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교회가 고심하는 일 중의 하나는 현지 인들과 아름다운 인연을 맺는 일입니다. 비록 다양한 민족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이민사회 속의 교회이지만 고독한 외딴 섬이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태동된 지 한해가 될 무렵에 일흔 가까운 연세의 백인과 인사를 나누고 대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6.26 사변 때 미군으로 한국전에 참전했던 용사였습니다. 마치 어린 시절 반가운 친구를 만난 듯이 기뻤습니다. 그 분을 통하여 오레곤 주에 많은 한국 전 참전 용사들이 생존해 있다는 것과 십대 후반 또는 이십대 초반에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 지도 모를 나이에 전투에 투입되어 생사를 넘나들었던 경험들을 서로 나누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오레곤 주 출신 미군들은 6.25 사변 때 가장 열악한 전투 지역의 하나였던 함경도 최 북단 지역에 투입되어 혹한의 추위를 견디며 전투에 임했다는 사실을 들었습니다. 전상자들 중에는 동상으로 평생을 고생하는 분들도 있다는 것도 듣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한국이라는 나라는 그분들에게는 신비의 나라로 각인되어 있고 한국 전쟁 이후의 한국에 대해서 무척 궁금해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해 여름 날 우리 교회는 이 지역 주변에 생존해 있는 한국 전쟁 참전 용사 분들을 시내의 한 공원으로 초청하였습니다.

유진 시립 공원 한쪽에는 외국 전쟁에서 산화한 전사자들의 이름을 새긴 큰 비석이 세워져 있는 곳입니다. 세계 제 1차, 2차 전쟁 희생자들, 한국전쟁 전사자들, 그리고 월남전에서 희생된 오레곤 지역의 전몰자들의 이름이 깨알 같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시원한 공원의 나무 그늘 밑에 한국 태극기와 미군 성조기를 세우고 푸짐한 한국 음식을 정성 껏 준비하였습니다. 주일학생들에게 열심히 가르친 부채춤을 준비시키고 여성 교우들은 미국에 와서 아직까지 한번도 입어 보지 못한 한복을 다름질 하여 곱게 차려입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한 분 한 분 참전 용사분들을 테이블에 앉히고 젊은 시절 우리 조국 대한민국을 위하여 우리 국군 장병들과 함께 나라를 지켜 내 준 일에 대하여 심심한 감사의 뜻을 전했습니다.

이 자리에는 홀로 된 참전 용사분들도 있었지만 평생을 함께 반려자로 걸어 온 부인들을 대동한 분들이 많았습니다. 비록 백발의 노인들이었지만 얼굴들은 마치 20대 초반의 청년들 처럼 순진한 모습들로 되 돌왔습니다. 삼삼 오오 자리를 잡고 잡체, 갈비, 불고기를 접시에 가득히 담아 나누어 먹는 모습을 보는 우리들의 마음은 풍요로웠습니다. 한 참전 용사 분이 저의 손을 꼭 잡아 주었습니다. 따뜻한 온기가 손에서 가슴까지 전달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한국전쟁은 이곳 미국에서는 잊혀진 전쟁(forgotten war)이라고 말들 하는 데, 한국 교회가 우리를 기억해 주니 이제 여한이 없습니다. 너무 고맙습니다…” 그는 끝내 말을 잊지 못하고 주름진 두 눈가를 흐르는 눈물로 적셨습니다.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우리 조국 대한 민국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헌신해 주신 여러분을 일찍 찾아 뵙고 인사를 드렸어야 하는 데 늦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여러분들의 헌신이 오늘의 한국을 이렇게 발전된 나라로 성장하게 하였음을 기억하고 고마운 뜻을 전하도록 힘쓰겠습니다.”  이 말을 하는 나의 음성은 떨렸습니다.

구부르진 참전 용사의 어깨를 감싸 안아 주었습니다. 그 할아버지는 한동안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겼습니다. 교회로 돌아 온 우리는 머리를 마주하고 의논하였습니다. “한국 전 참전 용사분들은 우리들의 은인이자 전도의 제 일차 대상으로 생각하고 함께 기도하며 좋은 방법을 찾아 봅시다.” 홀트 아동 복지회 창시자인 홀트씨도 바로 이 오레곤 주의 자기 집에 한국 전쟁 고아들을 데려다가 키워 내었습니다. 우리는 한국 전 참전 용사 및 입양아 가족을 위한 연례음악회를 매년 개최하기로 의논하였습니다.

그 이후로 지난 20년 동안 우리는 약속대로 매년 정월에 한국전 참전 용사 분들과 그 가족, 그리고 입양아 가족을 초청하고 연례 음악회를 개최해 오고 있습니다. 9월이 되면 다음 해 음악회를 위하여 준비 기도회를 시작으로 유년 주일학교의 부채춤, 중,고등부의 기악부, 청년 대학부의 찬양, 성가대의 노래, 그리고 장년부의 음식 준비등으로 바쁜 일정이 시작됩니다. 오는 새해에도 더욱 알찬 음악회를 개최할 수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우리 중앙교회 교우들의 한결 같은 마음들입니다.글 전병두 목사 (유진 중앙 교회 담임 목사)