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목ㅣ오레곤6.25참전국가유공자회 회장-

금년은 한반도 역사상 최대참극인 6.25전쟁이 발발한지 65돌이 되는 해이다.

65년이란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우리들 참전 노병들에게는 잊지못할 수많은 상처와 사연들이 아직도 머리와 가슴속에 새겨져 남아있다.

필자는 오늘 그 사연중 한편을 독자들에게 소개하고저한다.  때는 1951년 8월 하순에서 9월초반이였고 장소는 강원도 김화/철원지구의 철의 삼각지에 위치한 요충지735(m)고지이다. 이 고지는 김일성고지로도 불리웠고 국군과 중공군간에 뺐고 빼았기는 치열한 공방전이 수차례 감행됐으며  8월하순 에는 국군 보병제2사단, 32연대, 2대대, 7중대가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제7중대장 김영국중위는 필자와 전시 장교양성소였던 육군종합학교 9기 동기생으로 1950년 12월에 그는 보병소위로, 필자는 포병소위로 임관되어 각기 해당부대로 부임하게됐다. 마침 필자가 속해있던 포병제18대대가 제2사단 지원임무를 맡게되고 1951년 8월하순에는 필자가 735고지를 방어하고있던 김영국 중대장을 직접지원하는 포병연락및 관측장교로 735고지 바로 후방의 2대대OP고지에 파견됨으로  우리 두사람의 끊지못할 인연이 맺어지게됐다. 우리가 평소에 만나면 그는 필자에게 말버릇처럼 유사시 최대한의 포지원을 해달라고 당부했었고 필자도 그 요청을 쾌히 수용했었다. 필자는 이렇게 2대대 OP에서 만일에 대비해서2대대장은 물론 김영국 중대장과도 긴밀한 연락망을 구성하고 있었다.

1951년 9월1일, 해가 저물자 대치중이던 중공군 1개연대 병력이 드디어 735고지를 탈환 목적으로 일제히 총공격을 가해왔다. 중공군 1개연대는 735고지를 방어하고있던 국군 7중대의 근 10배에가까운 병력이니 이 전투야말로  전형적인 인해전술작전 바로 그것이였다.

수 적으로 절대 우세하고 야간전투에 능한 중공군은 자정이 지나도록 계속된 치열한 격전끝에 고지정상에 접근하게됐다. 이 야간전투에는 공군지원도 없었고 고지 넘어에서 공격해오는 적군에게는 포사격도 큰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전세는 점차 아군에 불리해졌으나  2대대장은 김영국 중대장에게 사수 명령을 내렸다. 얼마후 김영국 중대장은 무전통신으로 적군이 고지 정상에까지 침투했음을 2대대장에게 보고함과 동시에 필자에게는 자신의 생사와 아군의 피해에 개의치말고 735고지 정상을 향해 일제포사격을 해달라는 처절한 “전우의 마지막 한마디”를 남기고 적진에 돌진, 장열히 전사했다.

얼마후 735고지는 적의 수중에 들어갔고 그 치열했던 총격전과 백병전이  완전히 멈췄다. 이때의 그 이상 야릇한 “고요함”, 폭풍우가 지나간후의 정적

(靜寂)에 비유할까, 필자는 온몸이 오싹해지며 소름마져 끼치는  느낌에 한동안 넋을잃고 말았다.

제2사단장 함병선준장은 9월2일 미명을기해  예비부대를 동원해서 735

고지 탈환전을 전개했다. 먼저 미군 함재기의 고지 폭격에 이어 주변 한미 양군의 포격이 있은후 보병예비부대의 총공격으로 735고지 재탈환에 성공은 했으나  7중대원 태반은 이미 희생된 후였다.

이후 김영국 중대장에게는 그의 용맹성이 인정되어 한미대통령과 미8군 사령관의 표창장, 한미 무공훈장, 일계급 특진등 명예로운 보상이 수여 됐으며 육군전사에 호국영웅의 한사람으로 추대되었다. 김영국 중대장 이야말로 안중근의사 휘호의 한구절인 “爲國獻身 軍人本分” (위국헌신 군인본분)의 표본인물로 볼수있겠다.

735고지는 일명 734고지로도 기록되어있다. 이유인즉 지속된 폭격과 포격으로 1m가 낮아져서 734고지가 됐다고한다. 인터넷에 들어가서 “735 또는 734고지”를 찍으면 필자가쓴 735고지 공방전 수기를 비롯해서 여러 기록을 볼수있다. 필자는 일전에 당시 7중대원이였고 생존자 6명중의 한사람의 생생한 수기를 읽은적이있다. 수소문끝에 이 산 증인을 찾았으며 현재 서로 이메일 왕래를 하고있다. 이분은 죽음의 문턱 에서 살아남은 이한설 원로 목사로 현재 인천에 거주하고 계시다.

필자는 김영국 중대장이 나에게 남긴 “마지막 한마디”를 아직도 잊지못하고 있으며 가수 허성희가 부른 군가 “전우가 남긴 한마디”를 자주 듣고 부르고 있다. KBS 가요무대 김동건 사회자에게 6월 신청곡으로 이노래를 부탁 했는데 과연 필자의 요청을 들어줄지 의문이다.

1950년 6월25일 시작된 6.25전쟁은  약 3년 1개월후인 1953년 7월27일 그당시의 전선을 경계로 전투상황을 일단 중지하는 정협정을 체결했다. 그러나 62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전쟁 자체가 종결 되지 않은체 대치상황은 계속되고있다.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민족 의 운명이요 비극이라고 할까?  필자가  마지막으로 후세에게 남기고 싶은 한마디는 국민 모두가 65년전의 그 처참하고 쓰라린 우리들의경험을 상기하면서 굳건한 국방력과 국민각자의 확고한 국가와 안보관념으로 제2의 6.25 전쟁발발을 사전에 막아내야 한다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