 선택되었다고 믿었습니다.

2. 예레미야는 자신이 구별된 존재라는 것을 알고있었습니다.

이 말씀을 들어보세요.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여기 ‘구별’하였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우리 사회는 점차 기독교 가치에 대해 적대적이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이 흐름에 기꺼이 ‘구별’되는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물질주의와 세속주의의 가치에 맞서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회를 발전시키고 섬기려는 다른 유형의 구별된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에 대해 매우 강한 의식을 가지고있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자신이 하나님에 의해서 구별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3. 예레미야는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살았습니다.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사람들은 왜(why?)라는 질문을 합니다. 이에 대한 해답을 얻었을 때 사람들은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자신의 인생이 자신에 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라고 묻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시자 그는, “내가 여기 있나이다!” 라고 외칩니다.

예수께서는 겁에 질린 시몬 베드로에게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고 말씀 하시자 마자 그는 즉시 주님을 따라갑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가 살아 계신 하나님과 만날 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만남입니다. 그것이 바로 목적이 있는 삶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예레미야처럼 하나님을 위해 기꺼이 이웃과 세상을 섬기려는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게 됨으로써 삶의 목적을 발견합니다.

백동인목사ㅣ갈보리장로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