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어머니와 같은 하나님의 아름다운 표현 세 가지를 소개합니다. 존스톤 G. 패트릭은 “성경은… 많은 목소리로 우리에게 말씀하지만… 영원하신 분의 모성적 음성을 들려주는 것보다 더 설득력 있게 들려주시지는 않는다”고 상기시켜 줍니다. 이 문장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성경은 이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나요?

1. 하나님은 마치 독수리가 새끼의 둥지를 휘젓는 것과 같은 어머니 모습입니다. 신명기 32장 11절을 들어보십시오. “독수리가 둥지를 휘젓고 그 새끼들 위로 날개를 펴서 잡아 그 날개에 업는 것과 같으니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모세가 노인이 되었을 때 이스라엘을 위해 부른 노래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출애굽 후 광야생활의 막바지에 이르렀고 그의 시종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라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모세는 이제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시작된 하나님과의 잊을 수 없는 여정을 되돌아보며 하나님께서 그동안 그들을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노래하면서 그것을 독수리의 날갯짓을 하는 어미 독수리의 모습으로 비유했습니다.

“아마도 어느 화창한 날 아침, 미디안의 거친 길에서 모세는 거대한 어미 독수리가 둥지 주위를 맴돌며 새끼 독수리가 처음으로 넓은 상공으로 날아오르도록 유혹하는 모습을 지켜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독수리의 날개가 왜 필요한지 몰랐던 새끼는 울퉁불퉁한 난간에 있는 안락한 둥지를 떠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러자 어미 독수리가 둥지를 붙들고 하늘로 솟구치더니 갑자기 둥지와 새끼 새를 떨어트려 창공으로 날려 보냅니다. 새끼는 어쩔 수 없이 날아야 했고 어미 독수리는 그 주위를 맴돌며 어린 새의 힘이 다 떨어질 때까지 지켜보다가 새끼 독수리가 힘이 다해 추락하자 즉시 아래로 내려가 새끼를 등에 태우고 잠시 휴식을 취하도록 했습니다.” (존스톤 패트릭, “어머니이신 하나님”, 14페이지).

이스라엘과 함께하신 하나님의 방식은 마치 어미 독수리가 새끼 독수리를 훈육하고 훈련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여기서 독수리가 새끼를 강제로 둥지에서 내쫓는 이미지는 새끼가 독수리가 날개를 펴서 힘차게 날아오를 수 있을 때까지 새끼를 강하게 다루고 돌보는 어미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참으로 귀한 장면입니다. 새끼가 지쳐서 더 이상 날 수 없게 되면 어미는 재빨리 새끼 아래로 내려와 자신의 날개로 새끼를 업어 줍니다.

2. 이제 어머니 하나님의 두 번째 그림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구원하러 오신 메시아를 받아들이지 않아서 눈물을 흘리고 계십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라고 말씀하시는 그의 목소리에서 고뇌와 아픔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3:37)

이는 어미 암탉의 보호본능을 잘 보여주는 장면으로, 예수님은 자신이 예루살렘을 그렇게 품고 싶었다고 말씀하십니다. 늙은 매가 머리 위를 날아다니며 암탉과 새끼를 가로채려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자녀들을 암탉이 새끼를 모으듯 자신의 품에 모으기를 원하셨습니다. 여기서 어미 독수리는 새끼 독수리를 둥지에서 밀어내는 엄격함을 암시했지만, 어미 암탉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암시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본성, 즉 하나님의 엄격함과 선하심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독수리는 고귀함을 의미하고 암탉은 비천함을 암시합니다. “하나님의 모성 안에서 위엄과 온유함이 함께 만나고 엄격함과 선하심이 화해합니다.” (존스톤 패트릭, “어머니이신 하나님”, 15쪽).

독수리의 길과 암탉의 길의 차이점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독수리는 둥지를 부수지만, 암탉은 자신의 몸과 날개로 둥지를 짓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협하는 삶의 위협에서 어떻게 우리를 건져 내시는지를 암시하는 비유입니다. 우리 삶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 중 하나는 교란의 징계입니다. 독수리는 새끼 독수리가 너무 편안해서 날으려 하지 않을 때 둥지를 흐트러뜨립니다. 하나님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안주하고 싶고, 편안하고 싶고, 성장을 거부하고 싶은 온갖 종류의 내적 유혹에 직면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교란의 징계를 행사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또한 생명을 위협하는 외부로부터의 공포로부터 새끼를 보호하는 어미 암탉과 같은 분이십니다. 따라서 어머니 하나님은 우리가 내면으로부터 시험에 처할 때는 교란의 징계를, 밖으로부터의 위협에 처할 때는 보호의 역사를 펼치십니다 그때 어머니 하나님은 피난처가 됩니다. 하나님은 나태한 자를 흔드시고 고통받는 자를 위로하십니다.

3. 이제 마지막 그림입니다. 하나님은 어머니만이 줄 수 있는 위로를 주시는 어머니와 같은 분이십니다. 이사야 66장 13절을 들어보십시오. “어머니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나도 너희를 위로하리니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라.” 66장 12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가 그 젖을 빨 것이며 너희가 옆에 안기며 그 무릎에서 놀 것이라!” 어머니가 자식을 부드럽게 수유하는 것보다 더 깊은 모성을 표현하는 그림이 있을까요? 이사야는 “너는 그 무릎 위에서 귀여움을 받을 것이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바로 어머니 하나님의 위로하심과 보살핌을 선명히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모세는 “영원하신 하나님이 너의 처소가 되시니 그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 있도다 그가 네 앞에서 대적을 쫓으시며…”라고 고백합니다. (신명기 33:27) 어머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품에 안고 계시는 한 우리는 결코 대적에게 쫓기지 않습니다. 오늘 이사야의 메시지가 우리 가슴을 울리는 것은 우리가 약하고 힘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어머니가 위로하는 자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하리라”고 계속 우리에게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둥지를 휘젓는 어미 독수리로서의 하나님, 또는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피난처를 마련하는 어미 암탉으로서의 하나님, 또는 자식을 위로하는 평범한 어머니로서의 하나님,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에게 그런 분이십니다. 이것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보여주는 어머니 하나님을 상징하는 그림입니다. 그것이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 주신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백동인목사
밴쿠버한인장로교회 선교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