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재해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매년 평균 60,000 명이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2017년 북대서양에서 발생한 허리케인 하비가 시속 130 마일의 강속으로 걸프만 해안을 강타했을 때 4 일 동안 40 인치가 넘는 비가 쏟아졌고 지역 전체가 수몰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수천 명의 사람들의 집과 사업체가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지금의 코로나 상황도 그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저주 온라인 예배로 모이고 있습니다. 이제 마음을 가다듬고 다음 구절을 기억해야합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다.” (마18:20)

코로나 시대에 우리가 어디에서 예수님께 구할 수 있습니까? 부부가 침대 옆에서 함께 무릎을 꿇고 기도할 때 예수님은 그곳에 계십니다. 가족이 저녁 식탁에서 고개를 숙이고 감사할 때 그분이 거기 계십니다. 목회자가 병원의 침대 옆에서 기도할 때 그분은 그곳에 계십니다. 폭풍이 우리 공동체를 파괴하지만 우리가 기도로 결속할 때 그분은 거기 계십니다. 예수님을 어디서 찾을 수 있습니까? 그분의 말씀을 연구하거나, 그분의 이름을 경배하거나, 간절히 기도하거나, 다른 사람과 함께 모여 그분의 목적을 물을 때 하나님은 그 자리에 계십니다. 오늘의 주제를 몇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1.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밤 하늘의 별들을 올려보세요. 과학자들은 세계의 모든 해변의 모래알보다 하늘의 별들이 더 많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서로 멀리 떨어진 별, 즉 이 불덩어리들은 각각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우주는 사실상 대부분 빈 공간입니다. 6 조 마일 길이의 우주 영역을 무작위로 선택하고 그 안에 갇힌 별이 있을 확률은 불과1 %에 불과합니다. 두 은하가 충돌한다고 상상하십니까? 별과 별 사이가 너무 멀어서 그들의 서로 부딪칠 가능성은 거의 제로입니다.

이제 별을 본 다음 자신을 보십시오. 저와 여러분은 이 광대한 우주의 미세한 한 부분일 뿐이지 창조주를 바라볼 수 있는 놀라운 영의 능력을 생각해 보십시오. 공기 중에서 산소를 받아들이고, 혈액 속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폐의 놀라운 기능을 생각해 보십시오. 섭취한 음식물이 장에서 잘 흡수되도록 1회에 5백cc정도, 하루 최소 1천5백cc의 위액을 배출하는 웅장한 소화시스템을 생각해 보십시오. 저와 여러분은 정말 대단한 창조물입니다. 이 창조세계에 디자이너가 있습니다. 천문학자와 수학자들은 이 지구에서 우연히 생명체가 생겨났을 확률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창조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생각하는 방식은 차이가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의 의지로 된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혼자가 아닙니다.

2. 그분이 우리 삶의 여정을 위한 힘이 되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숨을 쉬는 공기와 먹을 음식과 마실 물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 만으로 살 수 없습니다. 인생의 의미가 필요합니다. 언젠가 이곳 TV 시리즈 가운데100 세 이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아름다운 다큐멘터리가 방영되었습니다. 45 세의 증손 주를 가진 105 세의 아프리카 계 미국인 여성으로부터, 지금은 일을 할 수 없게 된 101 세의 전 MIT 교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다루었습니다. 그들이 20 대와 30 대에 했던 일, 모두가 겪은 큰 전쟁 등. 그들은 큰 고통을 겪었고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지혜를 터득했습니다. 연구자들은 그들의 삶, 무엇을 먹었는지, 얼마나 많은 운동을 했는지, 유전자가 특이한지 모든 것을 연구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결코 묻지 않은 것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놀라운 믿음을 공유하고 있다는 분명한 사실이 엿보였지만 쇼는 그것을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다큐멘터리가 끝날 때 시편 23 편을 인용했지만 구체적인 믿음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100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들이 무력한 상태에 놓였을 때 자신보다 더 큰 힘을 신뢰하고 그분의 인자와 긍휼로 살아남은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아시는 대로 우리는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습니다. 규칙적으로 운동 할 수 있습니다. 좋은 곳에서 휴가를 보내고 아름다운 호텔에서 잠을 잘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슴의 텅 빈 공허함은 하나님 만이 채우실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갖추고도 고독함을 극복하지 못하고 죽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가 인생의 여정을 위한 힘을 얻는 곳은 언제나 이곳입니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시23:4)

3. 하나님을 만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성도의 교제라는 것입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이면 나도 그들과 함께 있다.” 이것이 크리스천의 모든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 공간에 들어오면 방 자체가 “하나님”이라고 느낍니다. 건축, 상징, 창문은 모두 우리를 하나님의 면전으로 인도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말씀을 읽고 찬송가를 부르고 감동적인 기도를 하고 집에서 유튜브 설교자의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점은 우리가 만날 때 다른 교우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나서 예배 드릴 때 그리스도의 놀라운 약속이 실현된다는 것입니다. “두세 사람이 모일 때마다…” 그래서 모이는 수에 관계없이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만나서 함께 예배 드리고 이 방을 떠날 때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걸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만남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예배 가운데 만남은 그분의 확실한 계시가 들어오고 기도가 응답 받는 통로가 됩니다.

백동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