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의 사사 시대에 베들레헴에 사는 어느 4 인 가족이 있었습니다. 엘리멜렉과 그의 아내 나오미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가족들과 마찬가지로, 이 가족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땅에 기근이 덮쳤고 식량을 구하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들 부부는 작은 노새 등에 간단한 짐 몇 개를 얹고 흉년을 모르는 모압으로 이주해갔습니다. 그들은 모압 지방에서 오래 머물 생각은 없었고, 기근이 물러가는 대로 고향으로 돌아올 참이었습니다.

약속의 땅에 기근이 임했을 때, 아브라함은 이집트로, 이삭은 그랄로 향합니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아내를 여동생이라고 속이기는 했지만, 하나님은 그들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때 풍족한 물질로 축복하셨습니다. 엘리멜렉의 집안도 당면한 위협과 불안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이 기근이 끝날 때쯤, 큰 복을 내려주나 보다” 하고 기대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 엘리멜렉이 예기치 않게 사망했습니다. 두 아들은 현지 여성을 만나 결혼했으니 이들도 곧 사망했습니다. 이 모든 일이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일어났습니다. 나오미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당시에 여성은 사회적으로 직업을 구하기 어려웠습니다. 나오미는 과부가 되어 홀로 낯선 나라에 버려졌습니다. 그녀에 남겨진 두 며느리 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그녀는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이제 그녀에게 남은 유일한 선택은, 고향으로 돌아가 친척들에게서 살 길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에 나오미는 며느리들이 모압에 머무르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며느리들에게 친정 집으로 돌아가라고 격려했습니다. 하지만 며느리 룻과 오르바는 나오미와 함께 있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은 그 길을 고집했지만 나오미는 며느리들이 외국 여성들이어서 고국의 친척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오르바는 시어머니가 옳다고 긍정했습니다. 하지만 룻은 여전히 ​​나오미와 함께 있기를 원했습니다. 룻은 나오미를 깊이 사랑했습니다. 이 맥락에서 룻은 모든 문학에서 가장 유명한 이 대사를 말합니다.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마침내 그녀는 이렇게 외칩니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모압 여인 룻은, 기대할 것이 전혀 없는 빈털터리 시어머니를 위해 헌신하기로 다짐하고 그녀를 좇아 그녀의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떠납니다. 나오미의 친척들이 이 두 사람이 성읍에 들어서자 그녀를 다정하게 맞이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들에게 “나를 나오미라고 부르지 마라. 마라라고 불러 달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내 인생은 쓰디쓴 삶이었다”는 뜻입니다.

나오미와 룻이 얻을 수 있었던 유일한 곡식은 수확 후 농부들의 밭에 남겨진 것뿐이었습니다. 그녀는 깨알을 주어 담듯 힘들게 남은 곡식알을 하나하나 모아 광주리에 담았습니다. 그것은 농부들이 율법의 명령에 따라 첫 수확기에 과부들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남겨 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나오미의 친척인 보아스가 룻이 곡식을 줍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녀는 다른 소녀들보다 더 우아했습니다. 보아스는 그녀에게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라”고 하며 그녀가 충분히 모을 수 있도록 더 많은 것을 밭에 남기도록 했습니다. 이에 룻은 보리 추수와 밀 추수를 마치기까지 그곳에서 안정적으로 이삭을 주워 시어머니를 섬길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나오미는 자신이 두 사람을 연결하는 매치 메이커가 되어야 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며느리가 보아스와 결혼하도록 도왔습니다. 이것은 룻이 보아스의 밭에 이삭을 줍기 위해 첫 발을 들여놓은 지 불과 1년이 지났을 때의 일입니다.  그리고 룻은 오벳이라는 아들을 낳게 됩니다. 성경은 “여호와께서 룻에게 임신하게 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오벳은 이새의 아버지였고 이새는 다윗 왕의 아버지가 됩니다. 이로써 룻은 다윗 왕의 증조할머니가 되었고 과부 나오미는 다윗 가문의 건설자, 더 나아가 메시야 가문의 건설자가 됩니다. 마침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역하시던 하나님께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셨습니다. 주님께서 메시야의 가문을 건설하시려고, 이때까지 젊은 룻이 불임 상태에 머물게 하셨습니다.

예수의 혈통에 룻이라는 모압 여인이 있다는 것이 흥미롭지 않습니까? 그녀는 시어머니에 대한 충성심 때문에 그 자리까지 온 것입니다.  이 사랑은 십자가에서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결코 그만 두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실패하지 않는 사랑에 관한 것입니다. 그것은 아가페라고 불리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입니다. 그것은 “당신이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 때문에 당신을 사랑합니다.”가 아닙니다. 또는 “당신이 편안해서 당신을 사랑합니다.”도 아닙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사랑할게. 항상 곁에 있어 줄게.”의 사랑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그 사랑의 수혜자입니다. 우리 가슴에는 갈보리에서 얻어 단 빨간 리본이 있습니다. 지난 2 천년 동안 수많은 룻과 나오미가 그 사랑을 믿었고 그 사랑을 전했습니다. 그들은 재앙과 기근, 종종 지독한 억압 가운데서도 그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그 사랑의 수혜자가 된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 같은 긴 사랑의 계보에서 태어났습니다. 이 빨간 리본이 닳아서 마침내 찢어지는 것은 비극적인 일입니다.  우리는 이 질긴 사랑의 인연과 계보로부터 태어나 여기까지 왔습니다.

백동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