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 크리스마스의 놀라운 사건 이후, 마리아와 요셉은 우리가 겪는 것처럼 현실 세계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복음서마다 성탄 이후의 기사 내용이 다릅니다. 마가는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고 곧바로 광야에서 메시아를 위한 길을 준비하던 세례 요한으로 시작합니다.  사도 요한도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성육신에 관한 아름다운 신학으로 시작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고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말씀은 하나님이었다. 그는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있었다. 그를 통해 모든 것이 만들어졌다. 그 없이는 만들어진 것이 없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고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요한이 진술한 그 빛은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런 다음 요한은 곧바로 요한의 세례로 넘어갑니다.

오직 마태 만이 헤롯의 살인적인 분노를 언급합니다. 그는 마리아와 요셉이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갑작스레 이집트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고 알려줍니다. 누가는 마리아와 요셉이 예수님이 12살이 되었을 때 율법에 이른 대로 성전으로 데려가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성전에서 그들은 시므온이라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성령께서 이전에 그가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않을 것임을 알려주셨습니다. 마침내 시므온은 어린 소년 예수를 발견하고 품에 안고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시므온은 마리아를 향해서도,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 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고.”라고 예언합니다. 그런 다음 그는 불안한 말을 덧붙입니다. 이것은 젊은 어머니에게 하기에는 너무 섬뜩한 말입니다.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 이 말이 마리아의 마음을 얼마나 떨게 했을 지 궁금합니다.

​누가는, 예수님이 12살이었을 때 성전에서의 모험에 대해 언급한 후 그가 30살이 되어 공생애를 시작할 때까지 침묵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탄생 후 몇 주, 몇 달, 몇 년, 혹은 그 공백기 동안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마리아와 요셉과 예수님은 그들의 삶을 개척했다는 것입니다. 삶에서 좋은 때와 나쁜 때가 있었습니다. 대부분은 평범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들은 시련에 면역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노동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그들은 식민지 시대의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찌들어지게 가난했습니다. 요셉은 장사일과 목수 일을 병행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에게 인생은 쉽지 않았습니다. 마리아와 요셉도 인생의 흠집과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평범한 인간 가운데 한 사람으로 오셨기 때문에 그 역시 자라면서 멍이 들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셨기 때문에 그를 감싼 특별한 보호막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세상에 오셨을 때 그분은 자신을 완전히 비우시고 완벽히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되셨습니다. 멍과 타박상은 그분이 완전한 인간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는 당시 소년들과 마찬가지로 다른 아이들로부터 많은 괴롭힘에 시달렸을 것입니다. 그의 지상의 아버지 요셉은 예수께서 10 대였을 때 세상을 떠난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12살이었을 때 성전 에피소드 후 더 이상 성경에서 언급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에게 여러 동생이 있었습니다. 장남으로서 예수님은 성인의 책임을 짊어져야 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그가 서른이 될 때까지 사역을 시작하지 않은 이유 일 수 있습니다. 이 젊은 가족은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기간에 무엇을 했을까요? 그들은 그들의 삶을 계속했습니다. 그들은 저와 여러분이 살아가고 있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은 최선을 다했고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당시 인간의 평균 수명은 지금보다 훨씬 짧았습니다. 젊은 엄마 마리아는 20 대나 30 대 초반에 요셉을 잃었을 것입니다. 마리아가 재혼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자신의 아들이 갈보리의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지켜볼 때 그녀의 나이는 40 대 후반이었을 것입니다. 그녀가 얼마나 상처받았을 지 상상해보십시오.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 사랑하는 남편과 사랑하는 아들과의 시간이 그렇게 짧을 거라고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마리아는 아들 예수의 사역이 시작될 때까지 매일 아침 남편이 남긴 말을 반복해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들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은 후 매일 아들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메시아의 가족에게 인생은 매우 잔인했습니다. 마리아, 요셉, 나사렛 예수의 가족보다 더 큰 고난을 겪은 가족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들은 어려운 삶을 살았습니다. 특별히 마리아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두 사람을 너무 일찍 잃었습니다. 인간은 그 누구도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마리아와 요셉과 아기 예수 세 사람은 찌들어지게 가난한 가족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마구간에서의 탄생, 박해를 피하기 위한 이집트로의 도피여행, 요셉의 이른 죽음, 그리고 예수의 십자가 죽음은 보통 사람이 겪을 수 없는 참혹한 아픔이었지만 그것이 이 거룩한 가족의 서로에 대한 사랑을 파괴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30년 동안 ​​가족의 일원으로 사셨습니다. 그들은 인생의 많은 굴곡을 더이상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길을 보여주셨고 죽음의 권세마저 이기셨습니다. 가족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이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우리 가족들이 함께 배워야 할 교훈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사람의 빛으로 가족의 삶을 비추려고 애쓰지만 매일 태양이 떠오르게 하는 것은 우리 책임이 아닙니다. 우주와 자연의 질서는 다른 누군가가 지독한 성실로 우리를 돌보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킵니다. 그것이 마리아와 요셉의 삶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가 사랑하는 가족을 평생에 돌보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