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 나사렛 예수의 죽음의 의미를 되새기는 뜻깊은 날에,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줍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고후5:20) 그리고 몇 구절 뒤에 이렇게 썼습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고후6:2) 그가 긴급하게 우리를 부르는 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우리 인생이 너무 짧다는 것입니다. 반체제 혐의로 체포된 한 청년이 광장에 마련된 사형집행장 위에 섰습니다. 2. 집행관이 그에게 소리칩니다. “마지막으로5분을 주겠다.” 단 5분이란 말에 사형수는 절망했습니다. 그는 마지막 남은 5분 동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그 짧은 시간에 그는 가족과 동료들을 생각하며 기도했습니다. 집행관은 2分이 지났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그에게 후회할 시간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그 불꽃 같은 순간에게 그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은 찰나의 순간 만이라도 더 사는 것이었습니다. 마침내 집행관이 마지막 1分이 남았다고 소리쳤습니다. 사형수에게 두려움에 떨 시간조차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사형수는 처음으로 삶의 소중함을 깨닫고 눈물을 흘립니다.

“자, 이제 사형을 집행한다!” 그는 삶의 소중함을 초 단위로 세고 있었습니다. “살고 싶다, 살고 싶다. 조금만이라도 더 ….” ‘철컥’ 탄환을 장전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소망은 정지되었습니다. 바로 그때 “형 집행을 멈추라!”는 긴급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한 병사가 흰 수건을 흔들며 형장으로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황제의 긴급한 전갈이었습니다. 사형 대신 유배를 보내라는 것입니다. 이윽고 사형은 멈췄고 사형수는 죽음의 문턱에서 삶으로 돌아왔습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그날 밤 사형수는 동생에게 편지를 씁니다. “실수와 게으름으로 보낸 지난 날들을 생각하니 심장이 피를 토하는 것 같다!” 3. 그리고 이후 그가 시베리아에서 보낸 4年의 유배생활은 그의 삶에서 가장 값진 순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작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이야기입니다. 누군가는 우리가 나이가 들면서 시간이 점점 빨라지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누군가 5 살이면 1 년이 긴 시간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 이유는 1 년이 그가 지구에서 보낸 시간의 5 분의 1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70 세가 되면 그 1 년은 인생의 70 분의 1입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인생의 속도가 빨라진다는 것입니다.

2. 우리의 연약한 본성 때문입니다. 우리는 습관의 피조물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변화하는 것이 더 어려워집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좋은 의도로 포장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을지라도 바로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결코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본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지금이, 바로 오늘이 구원의 날이다!”고 쓴 것입니다.

3. 세상이 우리를 절실히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코로나 확산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 치명적인 감염병으로 인해 생겨난 인명 손실에 대해 생각해보십시오. 암울한 경제와 실직을 생각해보십시오. 실패한 사업을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세상에는 너무나 문제가 많습니다. 그래서 도움이 필요합니다. . . 지금!

바울은 생애 마지막에 로마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리고 죽음을 앞둔 최후의 변론에서 로마의 상류층에 복음의 메시지를 전할 기회를 얻었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 복음과의 접촉 기회가 전혀 없었던 로마의 지도적 인물들이 아무런 방해 없이 바울의 복음을 경청했습니다. 그는 이것을 분명히 했습니다. “모든 이방 사람이 그것을 들을 수 있게 하시려는 것이다.” (딤후4:17) 여기 “이방 사람” (Gentiles) 이란 단어는 그리스어로 “열방”을 의미합니다.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은 모든 지파, 모든 언어, 모든 민족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얻도록 우리의 입과 지식을 사용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마지막 진술에서, “영원토록 영원토록 아멘!” (딤후4:18, KJV 역)이라고 외치며 감격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로마 법정에 선 목적을 이루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목적은 하나님의 복음이 전파되고, 하나님의 은혜가 경험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DHL 인터내셔널을 너무나 잘 아실 것입니다. 택배 특급 배송 서비스. 그러나 이 서비스는 DHL이 최초가 아닙니다. 특급 배송 서비스는 16세기 초 영국의 헨리 8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에는 DHL이 아니라, 우선 취급 우편 (posthaste)으로 불렸습니다. 우체국장은 영국의 중요한 도시에 왕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각 장소에 말과 배달원을 배치하고 릴레이를 시켰습니다. 그러나 어떤 배달원은 무책임한 행동을 했습니다. 제 시간에 출발하지 않고 여관에 누워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모든 배달원은 생명을 걸고 신속히 전달해야 한다!”는 칙령이 시행되었습니다. 그의 메시지를 미루다 적발되면 공개적으로 교수형에 처해졌습니다. 종종 중요한 편지에는 교수대에 매달린 남자의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그 아래에는 다음과 같은 불길한 경고가 쓰여 있었습니다. “당신의 길을 서두르세요!” 실제로 19세기에 시행이 중단되기까지 많은 배달원들이 교수형에 처해졌습니다. 바울은, 지금이 하나님의 은혜의 때이고 지금이 구원의 날이라고 썼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구절에서 긴박감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을 상기시켜줍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빚을 갚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아직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의 큰 사랑을 알게 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황급히….

백동인목사ㅣ주 유럽 선교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